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호하지 않는 종류의 일을 하며, 스트레스와 안정감 사이에서
뭔가의 일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추진해 나갈 때, 약간의 스트레스는 따르지만 동시에 심리적인 안정감을 느낀다는 것을 요즘 다시 경험하고 있다. 한국에서 제안서를 작성하던 때나 해외에서 고위급 행사를 준비하던 때처럼 거대한 일은 사실 아니다. 그렇다고 여행 중 문제가 하나씩 해결될 때의 가벼운 안도감이나, 논문이 써지지 않더라도 데이터가 쌓일 때의 느슨한 압박과도 다르다. 그보다는 조금 더 직접적이고, 손에 잡히는 압박에 가깝다.
최근 본인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나가는 일이 있었고, 다행히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아 비교적 잘 진행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괜찮은 숫자들이 나왔고, 그 숫자들 덕분에 소속 기관에서의 시선도 조금 달라졌다. 시선이 바뀌자 판이 커졌다. 자연스럽게 내 일도 늘었고, 신경 써야 할 것들도 많아졌다. 하루하루는 이것저것 사태를 수습하다 끝나는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참 아이러니한 건, 이 일이 내가 한국에서 극도로 꺼려하던 종류의 일이라는 점이다. 손은 많이 가지만, 잘해도 본전인 일.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여겨왔던 일이다. 그럼에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가장 잘 알고 있고 비교적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서 일련의 일을 하나의 사이클을 처음부터 끝까지 돌려보고 있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 일은 존재의 가치를 증명해야 할 때마다 꺼내 드는 카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어느덧 6개월 차가 되었고, 이제는 내가 이곳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을 소속 기관에 보여줘야 할 시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증명이 숫자로 나타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는지도 모르겠다.
서로의 니즈가 맞아떨어진 덕분에 일이 굴러간 부분도 있겠지만,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이 있었다. 늘 그렇듯 귀인처럼 나타난 그분들 덕분에, 어둠 속에서도 조금씩 방향을 잡아갈 수 있었다. 아직 끝난 일은 아니지만, 잘 마무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도 있다. 이 시간을 통해 내가 어떤 상황에서 내 존재를 증명해 나가는 것인지를 한 번 확인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주요 업무는 아니지만, 언젠가 주요 업무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날을 향해 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때를 기대하며, 오늘도 버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