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로 발달한 거지는 환경운동가와 구분할 수 없다 4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처음 읽었을 때 딱 내 나이가 그즈음이었다.
아주 어렸을 때 용돈기입장을 (초반에만) 엄청 열심히 쓰거나, 부모님과 함께 새마을금고에 가거나, 몇 백 원을 넣고 동네 문방구에서 오락을 하고, 포켓몬 빵과 딱지를 샀던 기억들이 어렴풋이 난다. 나는 돈을 좋아했고, 가능하면 모아두려고 노력했지만 부모님이 주신 용돈은 금세 전부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곤 했다. 열두 살에는 주말이면 친구와 영화도 보고, 맥도날드에 가서 런치 세트도 먹어야 했고, 중학교 때는 하이테크 펜도 사야 하고 만화책도 사야 하고 떡볶이와 타코야끼도 사 먹어야 하고 하여간 돈 쓸 일이 참 많았다. 고등학교 때는 체크카드를 만들어서 썼는데, 이래저래 열심히 돈을 모았을 때 통장의 최대 잔액이 8만 원 정도 되었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를 끝까지 읽지 않았다. 초반에 옆집 강아지 머니를 산책시키면서 돈을 버는 키라의 모습부터가 아예 공감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 어린 나이에도 나는 이런 건 외국에서나 가능한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책을 덮은 것이다. (솔직히 그땐 그저 호그와트 입학할 생각 밖에 없었음)
최근에야 그 책을 다시 끝까지 읽었는데, 세상도 나도 참 많이 변하기는 한 것 같다. 요약하자면, 키라는 본인의 사업 소득을 바탕으로 옆집 자산가 할머니와 어린이 친구들과 함께 펀드를 만들어 성공적인 공동 투자를 진행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모님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니의 도움을 받아 본인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한 컴퓨터 구입, 해외 유학 등 소망을 찾고, 경제적 기반을 다져나가는 키라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이 책을 끝까지 읽었더라도, 나는 내가 사업을 하고 펀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2000년 독일에 살던 키라가 2023년 한국에 온다면? 일단 만 15세가 안 되어서 아르바이트는 어렵겠고, 책에서처럼 친구에게 임금을 줘가며 사업을 꾸려 나가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부모님의 적절한 도움이 있다면 주식 투자를 배우고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NFT나 아이템을 직접 판매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만큼 부자의 길이 다양한 세상이다.
대학교 입학 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나에게도 드디어 내 손으로 직접 버는 내 돈이 생겼고, 5% 이자를 주는 예금 위주로 돈을 모았던 기억이 난다. 비록 모든 회차를 다 채우지는 못 했지만 1천만 원 가까운 금액의 3년 적금을 해지하지 않고 모으기도 했다. 그때는 지금의 반도 안 되는 시급을 받아도 차비하고, 식비 쓰고, 딱히 부족함 없이 원하는 만큼 쓰고도 돈이 남았다. 항상 통장에 여윳돈이 있어서 국민 락스타, CMA 등 파킹 통장에 넣어 두었다가 해외여행 등에 요긴하게 잘 보태 썼었다.
졸업 전 인턴을 하면서 토요일 추가 근무 포함 월급 실수령액 129만 9천 원을 찍었고, 직장에 취직하면 일단 이것보다만 더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아두었던 모든 돈은 마지막 학기까지 탈탈 털어 썼고, 졸업 직후 3월에 들어간 첫 직장에서는 수당 하나 없이 딱 연봉 1,800만 원, 세전 150만 원 월급을 받았다. 그 후 한 번 이직하여 현재까지도 쉼 없이 일하고 있다.
이미 이전 글을 통해 나의 현재 상황은 자세히 설명한 바 있으니, 오늘은 과연 나의 재테크 목표는 무엇인지, 나는 어떤 부자가 되고 싶은지 정리를 해보고자 한다.
