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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Jan 18. 2021

가난의 정의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살면서 가진 것들에 만족하기란 쉽지 않다. 

모두들 더 가지려고 애쓰는 중에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라니...

더 가진 자의 연민이거나, 

못 가진 자의 자기 위로처럼 들릴 때도 있다. 


주변 친구들이 취업을 위해 치열하게 스펙을 쌓던 시절

휴학을 하고 6개월을 NGO단체에서 봉사하며 인도에서 보냈다.

자원봉사를 위해 인도에 체류했다는 말에 인류애가 넘친다고 생각하겠지만

애초에 동기가 순수하진 않았다. 

감독이 되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할 것 같았다. 


2030년이 오면 중국과 인도가 경제의 성장을 주도할 것이라는 전망들이 넘쳐난다. 

2007년 당시의 인도도 이미 류시화 시인이 말한 인도는 아니었다. 

봉사활동을 했던 기관장의 아들이 북인도는 '가난'을 자원으로 먹고 살기 때문에 

이를 개선할 적극적 의지가 없다는 말을 했다.

실제로 내가 거주한 북인도의 콜카타 지역은 

'마더 테레사 하우스'에서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세계에서 몰려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 또한 그 가난에 봉사를 하기 위해서 그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에 

낯이 뜨거웠지만 그의 말에 동의하지 못했다. 
그의 말은 내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오히려 그와의 대화를 피했다.

뒤늦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를 읽으며 어렴풋이 그를 이해했다. 


사실 많은 NGO단체들이 우리들의 인력이 직접적으로 필요한 건 아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젊은 시절에 봉사 경험을 쌓은 사람들이 

나중에 돈을 벌게 되면 그 기관의 직접적인 후원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그 단체에 직접 후원을 하지 않지만, 다양한 기부 문화에 늘 기웃거리게 되었다. 


작은 마을에서 피부색부터 다른 우리가 돌아다니면 그 보다 좋은 광고 효과가 없다. 

우리의 업무 중에 후원을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과 

방학기간 동안 단기 봉사활동을 오는 대학생을 상대하는 비중이 가장 컸다.  

그렇게 기관에 돈이 몰리고, 그걸로 기관의 운영비와 마을에서의 권력을 유지한다. 

어쨌든 그들은 좋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권력이 모이는 곳에는 부패도 따라왔다.  

기관장의 두 아들은 그 작은 왕국에서 왕자처럼 행동했다.

공동 운영자들 사이에 파벌 싸움이 일어났고, 

며칠을 숙소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숨죽이며 보내기도 했다. 

가장 큰 돈줄인 우리가 인질이 되지 않도록 해야 했기에 

감금 아닌 감금 생활을 며칠간 해야 했다. 


그때 당시 같이 봉사를 갔던 한 친구와 잘 지내지 못했는데, 

사회복지학과를 다녔던 그는 본인이 재학중이던 학교의 교수였던 아버지의 뒤를 잇고 싶어 했다. 

그는 늘 내가 찍은 사진을 마치 자기가 찍은 양 인터넷에 올렸고, 

자신의 봉사 행위를 과대 포장했다.

그땐 저작권이라는 개념도 몰랐지만, 

동의 없는 사용이 무례하다 생각했다.

그가 하는 일보다 부풀어진 문장들이 

그의 모든 행동들을 부정하게 만들었다. 


평소의 그는 인도인의 가난과 미개함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봉사 행위와 희생정신에 대해 취해있었고,

사회복지의 필요에 대해 역설했다. 

마을 봉사를 나갈 땐 끓이지 않은 물을 호기롭게 마셨고,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한다며 대접하는 음식을 모두 먹었다. 

잦은 배탈로 몸을 사리는 나를 그는 늘 못마땅해했다. 

강압적으로 과시적인 행동을 하는 그가 불편했지만

나는 사회복지학과 아니었고, 이 문제에 대해서 그보다 잘 몰랐기 때문에 

그의 말에 아무런 반박을 하지 못했다. 

봉사를 왔는데 왜 난 이토록 희생정신이 없는가에 대한 자격지심도 생겼다.

아마도 자원한 동기가 순수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난 물이 맞지 않아서 6개월의 인도 생활을 하고 돌아왔을 땐 급격한 체중 감량과 탈모를 겪었다. 


그때 그는 착실한 스펙 쌓기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토록 바라던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되었는지 궁금하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순수한 인류애적인 동기로만 봉사를 해야 한다는 개념이 

정말 순진한 거였지만 

20대의 나는 나를 잘 몰랐고 

다른 인간들의 욕망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난 늘 권위에 취약했다. 


사실 가난은 개인의 게으름과 무능력의 결괏값과는 다르게 결정된다. 

가난은 상대적이다. 

자본주의를 살고 있는 지금

많은 것들은 개인의 필요가 아니라 

자본의 필요에 의해 욕망되고 

상대적 박탈감으로 수요를 만들어낸다. 


그 시간 동안 역으로 내가 가졌던 많은 것들에 부끄러움을 느꼈고, 

그들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게 힘들었다. 

NGO단체에서 나를 파견한 목적 중에 하나가 

영화과인 내가 남길 기록 들이었겠지만

내 마음은 지옥 같았고, 

나를 보고 미소 지어 주던 그들보다 마음이 가난했다. 

권태롭게 그 시간을 그냥 흘러 보냈다. 


권위에 눌리고 바꿀 수 없는 걸 바꾸려다 나를 잃어버렸다. 

뭘 채워야 하는 지도 모른채 노력하다 

채워지지 않는 마음에 그냥 모든 것을 허무하다 여겼다. 


인간은 누구나 본인의 욕망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전에서 정의하는 절대적 가난을 겪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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