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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Dec 21. 2020

영화인 Z의 고백.

알파벳 Z 쓰고, 을 (乙)로 읽는다.

영화를 관두겠다고 마음을 먹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감정들로 인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영화 스텝일을 관두겠다는 사람의 고백이다. 

퇴사 같은 개념이 없으니 그냥 다음 일을 안 하면 그만이지만 구질 구질한 내 20대의 연애들처럼 미련이라는 게 남아서 일자리 소개라도 들어오는 날엔 온 마음이 출렁였다. 

그런 마음을 다잡을 무언가가 필요했다.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영화를 관두겠다고 말했다. 

영화 말고 내가 뭘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변화들을 글로 쓰기로 마음을 먹고 노트북을 펼치니 그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갔다. 

눌러 왔던 감정들이 봇물처럼 쏟아졌고, 생각의 흐름을 타자의 속도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되는대로 메모장에 쓰다 보니 어느덧 분량이 꽤 되었다.  

어떤 날은 단어들의 나열이었고, 운 좋은 날은 문장으로 남았다. 

시나리오를 쓸 때는 죽도록 힘들더니...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는 글쓰기는 행위 자체로 즐거웠고, 꽤나 내적 치유에 도움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냥 일기장에 남기고 끝내버릴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시발점이 되어서 내 속의 나약함들이 끝없이 날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 너 10년 간 버틴 게 아깝지 않니? 그래도 감독은 한 번 하고 관둬야 덜 억울하지." 

" 영화 말고 할 줄 아는 건 있고? 그 흔한 자격증 한 번 안 따 본 네가 뭘 할 수 있어?" 


분명히 용기를 냈다고 생각했고, 매일매일 날아갈 듯 즐거웠는데 또다시 불안이 날 잠식하기 시작했다. 

며칠의 여유를 가지고 거칠게 써 내렸던 글들을 다시 읽어보았다. 

글 속에 나는 까칠하고 당당하고 할 말 다한다고 평가받는 내가 아니었다. 

영화 산업의 가장 말단에 있는 연출부로 꾸역꾸역 순간을 버텨냈던 내가 있을 뿐이었다. 

어떤 글들은 영화계에 관한 내부고발에 가까운 글이라 덜컥 겁도 났다. 

제도는 매년 개선되기도 했고, 내 주머니 사정도 점점 나아진 것도 사실이다. 

내 손엔 장편 시나리오가 있었고, 고지가 눈 앞이라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잘 살고 있다고 믿었다. 

내가 뭐라고 글을 써서 논란의 여지를 만들려는 걸까? 

이 시스템의 온전한 피해자도 아니었고, 때때로 가해자이기도 했다. 

지금이라도 글쓰기를 관두고 돌아가면 된다. 

아무도 모른다. 

당장의 생계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문제이다.  


스스로에게 미안하다고 울었던 나를 추스르기도 전에 또다시 흔들리고 있었다. 

내가 나를 더 미워하기전에 정신분열의 상태를 끝내고 글을 공개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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