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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공방 Aug 14. 2020

pieces/ 설렘도 노력해야 얻어진다

E언니와 재작년부터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있다.

"아- 설레고 싶다."

둘 다 길어진 장거리 연애에 자극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고, 

내 경우에는 일이 익숙해지고 생활이 늘어지는 것도 지루했다.


대충 뻔한 나날들을 견디며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켜보면 그 날들도 다 싱그러웠는데.


한국으로 돌아온 후 E와 통화를 하면서 최근에 만난 사람들,

재밌었던 에피소드들을 얘기를 해주는데

그녀가 당사자인 나보다도 더 설레 하는 것을 느끼며 깨달았다.


난 그토록 원하던 설렘이 눈 앞에 와있는데도 모르고 있었구나.

'설레고 싶다-'며 따분해하는 태만의 감정만 알았지,

기민하게 설렘을 살피고 그것이 가까이 왔을 때 낚아챌 준비는 안되어 있었구나.


설렘은 기초대사량과 같아서 어릴수록 그냥 주어지는 게 크다.

그래 어릴 때는 조악한 영화를 봐도, 지나가던 남자랑 눈만 마주쳐도 설렜다.

이제는 로맨스 영화 한 편을 끝까지 보는 게 챌린지고

잘생긴 남자가 보고싶다는 카톡을 보내도 시큰둥하다.

이래서는 안 된다 나 자신.


설렘도 노력해야 얻어진다.

나이가 들 수록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을 늘려야 하는 것처럼,

해가 지나도 마음에 피가 돌게 하기 위해서는 설렘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매일의 설렘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것도 도움이 될 거다.


바로 어제, 나를 설레게 한 몇 가지들을 꾹꾹 눌러써보니 생각보다 많더라.

친구들이 진심을 다 해 쓴 가사, 어머니가 내 방에 놓아주신 어린 노란 장미 다발, 

스쳐 지나가듯 맡은 가죽향이 짙은 향수 냄새, 5분 만에 작곡한 곡,

그걸 부르는 Y의 낮고 스산한 목소리와 - 

내게 너무도 여름다운 한 남자까지.



더 이상 숨 막히는 설렘이 나를 찾아와 짓누를 때까지 멍하니 기다리는 과오는 범하지 않는다.

내일부터 난 설렐 거다. 설레는 일이 분명 있을 거고 난 그걸 느낄 거다.

썸이 없으면 '섬'이라도 만들어 즐겁게 지내자고 말해준 E에게 이 글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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