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나의 꿈 사용법 : 진정한 나를 마주하기 위한 꿈 인문학>
꿈에 대해 여러 가지 관점이 많지만 살면서 가장 도움이 되었던 개념은
고혜경 박사가 쓴 <나의 꿈 사용법 : 진정한 나를 마주하기 위한 꿈 인문학>이라는 책에서 본 내용들이었다.
꿈은 무의식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또 다른 내가 나에게 건네는 말이란 게 내가 파악한 개념이었다.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꾸는 꿈은
무의식이 나에게 외면하고 있는 문제를
마주하고 극복하라고 보내는 신호이다.
자신이 겪었던 잊고 싶었던 나쁜 경험을 반복해서 꿈을 꾸는 사람의 사례에 대해 말하는데,
계속되는 악몽에 불면증을 겪으며 괴로울 수 있겠지만
무의식이 나에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너의 잘못이 아니니
그만 상처 받고 이겨내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다양한 사례와 그에 대해 해석을 하며 꿈에 대해 설명하지만
결국 꿈이란 자신이 겪은 것과 생각하는 것들이 한데 섞여서 말은 거는 것이니
돼지가 나오면 복권을 사라는 것처럼 절대적인 해석이 존재할 수 없고,
자신과의 대화를 많이 할수록 꿈에 대해 더 잘 해석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였다.
그 해석을 통해서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해 나간다면 좀 더 나답게 살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이토록 소중한 꿈을 그냥 흘려보내고 사는 게 너무 아깝지 않냐며
아침에 일어나서 꿈이 휘발되기 전에 기록하라고 말한다.
7년 전에 이 책을 보고 꿈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자는 시간도 부족한 생활을 이어가다 보니 점차 잊어버리고 쓰는 걸 중단해버렸었다.
영화를 관두고 시간이 많아졌고 온갖 방황을 하다가
매일 아침에 일기를 쓰는 생활을 반년 가까이 이어오고 있는데,
7년 전에 쓴 일기보다 훨씬 발전된 생각들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있다.
죽음까지 생각했던 내가 눈에 띄게 마음이 달라지는 걸 경험하다 보니
일기 조차 쓸 수 없는 여유 없는 삶을 다시는 살고 싶지도 않다.
온갖 사람들이 다양한 노하우로 자신과의 대화를 잘하기 위한 방법을 제시했다.
고혜경 박사는 꿈 일기를 쓰며 마음을 돌아보라 말했고,
달라이 라마는 명상을 하라고 말했고,
예수님은 기도하라고 말했다.
결국 다들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너 자신을 알라 -소크라테스- "
어쨌든 인간은 밥으로만 살 수 없음이 분명해 보이고,
물리적인 육체의 유지를 위해 매일 밥을 먹듯이
내 정신을 위해서 매일 나와 대화를 해야 한다.
최근에 꾼 꿈과 내 해석에 대해 말해보고 싶다.
환경에 대해 관심이 많았지만 적극적으로 무언가를 하기엔 용기가 부족했었다.
내가 추구하는 가치보다 나은 삶을 살지 못해 늘 위선자가 된 기분이었다.
좀 더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는 같이 작품을 한 적인 있는 배우가 올린 ‘용기 내’ 포스팅이었다.
몇 년 새 그는 내가 현장에 들고 간 ‘라이카 Q’ 카메라를 보고 부러워하는 사람에서
라이카와 함께 사진 여행을 가는 예능도 찍고, 개인 사진전도 여는 사람이 되었다.
더구나 최근에 한 광고를 보았는데, 그를 설명하는 문구가 ‘환경운동가 + 사진작가 + 축구팬’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는 한결같이 자신이 좋아하는 걸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해왔고 그걸 SNS에 남겨왔다.
그런 그를 보면서 늘 부러워하면서도 용기를 내지 못하는 내가 못나보여 질투를 하기도 했다.
배우가 외모로만 평가받을 이유도 없지만 그의 외모를 비하하는 이들의 말에 동조하기도 했다.
그가 유명새로만 그 모든 걸 쉽게 얻은 걸 아니란 걸 알면서도
못난 내 마음은 남의 성공을 온전히 축하해주지 못했다.
내 맘 속에 아직 덜 유명했던 그를 캐스팅하기 위해
감독을 설득한 나의 노력에 대해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최근에 완벽에 대한 강박을 버리고 나의 기호와 생각을 드러내는 노력들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과정들이 많이 익숙해졌는지 꿈에도 그걸 반영하는 내용이 나왔다.
꿈에서 그 배우와 그동안 친했던 영화 스텝들이 다 같이 축구 경기를 관람하러 갔다.
그와 나는 몇 년 만에 만났지만 어제 만난 것처럼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미 유명해진 그가 나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숨기지 않았고
내 글을 잘 보고 있다고 말하며 내 노력을 지지해주었다.
더구나 그 꿈을 꾸면서 이게 꿈이란 것도 자각이 되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위로받았고, 그가 고마웠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고, 그걸 내가 다시 보면서 치유해나가는 과정이라고 본다면
더 이상 누군가를 질투하지 않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나를 점점 더 잘 받아들이고 있다는 신호로 읽으면 될 것 같다.
이제는 영화를 하지 않기로 해서 그를 다시 만날 확률은 현저히 줄었지만
그의 활동을 통해서 여러모로 자극을 받고 나아가고 있으니 여전히 고마운 사람이다.
매일 나와 대화를 하며 내가 원하는 나 다운 사람으로 잘 살고 싶고,
이젠 그 방법을 조금 터득한 듯해서 용기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