재테크 책을 읽으면 항상 초반부에 생애 주기에 따른 재무 계획을 세우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대학교 졸업 OK. 취직 OK. 근데 항상 여기서부터 내 미래는 뿌연 안개처럼 하나도 보이지가 않았다. 보통 생애 주기에 따른 필요 자금이 결혼 자금, 주거비, 양육비, 노후 대비 이런 순서인데 결혼 계획이 없으니 나는 바로 노후 대비밖에 할 게 없는(?) 것이다.
일단 예적금 말고는 아무것도 모르니, 주식부터 차근차근 시작했고 최근에는 개인연금 납입도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할 만한 수익이나 성공적인 투자 비법은 없지만, 내 마음도 편하고 계좌도 잔잔하게 수익을 가져다주는 중이다. 한국형 파이어족 대퐈마님들을 좋아하는데, 그분들 말씀대로 누군가에게는 나와 같은 적은 연봉이 절약과 투자를 포기하는 사유가 될 수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그만큼 절실함을 느끼며 목표를 추구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엊그제 6월 결산 글에서 개인연금 계좌에는 월 12만 원씩만 납입하기로 결심해 놓고는, ACE 미국배당다우존스 ETF가 월배당 전환되면서 이번 달에만 분기배당금, 즉 3개월치 배당금을 준다는 소식에 호롤롤로해서 얼마를 더 넣을까 깊은 고민을 시작했다. 분기배당금이라고 해봐야 1%도 안 되는 배당률이지만 연간으로 계산하면 10%가 넘으니... 어차피 꾸준히 모아갈 거 남들처럼 목돈을 어느 정도 넣어 놓고 시작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한투 계좌에 있던 원화 예수금을 미래에셋 연금저축 계좌로 옮기고, 비상금으로 떼어 놨던 돈도 일부 합쳐서 1년 치 납입금 144만 원을 맞춰 놨다.
누가 나한테 월급의 몇 퍼센트는 연금에 넣고 언제 주식을 팔아서 여기에 있는 집을 사고... 이렇게 말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물론 그렇게 말해줄 사람은 회당 몇 백만 원 넘는 돈을 받는 유료 강좌 강사나 사기꾼 밖에 없겠지만 말이다. 내가 하는 투자는 오롯이 나의 책임이다. 참고는 할 수 있겠지만 아무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 내가 만약 평생 집을 사지 않는다면 내 모든 돈을 주식과 연금에 넣어도 문제가 없겠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인생 아닌가.
주식도 차트니 뭐니 잘 모르고 배당주 말고는 잘 투자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지만, 부동산은 정말 아예 모르니 공부해야지 해야지 하면서도 참 어려웠다. 자취 한 번 해본 적 없으니 월세며 전세며 경험해 본 적도 없고, 무엇보다 부동산에 대한 절실함이 없었다. 다른 지역에 가서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지도 않았고, 결혼 계획도 전혀 없으니 독립 또한 무한정 멀어지고 있다. 막연하게 청약 저축만 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2만 원씩 넣은 세월이 너무 길다... 여러분 청약은 무조건 10만 원씩 넣으세요!!!!!
그래서 먼저 내 집 마련에 성공하신 분 후기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매물 조사, 임장, 계약, 인테리어까지 상세하게 써주신 분이 계셔서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엑셀로 매물 비교를 정말 꼼꼼하게 하셨던데 엄두가 안 날 지경이었다. 당장 이사 갈 게 아니라서 임장까지는 모르겠고, 기본적인 부동산 책들을 읽기 시작해야 한다. 이번 기회로 청약 가점도 계산해 봤는데 세대주인 부모님이 만 60세를 넘은 후로는 내가 세대원인 상태여도 무주택 기간으로 산정이 된다고 하니 다행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립에 대한 인식도 조사했다. 보통 30대 초반까지 독립하는 게 이상적으로 여겨진다고 한다. 부모님은 아직까지도 내가 결혼을 안 할 거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으신다. 40살이든 50살이든 언젠가는 부모님의 육아를 끝내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의 낮은 연봉으로 어디에 이사를 가야 하나... 아파트 = 환금성이라고 하는데, 돈이 없으면 실거주용 빌라로 가야 하지 않을까라고 지금은 막연히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일단 앞으로의 계획을 이렇게 세웠다. (그리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1. 월급의 현재 투자 금액은 유지한다. (적금 50, 청약 10, 연금 및 상조회 5, 주식 50, 부수입 및 투자 수익금 전액 재투자 / 개인연금은 1년 치 완납함)
2. 청년희망적금이 만기 되면 청년도약계좌로 갈아타며 적금 금액을 70만 원으로 올린다.
