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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Mar 14. 2020

여전히 내가 나인 것을 보니

내 상징 같았던 몇 가지를 잃고도 내가 나인걸 보니
다행히도 난 미시적인 취향들의 합, 그 이상인가 보다. 


일본 지사에서 건너 왔으니 14일 동안 나오지 말고 자택 근무하라는 회사의 방침에 따라 오래간만에 본가의 내 방에 얌전히 틀어박혀보았다. 높은 책장 안의 책들, 오래된 전축, 향수와 빈티지 지구본. 책은 나의 도피처였고 음악과 향은 내게 색을 입혔다. 지구본을 돌리며 런던에서 상상을 현실로 만들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 2년 간 이 방을 떠나 도쿄에 혼자 있으면서 조금 붕 떴다. 도쿄에 가서라기 보단, 그전부터 있던 공허감이 혼자 있으면서 더 선명해졌다. 모자란 건 없는데 딱히 좇는 것도 없어 막막했다. 불안함과 나태함으로 간만에 얻은 여유를 낭비했다. 그 틈을 나는 크고 작은 물건들과 넷플릭스로 채우려 했던 것 같다. 새로운 취향들에 기대어 괜찮고 싶었다. 


결국 서울로 돌아오면서 도쿄의 모든 살림살이를 친구들 주거나 버렸다. 가져오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헛헛함을 채우던 것들은 헛헛함 그 자체 같아서 서울에는 들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5살 때부터 쓴 이 방은 딱히 새로운 물건 없이 예전 모습 그대로다.


그리고 빈 주머니로 돌아온 나도 대체적으로 그대로다. 나쁜 일만은 아니다. 내 근간을 이루는 생각과 지향점들은 내 방처럼 건재하다는 것이니. 

물론 이곳을 거점으로 새로이 뻗어나가야 함은 분명하다. 갖은 다짐에 비해 여전히 권태로부터 벗어나진 못했지만 (일단 요즘은 나가서 뭘 할 수가…) 분명 서른 즈음엔 제 인생이 빛날 거라고 믿었을 어릴 적의 내 사진을 보니 그래도 좀 의지가 생긴다. 


나는 계속 흔들리고, 변해가고, 또 무릇 바뀌어야 할테지만

어떤 것들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킨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돌아갈 고향'이랄 것은 딱히 없다만 - 가장 아끼는 사진, 손떼가 묻은 방, 벚꽃이 흐드러진 뒷골목, 10살의 진심을 다 해 쓴 시, 까무잡잡한 피부색과 더 어두운 유머 코드 등은 일종의 정신적 고향을 이룬다. 유무형의 오브제들로 이루어진 고향.


그래서 더 이상 대학생 때처럼 해골 무늬와 화려한 악세서리를 좋아하지 않아도, 에디 히긴스와 발베니의 호화로운 조합에서 벗어나 류이치 사카모토와 히비스커스 티의 얌전한 조합을 선호하게 되어도, 소설 대신 철학서를 읽고 결혼과 비혼 사이에서 갈팡질팡해도 - 나는 나다.


하루의 작은 선택부터 인생의 흐름을 분기하는 결정, 그 잦은 실패와 망설임 안에 -

결코 잃을 수 없는 내가 있다.

그리고 '잃을 수 없는 나'는 정의하지 않아도 된다. 계속 변화할 뿐더러, 좁은 단어들의 조합으로 가둘 수도 없다. 그저 '여전히 내가 나여서 다행'인 순간이 오면 그런가보다 하고 안도하면 된다.

무엇 하나 확실하지 않은 삶에서 나까지 날 부정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내가 나여서 다행이다.

내가 나여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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