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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Feb 15. 2020

계속, 불편한 사람

오랜만에 H와 만났다. 그와는 대학교 때 잠깐 썸을 탔고 수년간 서로 소식도 모른 채 지내다가, 연초에 H가 도쿄로 이직해왔을 때 다시 연락하기 시작했다. 오늘 무려 7년 만에 조우한 그는 어느새 제법 어른 같은 모습을 하고서 다가온 봄 날씨 속에 서있었다.


"오랜만."


뚝, 하고 떨어지는 말이 참으로 그다워 크게 웃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블루바틀로 들어가 커피를 시키는 시퀀스 속에 어색함은 별로 없었다. 아마 둘 다 무거운 생각은 집에 두고 왔기 때문일 것이다. 입을 모아 맛없다 평가를 내린 커피를 마시며, 이제 보니 블루바틀 로고가 모교의 로얄 블루 색이네, 그때 생산운영관리 강의에서 그렇게나 훌륭하다며 다루던 브랜드가 도요타인데 이제는 이런 시국이 되었다, 우리 외화 열심히 벌어서 한국으로 반입하자 등의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었다. 그러다가 그가 문득 요즘 만나는 사람은 없냐고 물어 나도 모르게 날 선 표정을 지었던 것 같다. 


"알았어 안 물어볼게. 표정 풀어."


머쓱해하는 H를 보며 조금 미안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와 연애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말없이 컵만 만지작거리는 나를 바라보던 그가 재밌다는 듯이 말했다.


지금은 또 겨울 같네.
그저께 통화할 때는 여름 같더니.
여전히 사계절이 뚜렷해 너는.


잊고 있었다. 스무 살 초반, 한 학기 정도 어울리는 동안 H는 내게 그런 말을 자주 했었다. 봄이다 싶으면 겨울바람이 아직이고, 꽃샘추위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녹진한 여름이라고. (녹진하다는 표현을 그때 처음 들었다.)


그 말 까먹기 전에 노트에 적어놔야겠다며 가방을 뒤적거리는 나를 H는 또 재밌어했다. 

정말 여전해, 라며.


그러고 보니 최근 들어 H 외에도 유독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그들의 평가를 들을 기회가 잦았다. 나를 아주 잘 아는 사람, 낯선 사람, 대충 아는 사람 - 모두에게서 공통적으로 들은 말은 내가 '도무지 편하게 대할 수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가장 친한 친구인 E는 나를 "언제나 예의를 지켜서 대해야 하는 애"라고 일컬었다. 실제로 E와 나는 십 수년을 아는 동안 서로에게 짜증을 내거나, 말실수를 하거나, 약속 시간에 늦는 것에 대한 사과를 생략하는 법이 없었다. '제일 친하니까' 으레 용인되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숨김없이 말하고, 더 믿고, 자주 표현할 뿐. E는 그것을 불편해하지 않았고 그저 신기해했다. "그냥, 이런 베프 관계도 있구나 싶어." 


반면 다른 사람들은 자주 불편함을 토로했다. 같이 일을 하던 W는 자꾸 내게 벽이 느껴진다고 했고, 상사인 Y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데도 조언을 주기가 껄끄럽다고 했다. 만나던 남자들로부터도 - 편하게 마음 가는 대로 말하고 행동할 수가 없다, 자꾸 눈치를 보게 된다 류의 평가를 자주 들었다.


이 정도면 내가 굉장히 불편하고 꼬인 사람인 건가, 필요 이상으로 예의를 요구하는 것인 건가 라는 고민을 해오던 터라, 오래간만에 만난 H에게 그간 받은 피드백들을 전달하며 의견을 물어보았다. H와는 타이밍도 성격도 맞지 않아 사귀지 않았지만, 자기 색이 뚜렷하고 목적 지향적인 그를 존중하기도 했고, 대학생 당시에도 나를 다면적으로 잘 이해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그의 의견이 궁금했다. 


노트를 펼쳐놓고 펜을 빙빙 돌리며 대답을 기다리는 내게 H는 혹시 인터뷰냐며,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달라고 농담했다. 몇 분의 진중한 침묵 뒤에 그가 꺼낸 말은 나를 쿡 찌르기에 충분했다.


"응 불편해. 그리고 넌 앞으로도 계속, 불편한 사람일 거야."


그는 어라라 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얼른 말을 이어갔다.


"그게 너라는 사람의 본질인 거 아닐까? 싱가포르처럼 일 년 내내 따뜻한 사람도 있고, 노르웨이처럼 유독 추운 사람도 있고. 오래 보진 않았지만 내가 겪은 너는 사계가 아주 뚜렷했고, 그래서 언제나 당황스러웠어. 심지어 계절이 시계열 순으로 진행되지도 않았거든. 한두 달 알고 나면 그래도 편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낙담하고 있으면 어느새 또 훅 가까워지고... 아 이제야 친해졌네 하면서 맘을 놓으려니까 다시 겨울이고 그렇더라. 진짜 어렵고 불편했어."


