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에게 꿈이 있다. 나 역시도 꿈이 있었다.
아프리카개발은행(AfDB)에서 일하는 것이 나의 오랜 꿈이었다. 정확히 언제부터, 어떻게 AfDB를 꿈꾸게 되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AfDB에서 일하고 싶다"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고 다녔다. 꿈이라고 믿고, 그렇게 말하고 다니며 내 삶의 방향이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의 회사로 이직한 것도, 박사 과정을 시작한 것도 모두 AfDB에 들어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한국에서만 통하는 민간 기업보다, 국내 공공기관에서의 경험이 더 신뢰를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순수 국내파인 내가 석사학위보다는 박사학위까지 있어야 경쟁력이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렇게 내 꿈은 점점 구체화되어 갔다. 2019년, 꿈에 그리던 AfDB의 직원들이 내가 속한 조직을 방문했다. 그들은 우리 프로그램에 관심을 보였고, 나는 마치 꿈에 더 가까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해, 우연한 기회로 아비장의 AfDB 본사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공식 일정 전, 로비에 앉아 1시간이 넘도록 사람들의 움직임을 지켜봤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일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리셉셔니스트와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고, 한국인 직원들과의 네트워킹 덕분에 인사팀 담당자와 짧은 인터뷰도 할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YP 프로그램이라는 정보를 얻게 되었고, 기회가 생기자 주저 없이 지원했다.
그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뛰어들었다. 우리 회사가 AfDB와 업무협약을 맺을 당시, 나는 다음 계약서가 내 고용계약서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내 이력서를 전달했다. 인사 담당자가 한국을 방문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하루 종일 호텔 로비에서 기다렸다. 결국 직접 만나 내 이력서를 건넬 수 있었다. 결과는 탈락이었지만, 그 순간조차도 나는 꿈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 회사 노트북의 사용자 이름은 ‘AfDB’, 배경화면도 AfDB 로비 사진으로 바꿨다. 집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afdbafdb’, 휴대폰 대기화면 역시 AfDB 건물 사진이었다. 2020년부터 지금까지, 하루에도 10번 이상 AfDB 로고를 보고, 로비에 들어가는 상상을 했다. 5년 넘게 반복된 상상은 어느덧 15,000번이 넘었고, 무의식 중에도 나는 꿈에 나 자신을 노출시키고 있었다.
논문을 쓸 때도, 책을 낼 때도, 그리고 5년 가까이 한 주도 빠짐없이 블로그 포스팅을 올릴 때에도 늘 AfDB를 염두에 두었다. 언젠가는 이 노력들이 나를 AfDB로 데려다줄 거라는 믿음을 가졌다. 물론 중간에 AfDB가 아닌 한국 회사들에 지원한 적도 있다. 무수히 떨어지고, 좌절할 때마다 “나는 AfDB에 가기 위해 공부하고 일했는데, 왜 여기서 이러고 있지?” 하는 자각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AfDB를 외쳤다. 주위에 친한 분들은 제발 나를 아프리카로 보내주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AfDB를 외치며 살던 작년 어느 날, 운 좋게 인터뷰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결과 통보 대신 해당 공고의 취소에 대한 이메일을 받았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올해, 마침내 그 공고가 다시 떴고, 나는 마침내 인터뷰를 보고 그 포지션에 9월부터 합류한다.
누군가는 1년짜리 계약직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도 모른다. 개발은행 컨설턴트 자리가 생각보다 문턱이 높지 않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간절했고, 그리고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귀에 못이 박히겠다고 말할 정도로 외친 AfDB.
이제 그 준비 과정과, 인터뷰 경험, 그리고 그 이후의 생활을 하나씩 풀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