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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한 유니씨 May 31. 2019

<작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

- 지수의 엽편

 눈처럼 소리 없이, 게다가 사뿐하게 발등에 내려앉은 전단지를 집어 들었을 때, 까만 바탕에 흰 글씨 한 줄이 지수 씨를 붙잡았다. ‘작별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작사모’. 뭐래? 손바닥보다 조금 큰 종이에 그것 말고 다른 글자는 없었다. 아무리 길에서 아무한테나 뿌리는 거라지만 물티슈 주는 교회도 있는데 이건 진짜! 지수 씨는 종이를 쥐었던 손에 슬그머니 힘을 풀고 지하철역 계단을 느리게 올랐다. 종이는 바닥으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팔랑,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 

 

 “작사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우리 모임은 다른 규칙은 없어요. 오로지 이것 하나만 지키면 되죠. 이른바 ‘작사모에 임하는 자세’. 다같이, 뭐라고요?” ”울지 말고 말하렴.“ 지수 씨를 포함한 네 명의 사람들이 작사모 회장을 바라보며 제비처럼 입을 모아 외친다. 

 그렇다. 지수 씨가 지하철에 앉고 보니 가방 바닥에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분명히 버렸는데 이게 왜! 검정 종이를 앞뒤로 살펴보다가 무심코 형광등에 쓱 비춰보는데 숫자가 보인다. 그렇게 전화를 걸어 이 자리에 앉게 된 지수 씨는 그날을 이렇게 회상했다. “글쎄, 내가 왜 전화를 걸고 어떻게 거기까지 갔는지 정말 뭐에 홀린 거 같았다니까요.”

 회원들은 닉네임으로 불렸다. 회장은 자기를 ‘줄초상’이라 불러달라며 작사모의 취지와 의의에 대해 침을 튀기며 설명했다.

 “작사모는 이별이 아닌 작별을 지향합니다. 이별과 작별, 거기서 거기 같지만 달라도 한참 달라요. 이별은 예상치 못한 헤어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것. 난 헤어지기 싫은데 막 누가 찢어놓는 거죠. 말하자면 수동적인 헤어짐이야. 하지만 작별은 어떨까요. 너랑 나랑 헤어진다는 걸 미리 아는 거죠. 그래서 그 이별의 순간을 내 스스로 맞이하는 거예요. 이별이 울고불고 보내내 못 보내내, 이제 가면 안 오네, 한바탕 난리라면, 작별은 우는 순간마저도 웃을 수 있도록 채우는 거예요. 능동적으로 하는 거야, 빠이빠이를. 다시는 못 보는데 울 시간이 어딨어요. 최대한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야죠.”

 

 2년 사이에 사랑하는 사람을 여섯이나 보내고 잃었다는 ‘줄초상’님 이야기를 들으며 지수 씨는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지만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 전, 나라에서 그나마 해준답시고 해 주는 건강검진을 2년 만에 다시 받았는데, 장기 한 부분에 종양이 의심된다는 소견이 나와 조직검사를 의뢰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병원으로 향하던 지하철 계단이 그렇게 힘들더니 예상치 못한 진단이 나왔고, 버렸던 전단지가 따라와 이 자리에 앉았다. 마치 누군가 연출한 영화 속 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이것이 영화라면 과연 해피엔딩일까 새드엔딩일까. ‘줄초상’님은 ‘울면서 이별하지 말고 웃으면서 작별 하자’고 했는데 그것은 지수 씨가 정말 원하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가장 이상적인 끝맺음이었다. 자신이 하나의 인격체, 자식을 둔 어른으로서 해야 할 마지막 사명이라고 생각하던 차였다.  

