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은 혈연으로 결정되는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시간으로 만들어지는가?
1. 영화 소개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2013년 공개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9번째 장편 영화다. 병원에서 자식이 뒤바뀐 이야기를 토대로 한 작품으로 아버지와 자녀, 혈연과 시간을 다룬 가족 영화다. 제 66회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어 심사위원상을 수상했다.
져본 적이 없이 살아온 성공한 비즈니스맨 료타는 아내 미도리, 아들 케이타와 함께 바쁜 나날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를 받고 찾아간 산부인과에서 자식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6년 동안 다른 사람이 낳은 아이를 키웠다는 사실에 충격받은 료타 부부는 자신의 친자 류세이를 키우는 유다이 부부와 만난다. 전파상을 운영하며 근근이 세 자녀를 키우는 유다이 부부와 합의를 통해 아이를 바꿔서 키우기로 한다. 료타는 어린 시절 자신과 똑같이 해동하는 류세이를 보고 혈연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이 비로소 가족을 만든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2. 가족의 정의는 무엇인가?
이 영화는 두 가족의 아이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건에서부터 출발한다. 성공한, 엘리트 뭐 이런 단어가 어울리는 회사원 료타(후쿠야마 마사하루)는 자신이 키워온 아이 게이타가 사실은 병원에서 바뀐 남의 아이였다는 사실을 통보받는다. 이 영화에서 료타는 목소리도 표정도 도통 알아들을 수 없을 만큼 표현이 크지 않고 발화량도 많지 않다. 처음에는 그런 료타의 캐릭터가 성공한 엘리트의 모습이라기보다는 무미건조한 일상을 살고 있는, 어쩌면 우울장애를 겪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샐러리맨쯤으로 보였다.
여기에서 감독은 묻는다.
“가족은 혈연으로 결정되는가,
아니면 함께 살아가는 시간으로 만들어지는가?”
료타는 처음엔 피의 연결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엘리트로서 자존심도 강했고 완벽주의적 사고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유다이 가족의 자유롭고 유쾌한 생활을 목격하면서 그는 자신이 그동안 가족과 함께 살았나? 가족도 그저 관리했을 뿐이었나? 라는 질문과 깨달음을 얻게 됐다. 이 영화는 혈연 중심 (일본 사회를 비롯한) 사회의 통념을 비판하면서도 단순히 혈연보다 정이 중요하다는 결론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오히려 감독은 양가의 상처와 혼란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며 가족이란 혈연과 시간, 두 중요한 요소가 서로 뒤얽혀 만들어지는 관계임을 이야기한다. 결국 진실보다 함께 살아온 기억의 무게를 이야기하는 것 같다.
3. 나는 어떤 아버지인가?
두 번째 질문은 아버지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인가?”
료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아버지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도시의 고급 아파트, 명문 유치원, 완벽한 계획 아래 아이를 키웠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성공이 오히려 진정한 부성애를 가리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료타는 아이와 감정적인 교류를 하는 대신 효율적으로 관리한다. 아이와 함께 웃거나 노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런 그에게 아이 바꿔치기 사건은 일종의 부성의 붕괴로 다가온다. 그는 자신이 피로 어어지지 않은 아이를 길렀다는 사실에 분노하면서도 어느 순간 게이타의 사진과 목소리를 그리워한다. 그는 진짜 아들 류세이와 함께 살기 시작하지만 정작 마음이 닿지 않음을 느낀다. 오히려 자신과 피로 이어지지 않았던 게이타의 사진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진짜 아버지라는 정의가 피에만 있지 않음을 몸으로 깨달았다. 고레에다 감독은 료타를 통해 일본 중산층 남성의 부성 정체성 위기를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회는 그에게 성공이라는 것을 주었지만 그 마음 속 감정의 언어는 사라졌다. 결국 이 영화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좋은 아버지는 성공하는 사람인가.
아이와 함께 웃고 우는 사람인가?”
이 질문은 단지 영화 속 아버지에게만이 아니라 현대 사회 전체의 아버지상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아버지의 경제적 능력의 중요도가 너무 높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 그래서 이 질문에 대해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
4. 남성의 성장과 감정의 회복 –돌봄을 배우는 아버지 되기
“돌봄을 배운다는 것은 남성에게 어떤 의미일까?”
료타의 여정은 단순히 친자 문제가 아니라 감정을 회복하는 남성의 성장서사로 봐도 좋을 것 같다. 그는 사회가 요구한 이상적 남성상-냉철하고 효율적이며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의 전형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로서의 실패?’는 자신의 인간성 전체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료타가, 게이타가 찍은 카메라 속 사진을 보는 장면은 그의 내면 전환을 보여주는 찡한 장면이었다. 아이가 몰래 찍어둔 평범한 일상, 아버지의 손, 가족의 얼굴, 그 사진 속에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을 마주한다. 나는 이 지점은 한 아버지로서의 변화도 있지만 한 인간으로서의 회복이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런 감정의 훈련 저만치에 돌봄이 있었다. 료타는 돌봄이 효율적인 통제라고 생각했었지만 함께 울고 웃는 공감이었고 완벽이 아니라 불완전의 수용이라는 것을 경험해 가고 있었다. 그 변화의 끝에서 그는 게이타를 찾아가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을 통해 돌봄이 엄마의 여성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의 성숙을 위한 어떤 부분임을 보게 되었다.
5. 이분법적 구성
그러나 나는 또 이 영화에 대해 이분법적으로 부성을 표현한 것에 대한 불편함이 있다.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행복하지 않은 아버지와 가난하지만 유쾌하고 단란한 아버지를 극적으로 대조하는 방식이 불편하다. 사실 현실을 돌아보면 우리는 가난한 가정이 생계를 어렵게 꾸려가면서 행복하기가 힘든 신자유주의사회, 능력주의 시대를 살고 있다. 부유하지만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가정과 가난하지만 행복한 가정이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활용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극대화한 클리세는 이해하지만, 이런 이분법 사용은 너무 뻔하고 쉬운 전달법이라는 생각에 아쉬움을 느꼈다. 또 어쩌면 이런 구조였기에 신파 없이 담담하게 이야기를 끌어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6. 결론
그렇게 한 인간이 된다.
이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한 남성이 가족을 통해 인간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로 봐도 될 거 같다.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피로 이어진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 감정의 회복과 돌봄의 학습을 통해 자기 자신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이며 그 과정의 기억이다.
료타는 영화 초반에 혈연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끝에서는 기억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마지지막엔 이런 질문이 남는다.
나는 어떤 사랑으로 가족을 만들고 있는가
나는 누군가를 돌보는 법을 알고 있는가
이 질문은 나에게 우리 모두에게 향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사랑을 배우고 ‘그렇게’ 아버지가 되고 ‘그렇게’ 한 인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