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호주 여행기 0
작년 10월부터 넉 달 넘게 준비해 온 호주 여행을 드디어 다녀왔다.
다행스럽게도, 열심히 준비했던 만큼 하고자 했던 일들을 대부분 다 하고 건강한 상태로 안전하게 돌아왔다.
무려 12일. 앞으로 언제 또 이렇게 길게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까지는 이번 여행에 대한 기억을 두고두고 꺼내 보고 싶어서 브런치에 기록으로 남기려고 한다.
1. 왜 하필 호주였을까?
초등학교 6학년 여름(호주는 겨울) 2주 정도 되는 짧은 호주 어학연수를 다녀온 적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빠 회사에서 단체로 태국 가족 여행(설레기만 했던 첫 해외 여행길에서 꿀땅콩 주시고 주스 주시고 자꾸자꾸 나를 도와주셨던 대한항공 승무원님들께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을 간 걸 제외하면, 처음으로 해외를 길게, 그것도 부모님 없이 다녀왔으니 얼마나 설레고 신기하고 재밌었겠는가! 하여튼 그때는 영어를 거의 못 했음에도 호주 현지 학생들과 교류하면서 서로 소통이 안 된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그만큼 천진난만했던 것이지!
그 후로 중고등학교 입시 기간을 거치며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다가, 대학교 2학년때부터는 운 좋게도 매년 해외에 나갈 일이 있었다. 1년 휴학 후 복학하며 졸업을 앞뒀을 쯤에는 비행기 타는 게 설레기보다는 다소 지겨워질 정도였다. 취업 후에는 장거리 여행을 할 정도로 휴가를 붙여쓰기가 어려워서, 그나마 가까운 나라로 여행을 다녀오곤 했는데 코로나가 창궐한 2020년 2월 이후로는 여권을 쓸 일이 아예 없어져 버렸다. 나의 가장 돈이 많이 들지만 그만큼 가장 좋아하는 취미인 해외여행을 하려야 할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참 간사하다. 나는 집에 있는 걸 아주 좋아하지만, 가장 친한 친구들이 나까지 5명이라 1년 넘게 못 만나는 상황은 견디기 쉽지 않았다. 해외는커녕 집 밖으로도 잘 나가지 않는 나날들이었다. 그래도 몇 번의 큰 고비를 넘긴 뒤, 하늘 문이 열렸다. 내가 다음 해외여행을 계획한다면 미국 재방문이나 싱가포르를 가장 먼저 고려했을 것이다. '것이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다른 여행지를 고려하기도 전에 호주 여행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나도 내가 호주에 다시 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즐겨 보고 좋아하는 유튜버들이 호주에 살았거나, 살고 있어도 그냥 재미로 영상을 볼 뿐, 그곳에 내가 가리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호주는 나에게 있어 좋은 기억이 가득한 곳이고, 또 이미 수없이 많은 세월이 흘렀기 때문에 많이 변했을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이미 한 번 가봤기 때문에 가본 곳보다는 안 가본 곳, 새로운 곳을 가고 싶었기 때문에 호주는 내 여행 계획지에 없었다.
그런데 모든 상황이 호주를 여행하기 딱 좋게 척척 들어맞고 있었다.
먼저, 작년부터 내 동생이 좋아하기 시작했고, 언제나 그렇듯이 내가 따라서 좋아하게 된 아이돌 그룹에 한국계 호주인 멤버가 둘이나 있다. 데뷔 직후 월드 투어를 하면서 호주 여행을 했던 영상들, 호주 국경이 열리면서 몇 년 만에 돌아간 고향에서의 영상과 사진들이 나의 손민수 욕구를 자극했다. 게다가 딱 4년 만에 호주에서 다시 하는 콘서트라니!!! 항상 해외 콘서트는 꿈만 꿨었다. 이전에 좋아했던 그룹이 미국 투어를 할 때도 가보고 싶었는데, 콘서트 티켓 값과 별개로 비행기며 숙박이며 돈이 한두 푼 드는 게 아니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일단 티켓을 구하는 것부터 정보가 별로 없어서 쉽지 않았다.
