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정의와 경계선지능인
나의 핸드폰에는 주식거래 앱이 두 개 있고, 코인 앱도 하나 있다. 아이들 치킨값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요량으로 앱을 들락날락하다가 말다가 주위에서 돈 좀 벌었다고 하면 또 들락날락. 여전히 앱을 삭제하지 않고 쳇바퀴다. 일이 존엄하다면서도 일만으로는 해결되지 못하는 일상의 어떤 자리에서 아이러니하고 모순된 선택들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 모순의 자리에 능력주의도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고학력도 아니고 능력도 없으면서 나의 뼛속까지 능력주의적 세계관이 자리잡고 있고 심지어 요셉 다니엘 에스더 등 성경인물을 해석할 때도, 교회 간증을 들을 때도 다 결국은 능력주의와 관련이 있다. 나의 이런 문제를 발견하고 지적해주는 것이 [공정하다는 착각]의 마이클 샌델 같은 학자의 역할이라면 능력주의의 한계를 인정하고 결과의 형평성을 위해 대안을 고민해야하는 몫은 일상의 모순 속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이다.
최근에 능력주의적 관점에서 오는 고통을 경험하고 결과의 형평성과 관련된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부분은 ‘장애인복지법 제2조의 장애인 정의’다. 그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
우울과 자해로 어려움을 호소한 한 내담자(만16세, 영희 가명)가 있다. 나는 영희의 사회성이슈 또래문제 학습어려움 우울 자해 자살계획 등 모든 어려움의 뿌리를 경계선지능으로 보고 있었고, 관련해서 지속적인 상담이 필요해 학부모와 담임선생님의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날 영희어머니께서 웃으시면서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데 나는 너무 슬퍼서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영희가 어머니의 어려움을 물려받았구나. 유전이 가혹했다. “신의 은총인지, 어쩌다 이렇게 태어났기 때문인지, 운명의 장난인지 몰라도 덕분에 나는 지금 여기 서 있다.”(353p)
경계선지능인은 IQ71-84 범위의 지능을 가진 사람들을 말한다. 지적장애 기준이 IQ70 이하로 명시되어, 경계선지능인은 장애등록대상에서 제외된다. 법적으로 장애인으로 인정되지 않지만 평균지능(IQ85이상)에 미치지 못해 학습, 사회 적응, 직업 유지 등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또 국가의 복지 및 지원 체계에서 소외되고 있으며, 실질적으로 제도의 사각지대에 있다. 같은 수준의 어려움을 겪는 다른 장애 유형과 달리 경계선지능인은 아무런 혜택이나 보호 없이 민간기관에 의존 또는 방치되는 경우가 많아 사회적 낙인과 빈곤의 악순환에 빠지고 있다.
영희는 오늘 담임선생님에게 전학을 권고받았다. 특성화고 특성상 기술 훈련이 필요한데 그 부분에서 어려움이 컸던 것. 영희는 인문계고를 진학할 학습능력, 성적이 안 돼 특성화고에 진학했는데 이 학교에서도 어렵다고하면 영희는 저학력 무기술 빈곤에 빠질 위기에 처하게 됐다.
경계선 지능은 유전적 요인이 강하다. 부모 또는 형제 중 경계선 지능 또는 지적장애 이력이 있는 경우 위험성이 높아진다. ADHD, 자폐스펙트럼장애(ASD) 등이 함께 나타날 수 있고 언어 자극이나 사회적 상호작용이 부족할 경우 환경적 요인도 원인이 될 수 있다. 사실 부모가 경계선지능이고 동시에 저소득층으로 교육적 지원도 적은 가정환경일 경우 유전적 요인+환경적 박탈이 동시에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영희의 경우는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원인을 조기에 파악하고 적절한 교육적 정서적 지원을 제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런 어려움을 인식한 김희정 의원이 2024년 9월 <경계선지능인 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며 입법 논의를 시작했다. 조승환 의원 등은 2024년 7월 <경계선지능인 평생교육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고, 부산 강서구와 연제구는 지방 조례를 제정해 교육 및 멘토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IQ72인 경계선지능인이 지적장애 판단을 기피한 행정담당자에 대한 소송을 제기했는데, 법원은 이 문제를 입법으로 해결하라고 판결했다. 그렇다. 이 지점은 행정이 아니고 먼저는 입법이 필요한 지점이다. 국가 차원의 법적 기반을 마련해야하고 그래야 전국적으로 행정을 사용할 수 있다.
법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 중 하나는 경계선지능인이 장애인복지법 제2조의 장애인 정의에 따른 법적 장애인으로 인정되는 것(별도 항목으로 정의할 수도)이다. 두 번째는 복지 및 교육서비스 지원, 직업훈련 및 취업 연계 프로그램, 정서 심리 치료 및 가족 상담지원, 전국 단위의 경계선지능인 실태조사와 통계 구축 등 경계선지능인과 관련된 구체적인 지원이다.
입법적인 과제는 국회의원 시민단체 학부모 일반시민 SNS 언론 등과 함께 연대가 필요하다. 네덜란드의 경우 우리보다 먼저 경계선 지능 학생을 지적장애 지원체계에 포함해 자립생활 기술, 직업 준비 활동, 사회적 기술 훈련을 체계적으로 제공한다고 한다. 우리 법이 네덜란드의 경우를 벤치마크 해, 경계선 영역에 있는 이들을 좀 더 포용적으로 법적 제도권 안으로 포괄해주길 바란다.
내가 상담실에서 영희와 풀어야할 과제들은 연민과 전문성이 요구된다. 상담실에서 만나는 영희와 같은 학생들의 특성을 탐색하고 어려움의 뿌리를 적절히 찾는 것, 종합심리검사를 통해 지능의 어려움이 있는지 단순한 발달과제인지를 확인하는 것, 특히 남 고등학생의 경우 곧 군 입대할 연령이므로 경계선지능이 의심된다면 반드시 종합심리검사를 통해 기록을 남겨두는 것, 여학생의 경우 성 관련 이슈에 노출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콘돔 사용하기, 거절 의사표시하기 등을 구체적으로 교육하는 것, 교사에게 경계선지능 ADHD 등의 특성을 교육하고 이들이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보일 수 있는 심리정서적인 어려움을 교육하고 이들과의 적절한 대화법을 연수하는 것, 경계선지능인과 그 가족이 자신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도록 현명하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겠다.
한 학기 동안 책을 읽고 정리하면서 말의 자리에 글의 자리에만 앉아 있는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있었다. 한 번도 굶어본 적 없는 내가 오늘 저녁 메뉴를 고민하면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레포트를 쓰고 있었던 심정. 말도 글도 회피하고 싶었던 시간들을 보내고 이제 여기에 있다.
이렇게 경계선지능인과 관련된 나의 실천적 과제를 글로 정리하면서 마이클 샌댈 식의 공동선을 생각한다.
내 공동선의 제1현장은 작은 상담실 테이블이다. 내가 뭐라고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열고 내 앞에 마주 앉아줄까. 상담실을 찾아오는 그들의 격에 맞는 겸손과 예를 갖추고 경청하기부터 시작한다. 그 순간이 나의 하루 중 가장 경건한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