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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Dec 28. 2020

자본주의 노예의 고뇌

소비 주의자의 치열한 삶

'가성비'라는 말의 저급함이 싫었다. 

내 존재마저 가성비가 떨어져 바닥을 굴러다닐 것만 같았다.


경력은 차 오르는데, 그 자리를 저임금의 다른 이들이 채우는 걸 보면, 

어쩌면 가성비의 세계에선 인간의 노동력 또한 피해 갈 수 없는 것 같다. 


개인의 취향은 수많은 소비의 결과이다. 

취향이 좋다고 근사하게 포장 하지만, 

결국은 많이 사보고 실패해본 사람에게 주는 위로의 말과 같다. 

그러니 위축되지 말고 더 가열차게 물건을 구매하시오! 


내가 가성비라는 말에 구입한 물건은 늘 그 가성비에 맞게 내 맘에서 멀어져 갔다. 

그 분야의 최정점에 있다는 물건을 기웃거리다가 

결국은 가성비 좋은 물건을 처분하고 애초에 욕망했던 물건을 구입한다.

나는 하나의 물건을 얻기 위해서 원래의 가격과 가성비라는 시행착오의 비용까지 다 지불을 했다.

어느 순간부터는 내 지갑이 허락하는 한 가장 비싼 걸로 구매한다. 

가끔은 '미니멀리즘'이라는 단어가 고가의 물품을 구매하는 내 소비를 합리화해 주었다. 
어쨌든 그게 역설적이게도 가장 가성비가 좋았다. 


정말 갖고 싶은 물건인데 돈이 없다면 그때부터 돈을 모은다. 

많은 물건들이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물건으로 대체되었고, 

가끔은 구매 욕구가 사라졌다. 

돈이 모인 시점에는 더 좋은 물건이 나오면 그대로 더 좋았다. 

그렇게 돈이 다 모일 때까지도 그 물건이 가지고 싶다면 그건 정말 평생을 함께 할 반려 물품이다.


내가 그렇게 해서 구입한 건 '라이카 Q' 카메라다.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카메라를 들고 살았던 나에겐 정말 로망과 같은 단어 '라이카' 

3년을 모았 던 적금으로 일시불로 구매할 때의 희열이란!

수명이 짧은 디지털카메라 세계에서 '라이카 Q'는 4년째 매일 같이 나를 만족시켜주고 있다.  

다른 카메라의 신제품 소식이 들려도 사용기를 읽으며 구매욕구에 불타 오르지 않아도 되었다.  

내게 시간 절약까지 이룬 셈이니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 



어쩌다 보니 주변 지인들에게 '환경주의자'라는 말 까지 듣게 되었지만

처음의 시작은 가성비가 좋다는 플라스틱의 내구성이 싫어 구입하게 된 유리 용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1인 가구라 많은 반찬통이 필요도 없는데, 

늘 락앤락 구성은 12개 세트이거나 1+1이거나 2+1이거나 무엇을 사면 끼워주었다. 

그 가벼움이 싫었고, 갖고 싶지 않는데 주어지는 것들이 내 작은 공간들을 채우는 게 싫었다. 

공짜로 주어지는 것들을 함부로 대하는 내 모습도 싫었다. 

미니멀리즘이 유행했을 때 제일 먼저 죄책 감 없이 정리해 버린 것이 플라스틱 물건들이었다. 

내 방은 정리가 되었지만 마음 한편엔 쉽게 버리고 쓰레기가 돼버린 것들에 대한 죄책감이 쌓여갔다. 

나는 결코 그 돈을 쉽게 벌지 않았는데 시간과 바꾼 나의 노동력을 너무 하찮게 내다 버렸다. 

거기다 환경 이슈까지 눈 뜨게 되면서 내 마음은 점점 불편해져 갔다.

어느 날은 그 자리를 더 비싼 물건들로 빠르게 채우기 위한 자기 합리화 과정인가?라는 의심이 들었다. 


이걸 다시 채우기 위해 나는 얼마나 더 나를 갈아넣아야 하는 걸까.. 


'제로 웨이스트'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이게 바로 내가 찾던 '지속 가능한 소비'라는 생각에 

인스타그램 해시태그도 팔로우를 했다. 

정신을 차려보나 또 다른 마케팅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내가 환경을 생각하게 된 시작점이 또 다른 마케팅의 일환이라는 깨달음은 정말 뼈를 때린다.


고체비누, 고체 치약, 고체 샴푸, 대나무 칫솔, 소창 와입스, 장바구니, 프로듀서 백, 유리 빨대.. etc. 


분명히 제로 웨이스트라 소비하고 멀어질 줄 알았는데, 

이 세계에서도 무한히 소비할 것들이 생겨났다. 


내가 벌어 내 돈 주고 사지만 이상하게 눈치를 볼 수밖에 없어서 돈을 쓰면서도 

간혹 ‘제로 웨이스트' 이름을 달면 막 납득이 되었다. 


이 물건들은 평생을 쓸 수 있다.

버려지고 나서도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하니 완벽하게 내 죄책감을 덜어주었다. 


자본주의의 노예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여전히 나는 소비지향적이다. 


그래도 소비의 가짓수가 점점 줄어들었으니 잘했다고 칭찬해줘야 하나?


자본주의의 마약은 내게 소비의 자유가 주어졌다는 착각이다. 

나는 늘 내 의지로 무언가 샀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마케팅의 전략 속에 있다.  


가성비를 싫어하고, 할부를 싫어하고, 무분별한 소비가 싫다고 말하면 뭔가 

소비가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 같지만 결국 나도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고, 매일 소비를 한다.

진지하게 지속 가능한 소비를 고민하고, 적은 수입으로 최대한의 기회비용을 얻으려고 애쓴다. 

1년 사이에 내가 구매한 '제로 웨이스트' 관련 상품들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나의 소비의 변화로 시장이 변하는 걸 느끼게 되었다. 

내가 한 투자(?)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지속 가능한 소비에 대한 최소한의 고민이 필요하다. 


노예에서 벗어나는 삶이란 이토록 치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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