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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Jul 09. 2020

하루키가 하루키한 책

독후감 쓰기 프로젝트 1 #의미가없다면스윙은없다


모든 종류의 음악에 환장하고 작곡이 취미인 사람 치고 나는 “분석적 듣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냥 좋아서 좋은 거고, 듣고 싶어서 듣는 것이지 -

짜임이 좋아서, 특정 부분의 화성 진행이 좋아서, 피아니스트 특유의 타법이 느껴지는 연주여서 - 라며 곡을 분해하여 샅샅이 탐구하는 버릇이 없다.


그런 행위를 싫어한다기 보다는, 내가 유일하게 직관적으로 기쁨을 느끼는 영역에서조차 분석적이고 싶지 않은 마음과 귀찮음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런 연유로 십 수년을 설렁설렁 막귀로 살면서 되는대로 작곡하던 내게 이 이 책은 아주 흥미로웠다.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는 하루키가 시더 월턴, 프랑시스 풀랭크, 루빈스타인 등 본인이 좋아하는 음악가들에 대해 쓴 글들을 모아둔 에세이집이다. 재즈 바 사장님이라는 점에 유추할 수 있는 재즈 아티스트에 대한 해박함 뿐만 아니라 슈베르트나 제르킨 등 거장 피아니스트의 일대기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가지고 있음이 느껴진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모든 소설에서 익히 느껴지는 디테일에 대한 지나치다 싶은 집착이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에서도 아주 잘 드러난다. 특히 슈베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제 17번 D 장조를 친 피아니스트 열 다섯 명을 나열한 뒤 한 명씩 깊이와 특징을 비교하는 것을 보며 약간 질리기까지 했다.


대.다.나.다. 정말


하지만 또 분석에서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본인이 느낀 바를 기가 막히게 전달하는 대목에서는 조금 마음이 풀리며 공감하게 된다.


나로써는 동쪽인지도 서쪽이인지도 분간하지 못한 채 테너 색소폰 하나만을 의지해 모습이 보이지 않는 악마와 어둠 속에서 맹렬히 싸우며 무지개의 근원을 끊임없이 추구해 온 젊은 시절의 스탠 게츠의 모습을 한동안 더 바라보고 싶은 기분이 든다.

-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 


그리고 하루키에게, 혹은 음악 에세이를 쓰는 누군가에게, 이렇게 평가받는 음악을 혹은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도 막연히 해본다. 무엇을 하든 몰아(沒我) 수준의 휩쓸림을 경험해보지 못한 내게 이 책의 마약쟁이 음악가들은 연민과 선망의 대상이다.

(대체적으로 환경 때문에) 중독자가 된 건 안타까운데, 자신 안에 차오르는 무언가에 압도당하는 그 몰입감은 부러운. 어째도 마약을 하진 않겠지만.


스피커를 옆에 두고 다양한 삶을 살아온 음악가들의 얘기를 정독한 뒤 책을 덮으니, 여러 개의 전기적 다큐멘터리를 본 듯 하다. 보통은 음악을 들을 때 그 작곡가나 연주가 보다는 내 감정 혹은 감각에 집중하기 때문에 이러한 종류의 탐구적 독서는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

몇몇 빼고는 죄다 낯선 이름들이어서 평소 음악을 들을 때 쉽게 빠져드는 익숙한 우울감이나 추억에의 회상 없이, 아주 산뜻하게 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던 것도.


아 그리고, 나는 하루키의 집착적인 텍스트를 읽으면 그의 미친 듯한 몰입감에 오히려 거북함이 느껴져서 어디 강 건너 불구경하듯 - 하지만 눈을 떼진 못한 채 - 책을 읽게 되는데, 이렇게 그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가진 사람이 또 있는 지도 궁금하다.


총평: 하루키가 하루키했던 음악 에세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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