그의 말을 듣는 동안, 일그러졌을 표정을 숨기려 노트 위로 고개를 숙이고 열심히 적기만 했다. 그냥 - 생각이 났다. 나와 대화를 할 때면 말을 골라서 해야 하는 것이 너무 어렵다던, 퇴근한 후에도 다시 출근하는 것만 같아 버거웠다던 예전 애인이. 애가 너무 예민해서 무슨 말만 하면 상처를 받는다고, 눈치 보게 하지 좀 말라고 하시는 어머니가. 누구에게도 실수하고 싶지 않고, 누구에게도 상처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이 그리 잘못된 걸까.


"그런데 K야, 그래서 네 여름은 지나치게 습하지 않고, 겨울도 아주 매섭게 춥지는 않아. 가을을 기다리는 여름이고 봄을 묻힌 겨울이어서. 그리고 하나도 뻔하지가 않은 너를 좋아하는 건 불편한 만큼 가치가 있었어."


찬찬히 해석하고 나면 마음 한 구석이 녹고 마는 말들에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자, H는 다소 민망해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과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구축해온 나의 인간관이 H에 의해 문학적으로 표현되었다.

'습하지 않은 여름, 매섭지 않은 겨울.' 각자의 경계선이 흐려지는 수준으로 관여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다. 끝내더라도 예의는 지킨다. 

'가을을 기다리는 여름, 봄을 묻힌 겨울.' 어떤 관계더라도 위기가 올 수 있으니 언제나 조심한다. 사람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소중한 관계라면 버겁더라도 최선을 다해 지키려고 노력한다. 

가까워질수록 관계를 재정비하고 예의를 다잡는 강박 같은 성향 또한 '흔치 않지만 가치가 있는 일'로 일컬어진 것이다.


문득 그와 문학 관련 강의를 같이 수강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나와는 달리 시집을 끼고 살던 사람이라는 것도. 그의 말을 소화해내느라 별다른 반응 없이 펜만 열심히 놀리고 있는데 H가 한 마디를 더했다.


계속 불편한 사람이어도 돼.
너도 참 애써서 사람을 대하잖아.

결국 7년 만에 조우한 사람 앞에서 - 민망하게도 - 조금 울고 말았다. 

내가 불편한 사람인 게 나도 참 불편했는데, 그걸 괜찮다고 해주는 사람이 있어서. 


물론 세상에는 따스함을 잔뜩 타고 태어나서, 제 넓은 그릇 안에 상대방의 실수와 미운 말까지도 다 품어줄 수 있는 사람도 있을 테다. 친해지면 편해지는 거고, 그러면 허물까지 아무렇지 않게 공유할 수 있는 사이도.

나는 아니다. 친해져서 마음의 코어에 가까워질수록 그 사람은 나를 더욱 아프게 할 수 있고 그래서 더더욱 예의를 갖춰야 한다. 열 번을 잘했으면 한 두 번의 실수는 눈감아줄 수 있지 않냐는 말은 버겁다. 깊은 사이가 될수록 말 한마디 한 마디를 고민하고 내뱉는 내가 방어적이고 무겁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갑자기 상쾌한 인간으로 변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빛이 들면 그림자가 생긴다. 무엇이든. 바쁘면 카톡을 읽지 않을지언정 대충 답하진 않는 것이 원칙이고 지인의 대학원 지원 논문을 내 일처럼 나서서 써주는 나는, 모두에게 높은 수준의 배려를 기대하고 같은 실수가 반복되면 실망한다. 잘 만든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나고 가까운 사람의 생일이면 꽃을 사는 나는, 의도치 않게 던진 돌에도 피를 흘리고 관계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화가 난다. 내가 작곡한 노래는 좋다고 들으면서 조심스레 건넨 피드백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나의 온도 스펙트럼에서 따스함만 취하겠다는 건데 - 나는 그렇게 뚝뚝 분절된 존재가 아니다.


나는 일관되게 불편한 사람이다. 


여름은 팔팔 끓고 겨울은 시퍼런 한국이 살기 마냥 쉽지 않은 나라인 것처럼, 나와 가까이 지내는 것은 분명 영원히 봄인 무릉도원에 사는 것 같지만은 않을 것이다. 내가 불편한 사람들은 떠나면 된다. 조금 더 따뜻한 나라로, 혹은 쿨한 나라로, 어디로든. 나는 그저, 내 겨울을 알기에 봄의 어여쁨을 더더욱 좋아해 주는 사람들과, 내 가을의 절경을 이해하고 여름의 열정을 함께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된다. 내 사계절을 즐겨주는 고마운 사람들과. 물론 겨울을 조금 온난하게, 봄/가을을 길게 늘이려 나름대로 애를 쓰겠지만 사계를 지울 수는 없다. 내게 온난화는 아직이다. 


그렇게, 생각보다 추웠던 겨울의 끝자락에서 내가 불편한 사람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다가올 봄은 또 얼마나 고울까 기대해본다.


내 미숙한 고민으로 풍경화를 그려준 H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글을 마친다.

(참고로 그는 가을밖에 없는, 그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성격의 소유자이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  단풍과 헤르만 헤세로 물든 짙은 사랑을 하고 싶다면 이보다 적격인 남자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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