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묶일 만큼만 짧게 잘라주세요

단발의 세계

by 솔의눈

결혼 전에도 단발머리를 자주 했었다.


하지만 아이를 낳은 후에는 왠지 단발머리가 '넘지 말아야 할 선'처럼 느껴졌다. 아이 키우기에 바빠 나 자신을 꾸미는 것은 포기해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난 마흔 살 돼서도 긴 생머리 할 거야!"라고 선언했다. 정말 출산 후 몇 년간 긴 머리를 잘 지켜냈다. 머리를 감을 때마다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지고, 엉망진창으로 엉켜 빗질도 쉽지 않은 머리와 씨름하고, '예쁘려고 긴 머리를 고수한 건데 예쁘지가 않잖아!'라는 생각을 하긴 했다.


하지만 복직을 하고, 아이가 본격적으로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침에 긴 머리를 감고 말리는 시간이 아깝게 느껴졌다. 이 시간에 더 자거나, 아이랑 놀아주는 게 낫지 않을까?

Pexels에서 cottonbro studio님의 사진: https://www.pexels.com/ko-kr/photo/3993453/


결국 미용실 예약을 했다.

"기장은 어느 정도로 해드릴까요?"라는 미용사의 질문에 "겨우 묶일 만큼 짧게 잘라주세요."라고 대답했다. 싹둑 잘려나가는 머리카락을 보니 조금 서글프면서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드라이를 받고 나니 오히려 더 산뜻해 보이기까지 했다.


단발머리는 정말 편했다!


머리 감고 말리는 시간이 확 줄어들어 아침에 조금 더 잘 수 있다. 처음엔 C컬파마도 같이 했었는데 신랑이 결혼기념일 선물로 에어랩을 사준 이후로는 커트만 하게 되었다. 아침에 10분 정도만 투자하면 긴 생머리보다 훨씬 예쁘게 세팅할 수 있다.


20대 때는 단발머리를 한 번 하면 그다음에는 다시 긴 머리로 돌아갔다가, 파마도 했다가, 중단발로 잘랐다가 하면서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이젠 그냥 똑 단발에 정착해 버렸다.


한번 맛본 단발머리의 간편함은 너무 달콤해서 벗어날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작년에 결혼한 옆팀 여직원도 얼마 전 긴 생머리를 짧게 자르고 출근했다. "결혼하고 단발머리하면 아줌마가 되는 것 같아서 자르기 싫었는데, 막상 자르고 보니 너무 편해요."라고 한다. 그 마음 내가 잘 알지!


민망하게 웃는 그녀 앞에서 "긴 머리도 예뻤는데 단발머리하니까 너무 상큼하고 잘 어울리는데요!"라며 호들갑스럽게 칭찬을 해본다.


'단발의 세계에 입문한 걸 환영해요 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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