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도리에 가 보았어요
둘이서 과연 여행할 수 있을까. 여행이 끝날 때까지 마음 한 켠에 품었던 의문은 손바닥 뒤집기처럼 쉽게 풀렸다. ‘순도 100%’ 의 물론이지! 를 읊조리며 우리는 하도리 이후 몇 번 더 둘 만의 여행을 성사시켰고 국내는 물론 동남아까지 그 영역 또한 넓혀가는 중이다.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렵다고, 처음을 완료하고 나면 그것은 어느새 ‘첫 번 째’ 경험으로 쌓이고 노하우로 남아, 두 번 째, 세 번 째, 또 그 다음을 이끈다. ‘시간이 안돼서 못 가지, 둘이라서 못 갈까’ 이 정도 여유는 덤이다.
여행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순도 100%의 또 하나의 사실은 아이의 인격 또는 품격을 비로소 발견한 일이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기 보다 여행에 짝 지어진 동등한 객체, ‘한 사람으로서의 어린이’ 에 ‘밑줄 쫙, 진달래 꽁야’를 그려 넣고 인정하는 경험이 가능했다. 즉 부모 된 입장에서 하나라도 더 머리에 남을 일정을 물색하던 방식에서 벗어난 최초의 여행, ‘처음이냐? 나도 처음이다’, 헤매면 둘 다 헤맬것이고 엎어지면 같이 엎어질 것이었다.
단단히 어깨를 겯고 함께 시작해서 함께 맺음 해야 했다. 속도와 보폭을 맞추는 일은 기본, 파트너가 아이였다 뿐 곁에 서있는 그 존재를 믿고 의지해야 가능한 일이란 걸 깨닫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아이를 자식으로 여겨 끌고 나가면 넘어지기부터 할 것 이었다. 천천히라도 전진하려면, 거기에 재미가 붙는 발자국을 찍으려면 내가 부모이기 전에 네가 자식이기 전에 먼저여야 할 것들이 있었다.
사실, 일상에서라면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역할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가령,
부모: 숙제 했어?
자식: 응/ 아니
부모: 잘 했어, 이제 씻고 자야지/ 얼른 해, 언제 다 하고 자려고 그래.
또는,
자식: 엄마, 오늘 받아쓰기 두 개 틀렸어.
부모: 그러게 어제 한 번 더 써보라니까. 엄마 말 안 듣더니.
자식: 괜찮아, 우리 반에 두 개 맞은 애도 있어.
부모: 뭐래, 다 맞은 애도 있을 거잖아.
이런 식으로 8년 정도를 살다가,
아이: 엄마는 왜 자꾸 버스를 놓쳐?
나: 그러게, 나도 처음이라 그래. 춥지? 내가 실수하는 바람에 우리 딸 추워서 어쩌지? 엄마가 미안한데.
아이: 괜찮아, 엄마도 춥잖아. 그대신 나 안아줘. 버스는 또 오지?
나: 아이구, 그대그대(혀가 점점 짧아지며 같은 말을 두 번씩 반복한다)인누와 인누와, 안아주야지, 안아주야지. 거마어, 거마어. 엄마표 바담막이 입어 보까.
이런 식으로, 주고 받을 술잔만 앞에 없다 뿐이지 흉금을 트고 마음을 포개는 순간을 여러 번 겪었다.
아이와 단둘인 여행, 어떻게 보면 ‘재미’하고는 거리가 먼 조합일 수 있다. 친구 사이라 맛 집을 순례하며 술잔을 부딪칠까, 연인이어서 바다가 보이는 카페에 앉아 온종일 서로의 손을 만지작거릴까. 하다못해 효도 관광은 동네에 소문이라도 나지. 아이랑 둘이 여행한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반응도 이거였다. ‘근데 둘이 무슨 재미로?’
나부터도, 아이는 핑계고 나 좋자고 가는 건 아닐까 수십 번 망설였다. 또, ‘아이가 뭘 안다고 계획을 짜고 좋다 싫다 해?, 엄마가 가자니까 따라가는 거지, 아이는 무슨 재미야’, 아예 환청을 듣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자기 몫의 여행을 점유하고 있는 아이를 발견했고, 어쩌면 스스로 자신의 여행을 해 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와의 여행에 ‘무슨 재미로?’가 따라 붙는 건 아마도 여행이 학습의 연장이거나 일기장에 쓰고 붙일 뭔가를 먼저 찾기 때문일 것이다.
익숙했던 숙제 같은 여행에서 벗어나 이토록 크고 확실한 아이의 존재감을 느꼈을 때, 나는 좀더 이 여행이 길게 남아있기를, 이번이 다시 다음으로 연결되기를 소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