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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Jan 13. 2021

무슨 매국노 같은 소리고?!

피 흘릴 자유를 누리고 싶다. 


" 그럼 애는 언제 낳을 건데? 누나는 애 안 낳을 거가? "


" 어, 안 낳을 건대?"


"무슨 매국노 같은 소리고?!"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놀러 갔을 때의 일이다. 


동생이 운전 중이었고, 조수석엔 내가 앉았고, 부모님은 뒷좌석에 앉으셨다. 

그해 명절에도 가족과 함께하지 못했고, 이번 여행은 온 가족이 내 스케줄에 맞춰서 함께했다.

20대 시절의 대부분을 방황하던 동생은 결국 집으로 돌아와 아빠의 사업을 함께하며 자리를 잡아갔다.

삶이 안정이 된 그는 엄청나게 보수적으로 변해있었다. 

한국 사회에서 남자로 살아가면서 느끼는 책임감을 무겁게 느꼈고, 결혼 자금 마련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가끔 나에게도 용돈을 주는 건 고마웠지만 내 삶을 판단할 권리를 준 것은 아니었다. 


그날 낮에 해변에 갔다가 무릎이 시려서 바위를 못 건너는 나를 환갑이 넘은 아빠가 업었다. 

첫 영화를 할 때 내내 서서 일을 해서 무릎이 나갔었는데, 그때 이후로 무릎이 종종 시렸다. 

몸을 혹사시키며 일하는 나를 보기 힘든 엄마의 편한 삶에 대한 타령이 시작되었다. 


"세상에 편한 삶도 있는데, 너무 애쓰면서 안 살아도 되는데..." 


당시에 나는 영화를 관둘 생각도 없었고, 편하게 살라는 엄마의 말이 패배자의 낙인을 찍는 것만 같았다.

지금껏 노력한 게 있는데, 그 끝을 가지도 않고 포기하라는 말이 정말 듣기 싫었다. 

더구나 그게 결혼해서 누군가의 삶에 기대어 살라는 말은 모욕처럼 들렸다. 


"애도 낳을 생각이 없는데 무슨 결혼이야 그냥 연애만 하다가 죽을 건데?"라고 받아쳤고, 

동생은 무슨 매국노 같은 소리냐고 말했다. 


난 정말 동생이랑 사이가 좋은 편이었고, 서로 좋아하는 관계이지만 '매국노'라니... 이건 정말 어이가 없었다. 

평소라면 농담으로 잘 넘겼을 대화가 엄마와 동생이 합세를 하니 '썰전'으로 번졌다. 

좁은 차 안에서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평생 처음 겪는 가족 논쟁의 끝은 아빠의 "시끄럽다" 말로 마무리되었다. 

그 순간 가부장 사회의 아빠의 역할이 고마웠다. 


뒤늦은 변명을 하자면 7년째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와 나는 둘 다 영화일을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평범하다고 말하는 가족을 보면, 한 사람이 일을 하고 한 사람이 아이를 기르면서 가정을 돌본다. 

주변 영화인 커플을 보면 아이를 낳으면 둘 중에 한 명은 반드시 일정 기간의 경력단절이 불가피했다. 

높은 확률로 다시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아이가 조금 자라면 영화일이 아닌 정기적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갔다. 

한 명이 커리어를 포기해야만 가능 한 상황에서 남자 친구와 나는 상대방의 꿈을 희생하면서 애를 낳자고 말할 수 없었다. 애를 낳아도 문제인 게 둘 다 고용이 안정적이지 않는 상황에서 본인의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데 두 사람분의 몫을 책임지라고 하는 건 너무나도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나 같이 부모 말 안 듣는 애가 애를 낳으면 어떤 애가 나올지 뻔한데

어떻게 낳아서 키운단 말인가! 이건 정말 악몽과도 같다. 

나이 40줄을 바라보면서도 부모님께 걱정을 끼치면서 

반성은커녕 고마워하지도 않는 애를 지켜볼 자신이 없다. 


최근 국가에서 하는 자궁경부암 검사를 받았다. 

이상 소견이 보인다며 산부인과 방문을 권했다. 

두려운 마음을 안고, 비싼 조직 검사비를 지불하고 얻은 결과는 '이상 없음'. 

친절한 의사는 노산의 나를 염려하여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비타민 D 주사를 놔주었고, 철분제를 처방하고, 엽산 섭취를 권유했다. 


국가가 나의 건강을 돌보는 게 아니라 가임기 여성의 자궁을 관리한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정말 여성의 자궁 건강이 걱정이 된다면 

맞기만 하면 유일하게 예방이 되는 암인 '자궁경부암' 주사 같은 건 의료보험 처리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그동안 너무 비싼 접종비가 상술 같아서 맞지 않았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만 12세 이하 여아에게는 무료접종을 하고 있었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도 무료로 접종한다는 소식을 듣고 결국 나도 맞았다. 

예방을 위해서라면 함께 성관계를 하며 지내는 파트너 모두 맞아야 효과가 있다는 말에 

남자 친구도 함께 맞았다.

아니 그러면 왜 그동안 여성에게만 60만 원이 넘는 접종비를 지불하며 맞게 한 것일까? 


아무튼 나는 이제 노산이다. 

이제는 애 낳다 내가 죽을 까 봐 출산이 무섭다. 

살다가 자연스럽게 생기면 모르겠는데.. 

점점 나이가 드니 그 과정도 줄어들어 우연마저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어간다. 


2019년 여성 1인당 출산율이 0.92를 기록했으니, 이런 대화는 이제 가족 내에서 흔할 것이다. 


나의 사례를 놓고 보면 내가 애를 안 낳는 건, 경제적 안정감을 확보하지 못해서이다. 

결혼을 안 한건 부수적인 문제일 것 같다. 

경제적 안정감을 확보하지 못한 건 개인의 무능력으로 치부하며 도움의 손길을 거부하면서

왜 출산에 대해서는 그토록 간섭이 심한 걸까?


지금 내 개인이 대안으로 마련 한 삶은 소비의 규모를 줄이고 귀촌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나는 전문 분석가는 아니다. 

다만 시대 흐름의 역풍을 그대로 맞서고 있는 한 범인으로서의 

삶의 단면을 기록으로 남기고 어떻게든 살아보려 애쓸 뿐이다. 


먼저 결혼한 동생은 코로나 때문에 애 낳기를 미뤘다. 

조카 바보로 살겠다는 나의 바람도 요원해 보인다. 


나를 좋아하고 걱정하는 동생아,

나는 너와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왜 결혼을 안 하는지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내가 사랑하는 너마저 가임여성이 애를 낳지 않는 것에 관해 '매국노'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결혼으로 맺어진 타인에게 나의 생각과 존재를 인정받으며 차별받거나 억압받지 않을 수 있을까?

내가 어떤 두려움과 고민을 안고 있는지 너마저 이해를 못 시키는데 누굴 이해시킬 수 있을까?


어쨌든 우리 각자의 삶의 속도대로 살고, 그 삶의 모습 그대로 응원해줬으면 좋겠다.  


동생아.. 누나 한 명 정도는 비효율적으로 매달 피 흘릴 자유를 주지 않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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