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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May 04. 2021

비교의 늪

"네가 자는 동안 니 경쟁자는 한 문제 더 푼다"


내가 학창 시절에 담임선생으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아침 조회 멘트였다. 

방과 후에도 10시까지 야자(야간 자율학습)를 하는 시절이었고, 

그 이후에는 단과학원으로 몰려다녔다. 

딱히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친구들이 다니니까 나도 다녔다. 

그렇게 아침 8시에 등교를 해서 밤 12시가 되어야 학생의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수면 시간을 뺀 나머지 모든 시간을 뭘 위해 공부를 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수능 한 문제를 더 맞혀야 한다는 압박에서 보냈다. 

절대적인 수면시간이 부족했기에 수업시간에 졸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매점도 가면서 

학교에서 보내는 매 시간을 공부를 위해 쏟지는 않았었다. 


그러다 과학고에 다니던 A가 내신 때문에 전학을 왔다. 

A는 전학생의 이점을 맘껏 활용해서 

친구들과의 우정을 위해 시간을 들이는 일은 하지 않았다. 

쉬는 시간에도 공부를 했고, 점심시간에도 공부를 했다. 

부모님의 요청으로 방과 후 야자는 하지 않았고, 

집에서 과외를 받았고, 

적절한 수면 시간을 누렸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그때부터 반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아버지가 은행장이었던 반장이 과외를 한다며 야자를 빠지게 되었다. 

아버지가 개인병원을 운영했던 친구도 야자를 빠지게 되었다. 

부모님이 교수였던 친구도 예외 없이 야자를 빠졌다. 

전교 10위권 내외였던 친구는 건강 관리의 이유로 야자를 빠졌다. 


남은 우리는 날 위해 나서 줄 부모님이 없었고, 

공부를 잘해서 야자가 필요 없다는 핑계를 댈 수도 없었다. 

우리 모두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지만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지 몰랐다. 


A는 외모에 민감한 고등학생의 눈으로 보기에 못생긴 편이었다. 

여드름이 많았고, 과체중이었으며, 두꺼비에 자주 비유되었다. 

어느 날 누군가 화두를 던졌다. 

A의 외모로 태어나야 한다면 

자신은 차라리 지금의 외모로 태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신은 공평하다고도 말했다. 

그런 A는 우리들의 수군거림에도 흔들림이 없었고 서울대에 진학하였다. 


몇 년 뒤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들의 화두는 취업과 결혼이었다. 

연애경험도 없고, 외모도 별로라고 여겨 결혼은 잘 못할 거라고 믿었던 A는 

한창 광고를 하던 다이어트 프로그램으로 살을 빼고, 성형을 했으며,

선을 봐서 결혼을 했고, 부모님의 도움으로 남편과 함께 병원을 개원하였다. 

A는 우리와는 다른 세계를 살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또다시 박탈감을 느꼈고, 

사랑 없이 결혼한 A의 결혼 생활이 평탄하지 않을 거라 여기며 

남을 깎아내려 무너진 자존감을 채웠다. 


빈곤한 상상력으로 인생의 선택지가 취업과 결혼 말고는 없는 줄 알았다. 

노처녀라는 말을 주워섬기며 나이 들어감을 두려워했다.

많은 여성 친구들이 더 늦기 전에 하나둘씩 결혼의 길로 들어섰다. 


아무도 안 사간다는 계란 한 판의 나이가 지나갔다. 

비혼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었고, 딩크족도 생겨났다. 

된장녀로 명명되던 친구들이 맘충이 되었다. 

애초부터 비혼 주의자도 아녔으면서 

이혼해서 돌아온 친구들 앞에서 안도했고,

노 키즈존을 환영했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의 시간을 제로섬 게임의 룰에서 지내다 보니 

비교를 통해서만 자존감을 채우는 거에 익숙해져 갔다. 

학습된 혐오에 대해 아무런 의심도 못했고,

영어유치원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새벽부터 줄을 섰다는 친구와 연락을 끊었다. 

그 친구와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이지만

내 선택의 정당성을 위해서 친구의 선택을 무시해버렸다.  


나보다 조금이라도 다르거나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정하고 깔아뭉개면서 자존감을 채웠다. 

주변을 돌아보니 아무도 남지 않게 되었고, 

그토록 애썼던 자존감은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떨어져만 갔다. 


요즘 정의가 화두다. 

그동안 비교를 통해서만 만족감을 얻었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득달같이 달려가 끌어내리기에 바빴다. 

표면적으론 사회가 나아가는 것 같고, 정의를 구현한 것 같지만 

남들을 끌어내림으로써 내가 정의롭다는 걸 확인하는 거에 불과했다. 

애초에 룰이 잘못되었지만 그 룰을 바꾸기보다는 

당장에 쉽게 끌어내릴 수 있는 사람에게로 분노를 표출하는 게 쉬웠다. 

그곳엔 그토록 바라던 정의는 없었다. 


수능이 과연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였을까?

모두가 다 대학을 가야 한다고 교육을 받는 게 옳은 일이었을까?

정말 개인의 노력이 부족해서 스펙을 쌓지 못한 게 맞을까?

실무에 필요도 없는 스펙을 쌓아야만 취업을 할 수 있는 게 정당한 룰이었을까?


취업은 그저 월급 노예의 길이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정작 돈을 벌려면 자본가가 되어야 한다는 걸 왜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을까?


사회에서 정해놓은 룰 위에서 모두가 고통받았지만

함께 그 룰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비교를 하며 보냈다. 

애초에 룰이 잘못되었으니 의심해봐야 했지만

생각하기 귀찮고 아무리 그래도 사회는 안 바뀐다는 편견을 지지하며 외면해버렸다. 


다 같이 노예가 되기 위해 애쓰는 삶에서 

실패도 아닌 실패를 반복적으로 경험한 이들이 

한 번의 실수로 삶을 포기해 버리는 게 너무 마음이 아프다. 

세상에 대안도 많고 다른 삶도 많지만 

그걸 말해주는 이들은 너무 적어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안타깝다. 

이제는 우리 사회가 이미 태어난 사람들이 

자신의 수명을 온전히 다 누리고 갈 수 있는 삶을 고민했으면 좋겠다. 


저출산을 탓하며 생산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을 혐오하기보다는 

이미 태어나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자살로 죽는 순위가 13년째 1위인 걸 먼저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그토록 원하던 세계 1위를 달성했으니 이제 그만 달려가도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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