 지수 씨는 닉네임을 고민하며 몇 해 전 세상을 떠난 노부를 생각했다. 슬픔과 억울함, 한 맺힘 밖에 떠오르지 않는 죽음. ‘있을 때 잘 하라’는 흔해빠진 말 한번 실천해 보지 못한 자신과 늙은 아버지가 오랫동안 원망스러웠던 기억이다. 아무리 늙으면 아이가 된다지만 정작 돌봐야 할 당신의 손주에게 가는 지수 씨의 주의와 기운마저 싸그리 거둬가 버린 아버지라는 이름의 이기심. 우연찮게 아이의 소풍날과 아버지의 생신이 겹쳤던 날, 아이는 김밥집 김밥을 들려 보냈다. 하지만 ‘산 건 안먹겠다‘ 는 아버지 주문에, 3일 전부터 핏물 뺀 갈비찜을 뼈를 발라 살만 보온통에 넣어 병원으로 날랐다. 떡이라도 돌리라며, 백설기는 의사가운 같아서 싫다고 알록달록 무지개떡을 콕 찍어 말하던 아버지였다. 이해받기 보다 이해해야 하는 일이 많았던 아이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어 학교에서도 구석으로 몰리게 되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지수 씨를 발판 삼아 인심을 얻고 웃음을 유지했다. ’내가 있으니 니들도 있는거 아니냐‘ 끝까지 마수같은 말을 던지던 아버지의 마지막이 지수 씨는 너무나 시원했다. ‘저렇게 살진 말아야지’ 아버지를 보고 배운 한 가지 확실한 명제. 지수 씨가 하나밖에 없는 아이를 떠올린 건 당연한 일이다. 

 

 1주일 후면 조직검사 결과가 나온다. 결과는 아직 그 누구도 모른다. ‘이쁜 그냥덩어리’일지, ‘안 이쁜 암덩어리’일지. 그때 가서 생각하지 못할 것들을 지금 생각해둬야 한다. 이미 시작했어야 할 일을 놓치면 자신도 역시 아버지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작별’을 준비하는 일. 지수 씨는 ‘다랑쉬’라고 닉네임을 정하고 아이와의 작별, 언제 있을지 모르지만 반드시 오게 될 그 시간을 마음 한편에 마련해 두기로 했다.

 세 번째 모임에서는 ‘나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작사모’만 눈에 띄어 가사 쓰는 모임인줄 알고 왔다가 탈퇴를 고민했다는 작사가 지망생 ‘기미나’님은 이왕 온 거, 노랫말 같은 유언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다섯 번 인도여행을 했다는 사진가 ‘인도방랑’님은 자신의 죽음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다며, 부디 자신의 장례식에서 우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자기가 죽었을 때 누구도 울지 않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육개장을 마지막 음식으로 내놓겠다는 중국집 주방 경력 20년차 ‘육사(육개장사발면)’님도 대답을 이었다. 자기 죽음을 남 얘기하듯 말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왠지 모를 자유를 온 몸으로 느낀 지수 씨는, 떨어질 듯 말 듯 아슬아슬 차오르는 눈물 어린 표정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줄초상’님은 회원들의 이야기를 듣고 물개박수 저리가라 박수를 치며 일어났다. 반짝, 눈물이 떨어지며 목소리가 흔들리는가 싶었지만 회칙대로 울지 않고 말했다. “우리, 이 마음 끝까지 흔들리지 말아요. 다음 시간은 마지막, 여러분이 생각한 작별의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할까요. 세상에 남길 말이 있다면 준비해 오세요. 그것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죽음을 상상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린 이미 이별 아닌 작별에 다가선 거죠. 이별이 아닌 작별, 쏘 뷰리풀이에요.”

 

 손을 씻고, 핸드크림을 손등에 짜면서 지수 씨는 식탁에 앉는다. 눈앞에 펼쳐진 깨끗한 노트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려 아이 방을 쳐다본다. 아이는 아직 학원에 있다. 닉네임으로 정한 ‘다랑쉬’는 아이가 막 아홉 살 된 겨울에 올랐던 제주도의 오름이다, 다랑쉬오름. 난생 처음 아이와 둘이 떠났던 여행. 해가 바뀐 1월보다도 속 깊이 추웠던 2월의 바람 속에서였다. 휴대폰을 열어 저장해 둔 그때 그 한 컷을 처음 보는 것처럼 또 본다. 

