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목소리를 남기기로 한다
나는 여전히 내 문제를 꺼낼 용기가 없었고,
나의 불행은 내 마음에 묻어두면 끝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다른 사회적 문제에 대해 외면하게 만들고,
연대하는 걸 막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박원순 시장이 성추문 사건으로 자살을 하고,
그걸 지인들과 이야기를 하는 자리였다.
나는 평소에 박원순 시장을 지지하는 입장이었고,
사실이 어떻게 되었든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는 이야기로 이어갔다.
그때 그 친구는 그가 어떠한 선택을 했던 성추행은 잘못이라고 말했을 때
얼굴이 화끈거리는 기분이었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한 거지?
그걸 고발한 여성의 입장에서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지,
개인에겐 목숨까지 위협하는 인생을 흔드는 사건이지만
한 번도 피해자를 떠올리지 못했다.
그 길로 돌아와서 '페미니즘'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기 시작했다.
나는 되게 의식 있고, 깨어있는 사람이고 싶었지만
그의 말이 옳다고 말하지 못했다.
진실이 밝혀지겠지라는 말로 얼버무렸다.
피해의 규모와 범위를 떠나서
사회 구조상 이런 문제가 계속해서 불거지는 원인에 대해
생각하려 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상처를 꺼내보기 두려웠다.
그날 그의 말에 심하게 흔들렸다.
그가 옳았다.
예전 같았으면 나의 옳음을 증명하려 더 목소리를 높였을지도 모르겠다.
나에겐 그 친구는 굉장히 좋은 자극제였고,
나의 무지를 판단하지 않았고,
내가 허접해도 자신과 달라서 좋다며 열광을 해주었기에
나를 돌아볼 용기를 주었다.
상처 받았던 일을 꺼내어 돌아보지 않으면
평생 어느 한 부분은 제 기능을 못한 체 살아가게 된다.
꾹꾹 눌러놓았던 일은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순간
일그러진 형태로 삐져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공감 부적격자로 살고 싶지 않다.
얼마 전 AI 챗봇 이루다 논쟁을 보면서
모든게 디지털로 전환대는 지금
내가 남긴 데이터가 AI 학습에 기반이 된다는 걸 알았다.
내가 침묵하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이 결코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미래에 다가올 AI의 차별까지 방관하는 결과가 된다는 건 무서운 일이다.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목소리를 남기기로 한다.
내가 평범하게 읽고 쓰고 듣는 것들에 관한 생각을 말하는 과정에서도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게
때로는 버겁기도 하다.
그래도,
계속 써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