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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한 유니씨 Nov 04. 2019

<종달리 마실-
소심한 책방, 그곳에서 무슨 일이>

- 하도리에 가 보았어요

‘종달리에 가야겠다’, 일정에 넣은 것은 순전히 ‘소심한 책방’ 때문이었다. 하도리 주변을 검색하다 알게 된 곳인데 너무 궁금했다. 내가 사는 서울에도 작은 책방, 동네 서점이 있었겠지만 가본 적은 없었다. 말로만 듣던 ‘작은 책방’, ‘동네 서점’ 이었다. 일상에서 잡지 못한 기회를 여행 중에 만든 스스로가 대견했다. 제주도 여행에서 만나는 제주도 작은 서점, 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는 발걸음이다. 


중, 고등학교 때만 해도 학교 앞에 서점들이 몇 군데는 있었다. 학교 다섯 개가 모여있는 동네라서 서점도 골라 갈 정도였다. 학기 초가 되면 참고서나 문제집을 사느라 서점 앞이 북적였다. 친구들과 서점에 몰려가는 것도 하나의 이벤트였는데 집에서 받아 온 책값으로 책을 사고 떡볶이 집도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외국 잡지로 책 커버를 싸는 게 유행이었다. 외국 잡지는 우리 나라 여성지와 다르게 종이가 얇고 광택도 나지 않는 게, 그렇다고 갱지 같이 먼지 일어나는 종이도 아닌 것이 새롭고 신기했다. 


패션 화보라든지 시계, 화장품, 초콜릿 같은 외’쿡’ 상품의 광고 지면이 이상하게 우리나라 것 보다 세련되고 멋져 보였다. 신 문물을 접하는 구한말 사람처럼 광고 이미지로 책 커버를(아무 상관없는 자습서, 참고서를) 싸는 게 좋았다. ‘랄프 로렌’, ‘엠 엔 엠스 초콜릿’, ‘베네통’ 같은, 자본주의의 핵과도 같은 광고와 브랜드에 눈이 번쩍 뜨이게 된 시절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검은 숫자가 비쳐 보이는, 달력 뒷장으로 교과서를 싸던 시대를 지나오지 않았던가!


서점 주인 아저씨 아줌마는 이른바 철이 되면 커버 뭉치를 만들어 놓는다. 책을 감쌀 투명한 비닐 안쪽에 잡지 두 장을 이어 붙인 다음, 그 위에 책을 놓고 싸면 잡지가 책 껍데기가 된다. 그 포장지를 얼마나 예쁜 걸로 많이 보유하고 있느냐가 책방 선택의 기준이 되기도 했다. 친구들끼리 우르르 몰려가서 커버지 뭉치를 돌려가며 각자 마음에 드는 커버를 고르면 그걸로 표지를 싸주었다. 

길게는 1년, 짧게는 한 학기를 봐야 할 책이었기에 책 커버(이미지)는 우리에게 중요했다. 사야 될 책은 이미 다 정해져 있고 마음에 드는 그림(광고)을 고르느라 시간 다 잡아먹던 서점 나들이였으니(이번 하도리를 같이 여행한 두 친구 역시 이때부터 내 삶에 등장한다).


그러고 보니 십대 시절의 서점은 솔직히 참고서나 사러 가는 정도의 서점이었다. 이미 집집마다 어슷 비슷한 동서양 고전이나 백과사전 들이 거실 벽을 장식하던 시절, 문학소녀(년)가 아닌 이상 각 학년 필독 도서나 돌려가며 읽는 수준이었으니까. 나 역시 독서에 눈이 가고 마음이 기운 건 스무 살도 한참 지난 다음이었다.

이십대의 서점은 당연히 시내의 교보문고, 종로서적이었다. 그렇게 큰 서점을 들락거리면서 비로소 사고 싶은 책을 골라서 살 수 있다는 걸 알았다. 물론 당시의 서점 또한 약속장소로 더 애용되는 곳이었지만. 휴대폰 없던 그 때, 종로서적 4층에서 6층을 오르내리며 친구들을 기다렸고 조금 먼저 도착해 책이나 문구류를 구경하기도 했다.