그런데 왜 지금은 가기로 했냐고? 미국 투어를 성공리에 마친 그 그룹은 그 후로 멤버 탈퇴, 입대, 코로나로 인한 월드 투어 취소 및 온라인 전환 등을 거쳐 현재까지도 오프라인 월드 투어를 다시 못 하고 있다. 내가 지금 좋아하는 그룹도 벌써 재계약을 앞둔 연차이고 미래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에 가장 좋아할 때, 가장 완벽한 타이밍으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호주 여행을 결정했다. 코로나 3년을 거치면서 예산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게 되었고(?) 된다님의 영상들을 보면서 해외콘에 대한 열정을 채우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꿀팁도 얻을 수 있었다. (잊지 말자! 콘서트 날은 노보텔 숙박이다!)
동생이 현재 퇴직한 상태여서 장거리 여행을 갈 타이밍도 잘 맞았다. 사실 웬만한 직장에서 일주일 이상 자리를 비우는 게 어디 쉽겠는가. 그렇다고 연휴 기간에 맞춰 여행하자니 비싸고 사람도 많고 타이밍도 안 맞고... 이번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었다.
위에서 얘기했듯 어쩌다 보니 호주에 사는 혹은 살았던 유튜버들의 영상을 자주 보는데, 여행을 가기로 결정하고 다시 보니 영상 하나하나가 보물이었다. 해외여행을 앞두고 가이드북부터 꼭 살펴보는 스타일인데, 영상을 통해 예습과 복습을 철저히 해보니 마치 내가 직접 경험하고 찍은 영상처럼 더욱더 오래오래 4D로 이 기억들이 나에게 남을 듯하다.
2. 해외여행, 그거 왜 가는데?
흔히들 해외여행을 하면 견문이 넓어진다고 한다. 특히 취업 전에 유럽이나 미국으로 장거리 여행을 많이들 하실 텐데, 역시나 취업 후 시간의 제약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비행시간만 10시간이 넘어가는데, 간 김에 이곳저곳 구경하려면 일주일도 사실 너무 부족하지 않은가.
대학교 4학년, 복학을 앞두고 한 달 사이에 미국과 유럽 3개국(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독일) 여행을 다녀왔다. 정말 정말 좋았지만, 미국은 인천 → 오사카 → 샌프란시스코 → 올랜도 경유, 유럽은 인천 → 도하 → 로마 / 프랑크푸르트 → 암스테르담 → 인천 경유 등 단시간에 비행기를 오래 여러 번 타다 보니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행위 자체가 나에게 설렘보다는 지침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제 여행하기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는 중동, 아프리카, 남미 등을 제외하면 대륙별 경험이 꽤 충분하다고도 생각했다. 게다가 '걸어서 세계속으로'보다도 훨씬 더 생생한 해외 살이 브이로그가 유튜브에 차고 넘치는 시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문이 불여일견. 간접 경험은 직접 경험만 못 하다는 것을 다시 떠나보고서야 오롯이 깨달을 수 있었다.
홍콩 여행을 해보신 적이 있다면, 황보씨의 책 '지금 아니면 언제'를 읽어보시기를 권한다. 유명 연예인으로서의 모든 것을 잠시 내려두고 홍콩이라는 미지의 세계로 떠나 겪었던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적어주신 덕분에, 상상력이 매우 부족한 나조차 그 글들을 읽으면서 내가 홍콩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다시금 4D로 내 주위에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여행을 가는구나. 직접 가서 온몸으로 느끼면 그게 다 새겨지는 거구나. 이 조명, 온도, 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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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육식맨님이 홍콩 육식 미각 여행기를 유튜브에 업로드하고 계신다. 홍콩 또한 한 번 방문한 걸로 만족했던 나에게 다시금 홍콩을 여행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영상들이다.
https://www.youtube.com/@YOOXICMAN/videos
3. 그래서 뭘 느꼈냐면
무사히 한국에 돌아온 소감은,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나라가 아닌 곳에서 살아 가시는 모든 분들이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든다. 그래도 나에게 외국에서 취직할 정도의 영어 실력은 아니어도, 밥 굶지는 않고 돌아다닐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얻고 돌아온 자유 여행이었다.
호주는 그동안 아주 많이 변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옛날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는 나라였다. 나는 한국의 빠른 와이파이와 편리한 대중교통이 좋지만, 건조하고 자연을 사랑하는 호주도 좋다. 정말 즐겁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여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