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가 끝나면 새로운 인생이 펼쳐질 줄 알았지만, 부족함만 만나다.
오랜만에 '필기시험'이라는 것을 보았다. 자기소개서를 나름 열심히 썼다고 생각했지만,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시험을 보는지 몰랐고, 서류발표날 필기시험 과목 중 하나가 '논술'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 논술은 내 첫 직장에 입행하기 위해 본시험 이후 처음이라 막막했지만, 사실 그 감정도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나이가 들면 들 수록 이런 긴장감은 더 이상 날 마음 졸이게 만들진 못하는 것 같다. 그렇게 전날에서야 도서관에 가서 보고서와 기사를 딱 두 가지 주제만 그냥 궁금해서 훑었다. 중고로 새로 산 아이패드에 흥미가 너무 간 탓도 있지만, 도서관에 오니 왜 이렇게 집에 놓고 온 것들이 많이 생각나서 집에 돌아만 가야겠다.
집에 도착해서 집에 있는 책상이 아닌 집 앞에 있는 헬스장으로 향했다. 집에 놓고 온 물건은 생각도 나지 않았고, 책상에 앉기 싫은 감정이 컸는지 바로 헬스장으로 '시험 전날 숙면'이라는 그럴싸한 핑계로 향했다. 그리고 시험날 새벽에 굳이 공복 유산소를 하고, 식단까지 다하고 시험장으로 출발했다. 카페인을 먹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커피도 빅 사이즈로 마시고, 에너지바를 편의점에서 2+1으로 사서 먹으며 식단을 무색하게 하며 입장했다. 긴장은 왜 안되는지 모르겠지만, 속으로는 항상 그랬듯이 결시자들이 많기를 바랐고, 아는 사람은 만나지 않길 기도했다.
그렇게 들어선 시험장에서 결시생은 거의 없이 자리에 꽉 차있는 박사님들을 만났다. 새로운 직장을 찾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내가 과연 경쟁력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 잘 안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저런 시간이 지나고 나서 문제를 받고, 원고지에 내 글을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참 신기하게도 어제 본 두 가지 주제가 그대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공부 안 한 과목의 중간고사를 보듯이 우왕좌왕 써 내려가며 마지막 1분까지 열심히 채웠다. 3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를 만큼 오랜만에 집중하였다. 옆에 많은 박사님들이 있는지 인지하지 못할 만큼 집중했고, 내 답안지와 글쓰기에 집중했다. 그렇게 필기시험이 끝나고 나니 '정말 박사들이 많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또 다른 무거운 공기를 다시 느꼈다. 모두 어떤 사연을 가지고 이 시험에 임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모두들 졸업하느라 엄청난 과정을 겪었을 텐데 이 자리에서 또 험난한 길을 가려고 하는 것들에 대한 왠지 모를 동질감을 혼자 느꼈다.
사실 나는 학위가 끝나면 모든 것이 술술 풀릴 줄 알았다. 하지만, 현재 내 상황은 그러지 못하다. 어설프게 학위를 하다 보니 이상만 높고 실력은 그렇지 못하다. 매번 낙방하고 또 도전하고 부족함을 알고 개선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내가 진행한 과정에 대해서 후회는 없지만, 그럼에도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더 열심히 하지 못한 것이 조금은 아쉽기도 했다. 그래도 '어쩌겠냐'는 생각과 함께 '언젠간 관문을 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내 상황을 애써 부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렇게 노력해서 성취해야 더 열심히 하고 감사할 줄 알 것이다, 또 다른 도전을 하고 낙방을 하고 개선할 성장 기회가 있다는 것도 학위 과정을 마쳤기 때문이다라며 현실을 미화하기도 한다.
아무튼 그럼에도 세상에 박사는 너무 많지만, 나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결과가 어찌 되었든 분명히 성장하고 개선하고 있으며 노력하고 있다. 또다시 스스로 외친다. '어쩌겠냐, 언젠간 되겠지, 근데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