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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니크한 유니씨 Jul 30. 2020

[동전과 구멍]

- 요건 그냥 다른 이야기

코로나19로 인간들의 세상은 서서히 멈추었다. 예측하지 못했던 실직, 침체, 불황들이 구석구석 구멍을 늘려나갔다. 사람들은 바깥 활동을 멈추고 ‘집구석 일상’을 늘려나갔다. 재택근무, 화상 회의, 온라인 학습, 대책 없는 개점휴업... 울며 먹는 겨자도 이보다 잔인하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삶이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만이 가진, 절대 양면을 분리할 수 없는 동전이나 지폐처럼 삶에도 엄연한 양면이 존재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나쁘기만 한 일 없고, 하나부터 열까지 다 좋을 수도 없다. 행과 불행, ‘긍정적’과 ‘부정적’은 주거니 받거니, 장소팔 고춘자의 만담처럼 우리 삶에 들고 나기를 반복한다. 


여기저기 뻥뻥 뚫린 구멍에 빠져 하루하루 어렵고 힘든 삶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미세먼지, 황사 없는 봄날을 지나왔다는 건 새삼 경이롭다. 동틀 무렵 새들의 지저귐이 갈수록 다양해지고 오래 들리는 새벽은, 이대로 세상이 푸르러지려나! 순간이지만 부푼 마음을 갖게도 한다. 


어디 그뿐이면. 일주일에 두세 번 나가는 한강에서는 처음 보는 새들을 만날 때가 있다. 두루미, 또는 왜가리 아니면 고니같이 생긴, 가늘고 긴 어떤 새는 강가에 혼자 머물렀는데, 정말이지 옆에 같이 앉아 말이라도 붙여 보고픈 뒷모습이 신비로웠다.


2020 0516 잠실대교 아래, 자양중앙나들목 방면의 강변에서 만난 호리호리한 새님


 이 동네만 그런 게 아니다. 어느 바다에는 분홍 돌고래가 놀고 있다는 기사, 너구리 가족이 조용한 고궁을 거닌다는 영상, 130년 전 멸종한 줄 알았던 무슨 새가 나타났다는 뉴스들은 태초의 웃음, 아무것도 가미되지 않은 순도 높은 기쁨과 탄식이 가능케 한다.

 그동안 대체 이들은 어디서 어떻게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던 걸까. 인간이 점유한 세상을 견디고 있었을 존재들에 큰절이라도 올리고 싶다. 감염병 말고, 이들과 반드시 공존할 수 있는 인간의 방법이 분명 있을 텐데. 몰라서 못 하는 건 아닐 테고, 알면서 안 하는 이유, 인간은 이미 알고 있다. 사람은 똑똑하니까.


 이게 다 한강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한다’는 이유로 한강을 걷기 시작했다. 따로 걷는 시간을 마련해서 걸었다는 뜻이다. 2018년 3월부터였으니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그래야 하는 이유란, 밥 먹고 화장실 가는 것처럼 하루의 동선 안에 운동을 들여야 하는 것이었다. ‘매일 조금씩 가능한 운동을 꾸준히 하세요’, 말 잘 듣는 인생은 아니었지만 어떤 경우에는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때가 있는 법. 그러니까 나의 시작은 동전의 한 면을 겨우 인식하는 정도였다.


 일단 운동에 전혀 관심이 없었고 운동과 스포츠(경기)를 살짝 헛갈린 까닭도 크다. 승부욕과 경쟁심은 얻다 쓸래도 없고, 운동신경도 그게, 없는 것에 가까운 있음 정도. 같은 운동장이라도 체육 시간보다 조회 시간의 부동자세가 훨씬 반가웠으니.


  하지만 걷는 일은 좀 달랐다. 운동신경이나 승부욕과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는 걸, 걷기 전엔 알지 못했다. 모든 운동이 승부를 내는 것인 줄만 알던 내게, 걷는 일이란 시간을 만들고 모으는 일이었다. 철저히 혼자 확보해 낸 시간 속에서 나만의 시간이 다시 이어졌다. 


 사실, 하루 24시간 중에서 오직 하나의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아무도 없는 집에 앉아 글을 쓴다 해도, 중간에 일어나 커피도 만들어야 하고 돌아가는 세탁기에 섬유유연제도 넣어야 한다. 자판을 두드리다 막히면 서랍을 열어 거울이라도 꺼내 보아야 하고 그러다 책장까지 뒤집는 일로 번지기도 한다. 동시에 무수히 많은 일을 처리해 내는 익숙함은, 아무리 짧은 한 시간이라도 온전한 집중을 방해하는 꼴이 되고 만다.


 하지만 걷기는, 그 처음과 끝을 오로지 나의 움직임을 이어서 채운다. 한 발 한 발로 완성되며 다른 어떤 동작이 들어올 수 없다. 걸음으로 시작해서 걸음으로 맺음 되는 걸음의 끝을 걷는 사람만 본다. 걷지 않으면 그 순간 끝이고, 걸어야만 걷기가 끝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강을 걷기 시작하면서 트이는 시야가 느껴졌다. 두 발은 땅을 밟아 나가지만 감각은 밖을 향해 펼쳐진다. 시간마다 다른 하늘, 계절이 품은 색, 바람의 소리와 냄새, 사람들의 움직임과 기운들에 오감이 닿기 시작했다. 늘 비슷한 듯 변치 않고, 오늘도 내일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거대한 순환을 따라 자연 스스로의 주기를 겪어내는 움직임을 나는 보고 있었다.


 내가 걷는 거리는 조금씩 늘어났고 덩달아 시간도 늘어났다. 처음엔 애써 만들어야 했던 시간은 이제 동전의 다른 한 면을 고스란히 담보하고 있다.


ps> 그러나 다시, ‘그래야 하나 말아야 하나’의 이유로 한강 걷기를 멈춘 지 한 달이 조금 지났다. 지금까지 만큼의 걷기를 못 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려니, 그게 다는 아닐 것이다. 이 또한 동전의 한쪽 면일 뿐, 뚫린 구멍이 있으면 솟아날 구멍도 있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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