지금 우리 집 앞에도 이 동네에선 꽤나 큰 서점이 있었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오자 마자 다섯 발자국도 안 되는 거리여서, 역시나 약속 장소의 성지였다. 나 역시 그 서점 앞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이어진 먹자 골목을 쑤시고 다녔고, 친구들을 만나 주말 저녁을 시작하는 설레임을 느끼기도 했다. 

인터넷 서점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확실히 책은 많이 읽게 되었지만 서점 가는 발길은 거의 끊겼다. 모든 책은 온라인으로 사서 보며 포인트를 쌓고 굿즈에 눈을 떴다. 굿즈 때문에도 책을 사들이는, ‘어머나, 굿즈를 샀더니 책이 같이 왔어’ 같은 시절을 한참 보냈다. 


신기했던 책, 그들의 세상, 나도 낑기고 싶은 세상, 독립출판의 세계 2016. 1. 7 종달리 소심한책방,

펼쳐보고 바로 계산을 마쳤다. <하도리에서 종달리까지> 최예지


점심을 먹은 오조리에서 종달리까지는 너무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여행 동안 렌터카가 절실했던 순간이 바로 오조리에서 종달리로 넘어갈 때. 차로 가면 10분이면 뒤집어 쓸 거리를, 오름 넘고 물 건너 바다 건너는 아니지만 오조리를 떠난 지 약 한 시간 반쯤 뒤에 ‘소심한 책방’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오조리는 낮은 돌담 골목을 걸어가는 재미가 있었다면 종달 초등학교에서 버스를 내린 뒤 책방까지 걷는 길은, 길 옆으로 갈대 밭이 펼쳐져 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해가 구름 속에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꽤 쌀쌀했다. 사정없이 흔들리는 갈대와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그 길이 약간 황량하고 멀게만 느껴져서 얼른 서점에 닿고 싶었다. 


걷는 내내 서점의 모습이 궁금했다. 이 먼 데까지 책을 사러 오는 사람들이 있을까, 있다면 그들은 과연 누구일까. 드디어 검색하며 보아두었던 책방 모습이 보이고, 나 역시 소심하게 아이를 앞세워 들어갔다.

궁금증은 문을 열자 마자 풀렸다. 사람들이 많았다. 공간이 좁은 느낌도 있지만 사람들도 생각보다 많은 편이어서 진짜 깜짝 놀랐다. 천천히 서가를 둘러보았다. 세간의 주목을 받았거나 알만한 스테디 셀러들이 배열된 모습은 익숙했다. 


한쪽에는 주인장이 추천하는 책들이 있었다. 추천하는 이유들이 작은 메모지에 적혀 책꽂이 마다 붙어 있었고 요런 손 글씨로 책을 소개하는 것이 정겹게 느껴졌다. 한 권의 책을 읽고 감상을 메모해 두어 다음 사람의 선택을 돕는 배려, 작은 책방이라는 공간에서만 주고 받을 수 있는 마음일 것이다. 내가 읽은 책이라면 주인장의 메모를 보면서 공감해보려 했고 아직 못 읽어본 책은 시간을 들여 메모를 천천히 읽어보기도 했다.


두 번째 궁금증도 몇 분 지나지 않아 금세 해결됐다. 공간을 메운 사람들은 세상에, 대부분 2,30대 젊은 사람들, 그리고 나 같은 여행객들인 것 같았다. 붙잡고 일일이 확인하지 않았지만 배낭을 맨 모습이나 둘 또는 셋 일행이 있고, 평일 낮 시간에 카메라를 맨 등산화 차림의 방문객들을 보고 짐작해 봄에 그렇단 얘기다. 

나에겐 뭔가 낯설지만 ‘그러려니’ 하게 되는 풍경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는 이미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는 중인데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랄까? 새롭고 신선하고 하튼 지금까지 내가 알던 세상과 다른 세상이 그 나름의 시간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세상은 이렇게도 돌아가고 채워져 가고 있는데 대체 나는 여지껏 뭘 하고 있었나 하는 괴리감도 들었다.


