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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한 유니씨 Nov 26. 2019

<너에게>

- 하도리에 가 보았어요

우리는 장갑을 끼지 않고 맨손을 잡고 다녔는데 손이 금세 차가워졌다. 그럴 땐 내 겉옷 소매를 길게 빼서 바람에 손을 숨기기도 했다. 하지만 날은 계속 추웠고 실내에 들어가지 않는 한 손도 계속 차가운 채였다. 나는 아이 손에 깍지를 끼기도 하고 아이 손을 주먹 쥐게 한 뒤 감싸듯 잡기도 했다. 


그러는 내 손이 차갑다 느껴졌는지 아이는 주머니에 넣고 있던 다른 손을 빼 와 자기 두 손으로 내 한 손을 감싸주었다. 그럼 나는 또 그 손 시려울 까봐 잡은 손을 주머니에 넣었고 손 세 개가 들어갈 순 없으니 남은 손은 원래 있던 자기 주머니 속으로 돌아갔다.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고 손이 따뜻해지진 않았다. 다만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여행했을뿐. 주머니 속에서 아이는 자기가 잡을 수 있는 만큼 내 손가락 끝을 모아 잡고는 꼬옥, 힘을 준다. 그 순간, 마치 전기놀이를 하는 것처럼 ‘오늘도 좀더 같이 걸어갈 수 있겠다’, 우리만 아는 싸인을 주고 받는 것만 같았다. 


아이들은 경험치가 적어서일까, 사사건건 이렇다 할 편견이 없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그가 보고 받아들이는 대로 나도 볼 때, 가장 먼저 보이는 건 내가 가진 편견이었다. 아이를 따라 해 보는 일이 귀찮고 더디긴 했지만, 마치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 같은 새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아이 같은 시선이 여행자의 태도로는 딱 이겠구나 무릎을 여러 번 쳤다.


아침은 뜨끈한 국과 밥, 저녁엔 고기나 찌개로 구색 맞춘 상차림, 같은 메뉴얼은 아예 필요 없었다. 아침은 주로 즉석 밥, 봉지 스프, 먹다 남은 돼지 껍데기, 사과 반 개와 요거트 하나. 어떤 날은 식빵 두 쪽과 계란 프라이, 택시 기사님에게 얻은 귤 몇 알과 컵라면에 딸기우유. 먹는 일 보다 더 한 재미가 있던 아이 덕분에 장르를 넘나드는 상차림이 자유로웠다.


눈 뜨면 고양이 밥그릇 먼저 살피느라 현관문부터 열어보고, 바람이 찬데도 마당으로 내려서서 줄넘기를 하거나 옥상에 올라가는 아홉 살, 장에 가서는 어린 동물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느라 배고픔도 뒤로 미뤘고, 노 키즈존은 아니었지만 약간 눈치가 보인다 싶은 카페에서는 엉덩이를 딱 붙이고 앉아 노트에 코를 박고 그림을 그리던 아홉 살 이었다. 


‘잠 안 자고 엄마 옆에 계속 있을 거야’, 눈을 부릅뜨지만 말 끝나기 무섭게 흔들어도 못 일어날 잠에 빠져 든 얼굴을 오래오래 바라보는데, 어쩌면 이 아이와 계속 여행 할 수 있겠다, 어떤 다짐이 정리되기도 했다. 나이 많은 어른의 경험은 그저 정답이 아닌 하나의 다른 방법일 뿐, 어린이도 충분히 자기만의 여행을 주도하고 있었으니.


거침없는 발걸음, 자연 앞에 누구보다 크게 달려가던 무방비한 신남. 두 볼이 빨갛게 차가워지고 눈발 날리는 바람이 거세도 아이는 일단 전진하고 본다. 추위나 낯섦보다 먼저인 것이 있었고 나는 묵묵히 그 뒤에 섰다. 바다든 오름이든 마을 길이든, 나보다 먼저 가서 바람을 맞고 뒤돌아서 ‘엄마 빨리 와’ 나의 전진을 허락하는 아이, 너.