3. 주식은 물려 있는 한국 주식 탈출을 우선시한다. 앞으로 달러 환율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현재 달러 환율이 낮다고는 볼 수 없으므로 미국 배당주로 받는 배당금을 일부 원화로 환전 후 한국 주식에 물 타기 한다. 비중이 과도해지지 않도록 신중하게 추매 한다.
4. 미국 배당주는 연간 배당금 1천만 원 목표를 달성한다. 5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개인연금 계좌가 아닌 일반 계좌에서 모으는 이유는 첫째, 미국 개별 주식이기 때문이고 둘째, 연 3천만 원 자산 증식을 위해 배당금을 자유롭게 활용하기 위해서다.
5. 일반 계좌의 미국 배당주를 제외한 종목들이 대부분 정리되면 중개형 ISA를 활용해 3년 중기 주식 투자로 부동산 투자용 종잣돈을 모은다.
6. 개인연금 계좌에는 아직 욕심 내지 않는다. 내 집 마련을 할 때 목돈이 얼마나 필요할지, 대출을 얼마나 받을지 아직 전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30년 넘게 묶이는 자금에 너무 많은 비중을 두어선 안 된다. 내 집 마련을 한 후에야 개인연금에 월 50만 원씩 납입할 심적인 여유가 생길 것이다.
7. 부동산 공부는 꾸준히 한다. 모르겠어도 그냥 계속한다.
8. 용기와 확신이 들면 부동산을 매입한다. 만약 정말로 내 집 마련을 못 한다면, 그동안 이뤄놓은 현금 흐름으로 부모님께 보답한다.
요즘 거의 대부분 사람들의 꿈은 로또 1등 당첨이 돼서 내 집 마련하고 평생 놀고먹는 것이다. 조금 더 현명한 사람들은 대출 없이 내 집 마련하면 돈이 얼마 안 남으니, 직장에는 당첨 사실을 비밀로 하고 계속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대출 혜택 등을 받겠지.
나도 파이어족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고액연봉자도 아니고, 나의 이번 생에 로또 1등도, 코인 대박도 없을 예정이라 나는 오늘도 고민하고 공부하고 실행한다. 우리는 따박따박 매달 들어오는 현금의 힘을 알고 있다. 일시금보다 연금이 더 안정적인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오죽하면 로또 1등보다 연금복권 1등이 더 좋다고 할까. 하지만 우리는 당장 먹고살기 바빠서, 너무 먼 미래여서,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미래에 대한 준비를 잠시 뒤로 미뤄두기도 한다. 그 누구도 정답은 알지 못한다. 그저 내가 아는 것은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성공이든 실패든 기꺼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어떤 부자가 되고 싶은지도 꽤나 명확하다.
1. 안정적인 주거를 가지고 있다. (내 집 마련을 하든, 부모님 집에서 살면서 생활비를 드리든)
2. 생활비 이상의 현금 흐름을 가지고 있다. (1년에 1번 해외여행 갈 정도의 여유는 누리자!)
3. 돈이 전부가 아니다. 건강하고 같이 놀 사람도 있어야 한다.
여러분은 어떤 부자가 되고 싶은가? 그리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어떤 길을 택하겠는가? 그 길이 막다른 길일지라도 잠시 쉬었다가 털고 일어나 씩씩하게 걸어가는 힘을 가진 나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