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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Apr 22. 2020

어느 날 갑자기 툭 떨어진 벌레처럼

헤어짐에 대해 자주 말한 한 달이었다.


주변에 여러 사람이 이별을 겪었고, 어느 하나 수월하지 않았다.

애초에 '수월한 이별'이라는 게 있을까.

결국 이별이라는 것은, 제 아무리 최선을 다했고 아름답게 마무리하려 애썼고 뭐던 간에, 내 인생에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하나 더 늘었다는 무력감을 준다. 완벽한 대비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별은 어느 날 갑자기 자취방에 툭 떨어진 벌레와도 같다.

살면서 한 번은 일어나는 일이다.


아니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처음 마주할 시에는 경악과 함께 생리적인 거부 반응이 확 인다.


아니면, 자취방의 상황에 따라, 언뜻 어느 한 구석에 벌레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해오고 있었는데 그것이 갑자기 존재감을 뽐내며 나와 저 출입구 사이를 막아선 것이다.


일단은 당황스럽다.


보통의 우린 용감하게 팔을 걷어붙이고 빗자루 혹은 휴지로 이 일을 말끔히 처리해낼 준비가 안되어있다.

급작스레 나타난 벌레는 혐오스럽고 번거로우며, 무엇보다도 - 두려운 존재다.

어디서 나왔지? 혹시 이 안에 더 있나? 어떻게 없애지? 패닉이 앞선다.


그래서 대부분이 일단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못하고 멈춰버린다. 비명도 안 나오는 경우가 허다하다.

예전에 바퀴벌레가 방으로 날아들었을 때 너무 놀란 나머지 못 본 척하고 집을 나와버린 적도 있다.

물론 언젠가는 돌아와 벌레를 다시 마주해야만 한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이 벌레 놈이, 밖으로 열린 문을 향해 슬그머니 기어가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 자취방에는 먹을 게 하나도 없으니 여기 남아봤자 벌레는 굶어 죽고 만다.

내가 애써 손쓰지 않아도 벌레는 기어나갈 것이다.

라는 생각으로 의자 위에 올라서서 안절부절, 하염없이 느리기만 한 벌레의 퇴장만을 기다린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이별을 겪어내는 방법이다.


물론 소수의 강한 자들은 효율적으로 이별을 처리한다. 인연이 아니었어, 우린 여기까지 인 거지.

혹은 개새끼, 잘 헤어졌다. 나쁜 년, 잘 먹고 잘 살아라. 라고 소리치면서 훌훌 털어 버리고 다음 사람을 찾아가거나 주어진 자유를 즐긴다.


그런 한 편 - 물러나는 벌레의 뒤꽁무니를 숨죽여 지켜보는 것밖에는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스스로의 용기 부족에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지난한 퇴장 장면을 지켜보며 수많은 생각들을 씹어 삼킨다.


왜 저렇게 느리지. 내 방이 이렇게 컸었나.

앗 방향을 틀었네, 안 나가려나.
대체... 얼마나 더 오래 지켜봐야 하지.  


어차피 나갈 벌레이니 그동안 다른 일을 해보려 해도, 그것은 도저히 무시할 수가 없는 존재감으로 나의 작지만 훌륭한 방을 마음껏 모욕한다. 애써 책을 읽다가도 이놈이 출입구를 향해 가는 듯 마는 듯 움찔거리며 돌아다니면 어느새 신경은 온통 그 작고 검은 점에 향해있다. 지긋지긋하다.


이별의 존재감도 그렇게나 묵직하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크기에 비교하면 그렇게 거대하지도 않을 텐데, 방 안의 벌레처럼 - 사이즈가 아닌 존재 자체로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한 번에 처리하지 못한 헤어짐은 물끄러미 지켜볼 수밖에 없다. 나갈 걸 알지만, 다들 시간이 약이라고들 하지만,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그 불편한 존재를.


그리고 마침내, 늘어지다 못해 끊어질 것 같은 어느 시간이 흐르고 난 후,

벌레가 집 밖으로 나가고 마침내 모처럼 상쾌한 하루를 보내게 될 수 있게 된 그 날

싱크대 밑을 보면서 돌연 어라? 하는 무서운 맘이 들 수도 있는 것이다.

떨어진 먼지뭉치만 봐도, 책상 위의 잉크 얼룩에도, 그만 마음이 덜컥 내려앉는다.


이런 일은,
또 생기고 마는 것이 아닌가?


그런 날은 진정하고 일단 해방감을 즐긴다. 벌레가 없는 방에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커피 한 잔을 마신다. 뜨거운 속으로 찬찬히 나에게 맞는 해충 솔루션을 고민해본다.

내 방에 (당분간) 벌레가 안 나오게 하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상치 못한 이별을 겪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고, 어떤 내가 되어야 하는가.

방충망은 어디에 달고 약은 어디에 치는가. 나를 지켜낼 인격적 방어선과 인간 거름망을 어떻게 구비하는가.  


그리고 혹여라도 다음에 또 벌레가 나타나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도 생각을 해본다.

아무리 많은 약을 쳐도 음식물이 썩고 불행이 디폴트인 이 세상에 언젠가는 또 내 앞에 벌레가 나타나고 말 텐데 - 그때의 나는 또다시 그 벌레의 느린 퇴장을 지켜만 볼 것인가? 이때다 싶어 용감한 척하고 싶지만, 아마 높은 확률로 그럴 것이다.


그저, 그때의 내가 좀 더 힘이라도 있길 바라며 오늘 하루를 건강하게 살아낼 뿐이다. 밥을 두 공기 먹는다.

에프킬러같이 죽이는 친구를 두거나 통째로 이사 나가버리는 스케일의 훌륭한 exit plan을 둬도 좋다. 이민이라던지, 퇴사라던지. 허황되더라도 조금 든든해지는 상상으로 무장한다.

결국엔 벌레와 공생하는 우리네 앞날에 애도하면서, 헤어짐으로 가득한 세상을 등지고 - 지금은 잠깐 귀여운 강아지 영상과 조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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