세화 해변의 어느 카페. 이런 데 가서 돌아다니지 않고 얼마나 앉아있을 수 있느냐에 따라 여행의 퀄리티가 향상된다. 20160105


아이는 분명 나 하나 믿고 저렇듯 자신의 온 감각이 살아있는 시간을 만끽하고 있었겠지만 아마 몰랐을 것이다. 나야말로 그런 너를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둘이 남아 쓸쓸한가 싶다가도 나보다 앞서 걷거나 뛰다가 나에게 눈을 맞추는 너 때문에 기운이 뻗고 덩달아 웃던 내 얼굴을 너는 봤을까. 네가 없었다면 결코 완성되지 못했을 너랑 나, 우리 둘만의 첫 여행.


여행이 아이 몸에 습관처럼 들면 좋겠다. 가족 여행도 좋고, 이왕 욕심을 내자면 나와 단둘인 여행이 ‘좋은’ 아이였으면 좋겠다. 내가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런 부모, ‘아이와 여행이 되는’ 사람이고 싶다. 사실, 둘이 여행한다고 했을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야 가능하다. 여럿이 함께 하거나 혼자인 여행과는 다른 두 사람만의 이야기 말이다. 둘이어야만 하는 관계의 밀도, 다른 사람 없어도 썰렁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편안한 사이. 그렇다, 솔직히 나는 딸이랑 ‘그럴만한 이유’들을 늘 갖고 있고 싶은 거다.


둘이서 처음 여행 한 하도리가 벌써 3년 전이다. 1학년 때 빠졌던 앞니 두 개가 새로 나고, 그 옆 두 개 이가 빠졌던 하도리의 그 아이가 새삼 그립다. 초등학교 2학년을 앞뒀던 아이는 이제 5학년을 보내고 있다. ‘단 둘’은 아니지만 제주도를 꾸준히 드나들고 있고, 아예 고정 멤버를 꾸려 비슷한 계절, 같은 동네에 머물다 오는 일도 3년 째 진행 중이다.


아이는 그 새 많이 자랐고 저 때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우선, 그 때는 없던 휴대 전화가 우리 사이에 떡 하니 자리한다. 서울에서도 제주도에서도 그 전화기 때문에 엄마로서 기분이 종종 나쁘다. ‘아주 그냥 휴대폰 없어지는 날 오는 중 이라는 것만 알아’ 저 땐 필요 없던 말이 수시로 나온다. 일정이나 음식도 여러 번 조율해야 한다. 단지 보강이 싫기 때문에 학원을 빠질 수 없다는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야 하지만 잘 안 될 때는 눈치를 보며 다른 딜을 해야 한다. 


한 겨울에도, 한 여름에도 오름에 올라가는 엄마 따라 다랑쉬 오름부터 오르기 시작한 아이는, 여전히 오름을 잘 오른다. 단, 올라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내려 올 때까지, 아직 멀었어?, 왜 이렇게 바람이 불어, 다리가 좀 아픈데, 모기도 있어, 물 없어? 가시에 찔렸어, 신발에 흙 들어 갔잖아, 내려 가서 어디 갈 거야?… 매 번 이런 식으로 소음을 내면서 나보다 먼저 올라가고 빨리 내려간다. 그런데 한가지 재미있는 건, 어쩌구 저쩌구 중에 오름 안 간다는 소린 없다는 것. 


앞으로 얼마나 더 함께 여행 할 수 있을까. 때가 되면 나(가족)보다 더 좋은 여행 짝꿍이 생길 수도, 예상과 다르게 여행을 안 좋아하는 성인이 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아직, 아이는 가방을 꾸리고 비행기를 타고 집을 벗어난 숙소가 신나고 궁금하다. 10월에도 바지를 걷어 올리고 바다에 뛰어들고, 숲길이나 오름에서 노루를 볼 수 있을지 모른다며 눈을 반짝인다.


물론, 호텔 조식을 좋아하지만 가성비 따져 근처 백반 집에 가려고 기운을 써야 하고 온종일 수영장에서 노느라 1일 1오름은 포기, ‘한강 수영장이나 가지, 비행기타고 수영장 왔냐’, 소리가 절로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또 아직, 나중은 생각하지 않겠다. 그냥 오늘 재미있고 싶고 오늘 여행하고 싶다. 그 재미와 여행이 ‘나중’으로 이어질 것이기에. 여행의 기억은 습관처럼 다시 여행을 이끌 것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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