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줄까 말까 내가 할까 말까
부사수에게 일 나눠주기
보통 부하직원이 상사의 눈치를 많이 볼 거라고 생각하지만 상사도 부하직원의 눈치를 엄청 본다.
소희씨가 지난번 눈물을 쏟은 이후로 그 친구에게 업무를 줄 때마다 고민하게 되었다. 혹시 일이 많지는 않을까? 이건 신입에게 너무 어렵지 않나..?
그러다 결국 10개의 일 중에서 8개는 내가 처리해버리고 만다.
어제도 그랬다. 한 달간 진행했던 업무에 대해 항목별로 누적데이터를 정리해 보고하는 날이었다. 원본데이터에서 피벗테이블을 한번 돌리고, 필요한 항목들을 vlookup 함수로 찾아 넣어 보기 좋게 표로 만들어 각 담당자들에게 다시 배포하는 일이다.
처음엔 소희씨에게 이 업무를 알려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팀장님이 새롭게 부여한 업무 마감일을 맞추느라 팀원 중 한 명이 '맛있는 디저트를 사 왔다'라며 소집한 간식타임에도 참여하지 못했다.
게다가 지난달에 보니 소희씨는 엑셀에 그다지 익숙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벤트 참여자의 연락처 정보를 찾기 위해 원본 파일에서 ctrl+F를 반복해서 누르고 있는 소희씨를 보고, 함수를 쓰면 훨씬 빠르다며 vlookup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과장님.. 죄송한데.. 혹시 그 함수 한 번만 더 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하지만 소희씨는 다음 주에도 그다음 주에도 같은 질문을 해왔다. 음, 그렇지 엑셀함수는 좀 어려울 수 있지!
그래서 로우데이터 정리만 소희씨에게 맡겼다. 하지만 파일을 전달받아 작업하다 보니 숫자가 맞지 않았다. 다시 원본데이터를 뒤집어봤더니 하루치 데이터가 통으로 빠져있었다. 한숨이 나왔지만 부사수에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며 빠진 데이터를 다시 집어넣고 보고서를 완성했다. 그리고 앞으로 웬만한 엑셀 작업은 그냥 내가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거 마감일까지 가능해요?"
어제 팀장님이 지적한 업무는 한 달 전 내가 소희씨에게 넘겨준 것으로 마감일이 하루 남은 일이었다.
"소희씨, 업무 일정 안될 거 같으면 솔직히 말해줘요. 내가 하면 되니까"
"내일부터는 일이 많이 없어서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속으로는 '그냥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지만 본인이 할 수 있다고 하니 한번 맡겨보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직접 했다면 오전 중에 이미 팀장님께 보고가 올라갔을 텐데 소희씨는 오전 내내 다른 업무를 하다가, 11시쯤 문제의 그 업무 파일을 열었다.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참견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성실한 소희씨를 믿고 꾹 참았다. 이금희 아나운서도 상대방이 원할 때만 내비게이션을 켜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친구도 내 도움이 필요하면 먼저 요청할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제발 소희씨가 마감일 내 보고서를 올릴 수 있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