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완벽하려 애쓰는가?
첫 번째 글을 수없이 탈고하고 두 번째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는데 두 달이나 걸렸다. 이 글을 쓰면서 날짜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분명히 혼자서 '구글 킵'에 끄적일 때는 곧 책이라도 낼 수 있을 기세였다. 그러던 중에 브런치에서 독립서점을 운영하는 지인의 글을 발견했고, 그가 낸 책을 얼마 전에 보았던 터라 반가운 마음에 그에게 소식을 전했다. 그는 망설이는 나에게 용기를 주었고, 거기에 힘입어 쓴 글을 브런치에 옮기기만 하면 곧 출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글을 누군가가 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써놓은 글을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쳤다. 그렇게 작가의 서랍에 조차 글을 옮기지 못하고 두 달을 보냈다. 그놈의 완벽주의가 또 내 발목을 잡았다.
써 놓은 글을 옮기기만 하면 될 것 같았는데, 그게 안되었다. 작가 신청도 안 했는데 두 번째 글로 옮겨가는데 나의 모든 의지력을 동원해야 했다.
나는 나의 완벽주의를 너무 과소평가했고, 나의 의지력을 너무 과대평가했다.
세상의 모든 역사를 안다는 건 꾸역꾸역 그 모든 순간을 기록으로 남겼던 인간들의 부산물을 보고 아는 것이다.
과거의 기록물들은 비싼 종이와 잉크를 쓸 수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이어서 승자들의 역사라는 오명도 있지만, 현재 IT 강국인 한국에선 인터넷 상에서 누구나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고, 기록으로 남겨서 그간 편향된 기록물의 수적 열세를 극복할 수도 있다. 분명히 유토피아가 열렸는데 내 의지력은 왜 이모양인가? 왜 또 완벽한 무언가를 기록하기 위해 애쓰는가?
내 기록이 무엇을 향한 고발이나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개인이 겪은 미시사의 일부가 되길 원했다. 그런데 나의 인정 욕구와 완벽주의가 만나 의미 있는 무엇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한때 무소유에서 비롯된 미니멀리즘에 취해서 이 세상에 무언가 남기는 인간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지금 보면 그냥 빈약한 의지력과 완벽하지 못해서 받을 비난이 두려워 피하고자 했던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았다.
일을 관두기로 마음먹고 분명히 이것저것 읽고 듣고 보고 했지만 막상 아무런 결과물이 없었다. 그저 생각만 하면서 무언가가 바뀌고 있다는 착각을 하며 시간만 흘려보냈다. 현실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엔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걸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았다. 내 빈약한 의지력 덕분에 다시금 찾아온 일자리 제안에 흔들렸고, 이 모든 게 머릿속에서 끝나고 말 위기(?)까지 갔다.
일단 쓴 글을 그만 고치고 브런치로 옮기자.
그 글이 쌓여서 무언가의 결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그 이루어진 결과가 마음에 안 들면 그때 가서 또 수정하면 된다.
완벽할 필요도 없고, 완벽할 수도 없고, 완벽한 것이 있을 수도 없다.
그러니 그만 생각하고 일단 옮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