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의 탈을 벗어보자.
나에겐 미국 유학시절 'Western union' 은행 계좌를 개설 하고 사은품으로 받은 장바구니가 있다.
색깔도 좋아하는 노란색인데다 작게 접을 수도 있어지만 재질이 부직포라 아쉽다.
장바구니를 오래전부터 써왔지만 제로웨이스트를 알게 되었다고 소비 욕구가 줄어 든 건 아니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장바구니가 내구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이 세계에선 나름 핫한(?) 그물 장바구니를 샀다.
뭐든 기승전 구매다.
어느날 팟캐스트를 듣다 거리두기 3단계 소리가 나오고 홀린 듯이 장바구니를 챙겨 마트로 달려갔다.
집으로 돌아와 보니 아무 생각 없이 비닐로 쌓인 소포장 상품들을 그냥 막 담았음을 깨달았다.
평소라면 어떻게든 플라스틱 포장이 된 물건을 안 사고 다른 걸 샀을 텐데... 라고 해보지만 자주 못 그러는 것도 안다.
이번엔 재난이라는 공포가 감정적 소비를 이끈 것이다.
오늘도 내 의지의 취약함을 발견한다.
미니멀리즘도 망했고, 제로웨이스트도 망했고,
필름 사진 찍은 것만 올리겠다는 내 인스타 피드도 망했다.
모든 완벽하게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한 게 없다.
영화관도 못 가고, 영화 찍기도 힘들고, 최근에 만들어진 영화들보다 유튜브가 더 재미있다.
영화인들의 세계에선 드라마 팀을 은근히 무시하는데, '거의 없다' 같은 유튜버로 인해서 거의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로 취급 받기에 나도 모르게 멀리해왔다. 마지막 영화 현장에선 연출팀 막내는 나에게 라떼누나라고 불렀지만, 그동안 요즘 트렌드라는 유튜브도 보지 않았으니 정말로 고인물이었다.
그것도 정말 옛말인게 그렇게 말했던 영화감독들이 너도 나도 드라마 제작에 돌입했다는 뉴스가 나오는 걸 보니 역시나 신념보다는 먹고사는게 더 중요하다.
코로나 19가 쉴 때도 계획적으로 쉬면서 바빴던 나에게 생각할 시간이라는 걸 강제로 줬다.
내가 그동안 좋다고 말했던 것들이 정말 내 의지로 좋아했던 건지 의구심마저 든다.
클래식, 고전문학, 흑백영화 다 좋다.
하지만 쏟아지는 하품을 억지로 참고 끝까지 꾸역꾸역 보고 들으며 나를 괴롭힌 적도 많다.
지적 허영을 채우기 위해 노력해왔음을 인정할 때가 되었다.
그때그때 자기 검열하지 않고 끌리는 대로 닥치는 대로 듣고 읽고 쓰고 하는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