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앓아보니 알겠다
탈의실은 최소한의 변신의 공간이다. 옷을 사러 가서 마음에 드는 옷을 입어보거나 수영장에서 수영복을 갈아입거나 찜질방에서 찜복으로 갈아입을 때, 탈의실이 없다면 곤란하다. 우리가 원더우먼, 수퍼맨이 아닌 이상(아, 나 몇 살이니) 탈의실 없이 변신하긴, 조금 어렵다.
탈의실에 들어갈 때면 그 다음의 변화 때문에 마음이 설렐 때가 많다. 탈의실에서 나온 뒤 새 옷이 생기거나 시원한 물놀이를 즐기거나 어깨 허리 다리를 지지며 계란 껍질을 깔 수도 있기 때문에. 내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다른 목적으로 옷을 갈아입으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다. 수영하러 온 사람, 새 옷 입은 사람, 지지러 온 사람 등등.
그러니까 탈의실은 옷을 바꿔 입고 옷에 맞는 다른 역할을 준비하는 곳이기도 하겠다. 옷이 날개라는 말도 있듯 한눈에 변신이 가능한 가장 작은 공간 탈의실을 이용해서 말이다.
나도 어느 한 때, 탈의실을 자주 이용했다. 탈의실에 들어갔다 나오면 나는 ‘암환자’로 변신했다. 탈의실 문 손잡이를 밀고 방으로 들어갈 때, 나와 같이 그 방에 들어가는 사람은 오직 나밖에 없다. 방문이 닫히는 순간, 나는 완벽하게 세상에서 구분되었다. 암환자로 변신해야 하는 공간.
환자복으로 탈의하고 다시 바깥으로 나오면 치료해야 할 몸이 나보다 먼저 세상 앞에 선다. 아픈 몸은 철저히 혼자이고 사람은 누구나 언제나 늘, 어떻게든 혼자라는 걸 치료실 침대에 누워 느끼고 깨닫고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