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의 기술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이유로
그때 당시 짝지와 주먹질을 하고 싸웠다.
2차 성징이 발현되기 전이라 남자인 그 아이와의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다.
여자애가 그렇게 치고받고 싸우면 어떡하니?
담임 선생님의 중재로 우리의 싸움은 끝이 났지만 조금만 더 하면 내가 이길 수도 있었는데
여자애가 별나다는 말로 끝나버렸다.
사과를 받거나 하지도 못하고 담임 선생님의 말만 가슴에 남았다.
집에 돌아와서 그날의 싸움을 엄마에게 말했다.
다 너 좋아해서 괴롭히는 거야..
남자들이 표현하는 법을 몰라서 그래...
지는 게 이기는 거야.
담엔 그냥 참고 넘겨.
그 아이도 지는 게 이기는 거란 소리를 들었을까?
학년이 바뀔 때까지 그 아이와 말을 하지 않았다.
엄마의 말을 믿은 건 아니었지만
그 아이는 나에게 좋아한다는 표현도
또 다른 싸움도 걸어오지 않았다.
싸움의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놓쳐버렸다.
담인 선생님의 말처럼 여자니까 싸움을 하는 상황까지 가지 않도록 노력했다.
성격이 좋다는 말을 들었고, 그게 날 기쁘게 했다.
그렇게 자라면서 만나는 이들에게 최선을 다해서 잘해주다가
내가 참을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면 말없이 돌아서버렸다.
상대는 영문도 모른 채 멀어진 관계에 당황해하곤 했다.
가족이라고 예외는 없었다.
10대에는 공부를 핑계로 학교로 도망쳤고,
20대에는 경험을 핑계로 해외로 도망쳤고,
30대에는 일을 핑계로 서울로 도망쳤다.
일로 바빴던 부모님과 나는 가끔 안부나 건성으로 물으며
일 년에 한두 번 명절에나 잠깐 보면서
서로의 취향이나 식성도 모른 채 오랜 시간 떨어져서 보냈다.
떨어져 지내니 서로 마음 상할 일도 없었다.
관계가 좋아졌다고 착각했다.
독립적으로 자란 내가 자랑스러웠고,
간섭하지 않는 부모님이 좋다고 생각했다.
파트너와 같이 살기로 마음을 먹고 부모님을 찾아뵈었다.
결혼에 대한 환상도, 기대도 없었지만
파트너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렇게 찾아간 고향에서 내가 지금껏 믿고 있던 부모님은 없었다.
그들은 '헛똑똑'이라는 말로 내 맘에 상처를 남겼고,
어차피 관심도 없던 결혼은 안 하면 그만이라고 마음을 먹고 대화를 피하고 서울로 도망쳐버렸다.
어버이날은 점점 다가왔고, 내 마음은 심하게 요동쳤다.
핑계를 댈 일도 버렸고, 코로나로 인해서 해외로 갈 수도 없었다.
계속해서 부모님께 연락을 드렸냐는 파트너의 물음에서 조차 벗어나고 싶었다.
어쩌다 내가 이렇게 회피형 인간이 되었을까?
혼자 글을 쓰면서 방구석에서 시도 때도 없이 자책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어버이날 하루 전날 급하게 고향으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부모님과 대화할 용기를 내 보겠다고 SNS에 글도 남겼지만
집으로 가는 내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카네이션 바구니를 앞 세우고 집으로 갔다.
서먹하긴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어색하게 밥을 먹고, 관심도 없는 드라마의 스토리나 물어보다가 하루가 끝날 것 같았다.
아빠가 잠을 자러 들어가 버렸다.
점점 초조해졌다.
그러다 엄마가 금은방을 운영하시던 친척이 아프다고 말했다.
평생 돈돈 거리며 모으기만 하다가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병원비로만 쓴다고 비난을 하였다.
순간 배알이 꼬였다.
잘해보겠다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온갖 분노가 밀려왔다.
아픈 사람을 두고 욕하지 마. 엄마도 똑같아.
모아둔 돈 없다고 무시한 건 엄마도 마찬가지야.
엄마 말 때문에 내가 얼마나 상처 받았는데...
침묵이 흘렀다.
제대로 마음을 표현해본 적이 없어서 헛말이 나왔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애먼 심장만 쿵쾅거렸다.
속으로 자책을 하는데 엄마가 사과를 했다.
상처 줘서 미안하다.
네가 그동안 혼자서도 잘 해와서 기대감이 컸었나 보다.
엄마는 너네들처럼 많이 배운 사람이 아니라서
서운한 마음을 표현하는 법을 잘 몰랐다.
너무 놀랐고, 끌어 모은 분노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도 몰라 당황했다.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어? 그냥 잘 살겠다고 말하면 되지
..... 잘.. 살게
이게 왜 그렇게 힘들었는지
엄마는 사과할 줄 아는 어른이었고,
나는 머리만 큰 아이였다.
이제 와서 육아 이론을 들이밀며 과거의 엄마를 탓할 순 없는 일이다.
관계 회복을 위한 수많은 조언을 들었지만 행동하지 않고 몸만 자란 나도 있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대화할 용기를 내보았더니 엄마로부터 사과를 받았다.
내친김에 영화를 관두기까지의 나의 마음과 앞으로 방황하는 시간을 보낼 것 같다는 말도 했다.
이제야 대화의 기술을 터득한 어른의 세계로 들어온 듯하다.
감정이 상하면 용기를 내어 표현하고 잘 싸우고 사과하고 사과받아야 한다.
가족도 결국은 인간관계였고, 잘 지내기 위해선 노력이란 게 필요하다.
나의 태도의 변화로 인해서 하나의 사건이 새로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인생은 사건이 아니라 해석이다.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내가 그 모든 일을 피하거나 통제할 순 없다.
그러니 그때그때 잘 싸워서 해결해나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