 ‘다랑쉬 해발 382.4m’. 정상에 우뚝 박혀있는 표지막대를 이제 막 돌아선 아이의 뒷모습이다.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 더웠는지 여몄던 점퍼를 열어 바람을 머금게 했다. 날리는 머리카락, 부푼 점퍼 자락, 막 땅을 차고 올랐을 공중에 떠 있는 한쪽 발. 정지된 장면이지만 움직이는 바람이 느껴진다. 아이는 이제, 능선을 한 바퀴 돌아서 왔던 길을 올라온 것처럼 내려갈 테다. 눈앞에 가득 들어찬 오름을 맨몸으로 올라섰다가 다시 그렇게 가쁜 숨을 이어 내려가는 일. 부디 우리가 사는 일도 그 정도쯤으로 생각해주길 지수 씨는 바랐다. 주저하지 않고, 앞으로 내딛던 발걸음처럼 지수 씨는 아이에게 남겨둘 말을 써내려간다. 아이와 지수 씨 등을 밀어주던 다랑쉬의 바람결을 펜 끝에서도 느낀다.   


 - 페미니스트가 되어라.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을 갖고, 배우자를 고르고, 아이를 키우게 되는... 인생의 굽이굽이마다 인간적인 어떤 가이드라인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들의 기운과 잣대, 연대를 빌어 이어가는 너의 삶이라면, 거기엔 꼭 내가 있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다. 그 어떤 종교보다 듬직한 울타리가 될 거라... 믿슙니다! 

 - 엄마 알지? 약은 약사, 진료는 의사, 떡볶이는 상어, 커피는 별벅스. 혹 내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다면 3초도 생각하지 말고 전문기관, 시설에 보내길(물론 엄마는 존엄사를 고려하고 있다만). 네가 쩔쩔 맬 이유가 없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 ‘병’을 ‘효’로 받드는 것만큼 세상 웃기고 어처구니없는 일도 없다. 

 - 여행하고 책을 읽어라. 돈이 없어도 시간이 모자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오히려 여행과 독서라는 점을 몸소 느끼기 바란다. 여행과 독서는 내가 아무리 비행기 할아버지, 전국 최대 도서관 사서 할머니라도 결코 가닿지 못할 곳으로 너를 이끌 거야. 독서와 여행을 해 본 사람만이 닿을 수 있는 나와바리가 확실히 있다는 걸 믿어라.

- 좋다고, 싫다고, 말해라. 하고 싶은 일을 좇기보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말아라. 그리고 울지 말고 웃어라......


 아침 해가 떠올랐다. 분명히 식탁에 엎드려 잠 든 것 같았는데 눈을 떠보니 지수 씨 방이다. 거실로 나와 아이의 방문을 연다. 아이는 말 그대로 ‘아이처럼’ 자고 있다. 아이 발치에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 머리카락이 가린 이마를 쓸어 올린다. ‘누굴 닮아 이렇게 이쁠꼬.’ ‘누가 이렇게 이쁜 걸 낳았을꼬.’ 품에 들어오던 내내 ‘엄마’, ‘엄마’ 대답도 예쁘게 잘했다. 이미 이 유효기간 만료되어 입 밖에 내 본지 오래지만. 자는 얼굴을 들여다보면 아득한 그 시절이 아련하게 스며든다. 아이 얼굴을 마음 한편에 새기듯 길게 응시하고 거실로 나온다. 식탁 위에 펼쳐놓았던 노트가 어느새 표지를 보이고 있다. 괜찮다.


 오늘 지수 씨는 두 가지 일을 해야 한다. 병원에 가는 일, 그리고 작사모 마지막 모임에 가는 일. 노트를 집어 들고 베란다로 걸어가 힘껏 문을 연다. 반짝, 아침햇살이 눈부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아직, 울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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