그러면서 머릿속은 펑, 뭔가 터지는 것 같기도, 충돌하는 것 같기도 한 일렁임이 일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이런 저런 느낌들을 간직한 채 굿즈가 모아진 진열대쪽으로 눈이 갔다. 과연 작고 기발하고 예쁘고,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든 것 같은, 특색 있는 소품들이 눈길 발길 다 잡았다. 제주의 풍경이 그려진 엽서나 메모지, 펜던트나 열쇠고리, 모빌 같은 것들은 그냥 지나치기 어려웠다. 


그리고 드디어, 이거다 싶은 걸 발견하고야 말았다. 내 사고를 확장시키는 새로움, 새로웠지만 익숙하기도 하고 나도 곧 동참하고 싶어지는 그 세계. 그것은 바로 어떤 책이었다. 책은 작고 얇았는데 ‘이게 무슨 책이야’ 라기 보다 책 본연의 틀을 깨거나 넓혔다고 느껴지는, ‘와 이렇게도 책이 될 수 있구나’ 놀라움이 먼저였다. 


<하도리에서 종달리까지>라는 최예지 작가가 그리고 쓴 책이었다. 아코디언처럼 지그재그로 접혀있는, 한 면이 색종이 크기만했고 면 마다 하나의 그림과 한두 문장으로 이뤄진 8면, 표지와 겉장 포함 총 10면짜리, 그러나 펼치면 종이 한 장 이었다. 

그걸 손에 들고 조심스럽게, 또는 큰 임무를 수행하는 것마냥 싹 펼쳐보는데 아주 그냥 뒷 통수를 세 게 ‘읃어’맞은 것처럼 ‘펑’에 이은 ‘번쩍’, 알 전구 수 십 개의 반짝거림이 눈앞에 나타나는 듯했다.


책은 하도리에 살고 있는 그림 그리는 작가(주인공)가 자신이 만든 책을 들고 집(하도리)에서 종달리 서점(바로 이곳 소심한 책방)으로, 그 책을 입고하러 가는 여정을 그리고 쓴 것이다.

사실 내용은 아주 단순하고 뭐 특별할 것이 없다. 모두 8면, 아이들의 그림책보다도 적은 분량에 얼마나 많은 내용이 담길 수 있으랴. 하지만 내가 놀란 것은, 시작과 끝으로 이어지는 내용을 보면 완벽한 이야기(책)였기 때문이다.


아무리 분량이 적어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정확히 전달되었고 오로지 그 한가지를 위해 책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나를 흔들었다. 책을 읽고, 주인공의 여정과 기쁨이 군더더기 없이 내 마음에도 전달 되었다. 바로 그것을 말 할 수 있다면, 백과사전 두께든 접어서 만든 책이든, 겉모습은 중요하지 않은 거구나 비로소 깨달음이 왔다. 이미 그건 책이었고 이렇게 만든다면 만드는 재미까지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활자가 빼곡한 책도, 몇 장 안 되는 책도, 읽는 느낌과 전해지는 감동이 같을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고 그 느낌은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 로 이어졌다.


하도리에서 만난 세상, 그 세상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 이 곳에 서 있기 위해 삶의 방향을 틀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세계가 있다는 것, 그것이 독립출판이라고 불린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지금은 2019년, 처음 하도리에 다녀온 지도 벌써 3년이 지나고 있다. 머릿속에서 충돌했던 그 일렁임은 어쩌면 ‘바람’ 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거 한번 해보고 싶다”는 바람. 그런 게 ‘있다더라’, 막연히 들어봤던 독립출판의 세상을 작은 책방에서, 하도리에 와서 알게 된 것이다. 


하도리에서 돌아온 후 다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그 바람이 계속될지 아니면 말 그대로 스쳐갈 바람일지 유예의 시간을 둔 것 같다. 하지만 알았다. 유예했던 시간마저 아까웠다는 것을. 기다리지 말고 그냥 했으면 됐다는 것을. 이런 자책은 더 이상 그만, 어쨌든 나는 자판을 찍기 시작했고, 덕분에 하도리를 아주 길게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2016년에서 2019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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