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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Aug 10. 2020

가짜여도 괜찮은 마음으로

독후감 쓰기 프로젝트 2 #베스트오퍼 #플랑드르거장의그림


관계에서 빠져나오고 나면, 나는 자주 그것에 쏟아부었던 내 감정의 진위성을 의심하곤 한다.


'사람' 보단 '관계성'에 치중하여, 혹은 내가 정해둔 '이상적인 그 사람의 모습'에 치중하여,

진짜 상대방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아닐까.


그저 사랑이란 감정이 느끼고 싶어 나는 그를 사랑했다고 속여댄 것은 아닐까.

그렇게 - 수없이 울고 웃었어도, 언제나 한 발자국 떨어져 관조하는 스스로를 자주 혐오했었다.


그리고 베스트 오퍼와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을 보았다.

베스트 오퍼: 최고가로 미술품을 낙찰시키는 세기의 경매사이자 예술품의 가치를 알아보는 완벽한 감정인 올드먼(제프리 러쉬). 고저택에 은둔한 여인으로부터 감정 의뢰를 받으면서 예상치 못한 인생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데... (왓챠 소개)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미술 복원가인 주인공 훌리아는 체스 게임하는 모습이 담긴 15세기 플랑드르 패널화를 복원하던 중에 그 속에 감춰진 라틴 어 문장을 발견한다. Quis Necavit Equitem(누가 기사를 죽였는가). 골동품 상인이자 훌리아의 정신적 지주인 세사르는 이 문장이 5백 년 전의 살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그림에 그려진 체스 게임을 풀어야만 그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들이 무명의 체스 플레이어 무뇨스의 도움을 받아 체스 게임을 풀어 가는 도중에 현실 속의 살인 사건은 계속 벌어지는데……. (YES 24 소개)


영화와 소설은 각각 무언가 숨겨진 목적이 있는 인물들을 그려낸다.

처음 하는 사랑에 배신 당했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을 사랑하겠다'는 말을 끝까지 믿는 인물과,

본인의 진실된 성향을 숨긴 채 살며 살인으로 어두운 내면을 표출하는 인물.


그리고 <베스트 오퍼>에서는 내 마음을 쿡 쑤신 대사가 나온다.
There's something authentic in every forgery. 


모든 위조품에는 진품의 미덕이 있다

이 말은 내가 흉내내려고 했던 어떠한 형태의 사랑 안에도 분명 진짜 사랑이 있었다고,

차가운 배신 속에도 뜨거운 열정이 있었고 긴 기만의 시간 속에도 진실이 있었다고 들린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주제인 '예술'이 바로 그런 한 줌의 진심을 표출하는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어떠한 그림을 보면, 음악을 들으면 생각도 하기 전에 느껴지는 감정이 있다.

로스코의 그림을 보며 진한 슬픔을 느낄 수도, 박서보 작가의 선 안에서 알 수 없는 평안함을 느낄 수도 있다.


<박서보: 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 전시 중


'미술을 보면서 무언가를 느껴야 할 것만 같아서' 억지로 짜낸 감정일 지라도,

그런 자기 의심의 막을 걷어내고 나면 -


인간의 어느 한 부분을 미세하게 자극하는 아름다움이 예술에는 있다.


제 감정의 진위조차 파악하기 어려운 위조투성이 세상에서,

가짜여도 괜찮고 가끔 무언가 진짜일 수도 있다는 실낱같은 위안으로 모두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총평: 가짜여도 괜찮은 마음으로 살면 내 현재를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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