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인 Z May 16. 2021

영화가 예술이 아닌 이유

기본 소득 받고 싶다.

내 어린 시절 어느 집에나 가면 꽂혀있는 책이 있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수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책들을 읽었겠지만 여전히 다수의 사람들은 성공하지 못했고, 부자가 되지 못했다. 


얼마 전까지 세속적 성공(?) 보다는 명예를 얻는 게 더 값진 일이라고 생각해서 

'자기 계발서' 류의 책을 보는 건 천박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같은 시간을 들여 책을 읽는다면 인문학이나 문학 쪽의 책을 읽는 게 더 우월하다는 착각도 

오랜 시간 동안 해왔다. 

성공에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공을 돈이랑 분리해서 생각해왔던 건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이었다. 


나는 지금껏 좋은 영화를 만들어 명예를 얻는 것에 치중하는 삶을 살아왔는데,

사실 마음속 깊이 따져보면 명예를 얻는다면 당연히 부도 함께 따라오는 걸 기대했었다.

하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감독이라는 직책이 명예는 얻을지 몰라도, 

부가 함께 하지는 않는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동안 입버릇처럼 해온 말이 있다.


"입봉 영화로 대박을 치고 영화계를 은퇴해서 놀고먹다가 죽고 싶다."


그때까지만 해도 창작자인 감독에게 작품에 대한 권리가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한 착각에서 벗어나게 된 건 실질적으로 내 지인들이 하나둘씩 감독이 되면서였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가 대박이 나면 감독이 돈을 많이 벌거라고 생각하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신이 제작사를 가지고 있지 않은 감독의 대부분의 지분율이 10% 미만이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다. 

게다가 영화에 대한 저작권 또한 감독이 아니라 제작사가 가진다. 

그 영화가 대박이 나도 감독은 그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다. 

누군가는 작품이 흥행에 실패했을 때 금전적인 리스크를 떠안기 때문에 

제작사의 권리가 타당하다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감독 또한 자신의 시간과 실패했을 때의 실추되는 명예를 리스크로 안고 간다. 

일부 양심(?) 있는 제작사에서는 투자금을 제외한 초과 수익분에 대해 

감독에게 보너스의 형태로 지급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런 보너스는 다음 작품을 함께 하자는 약속이 전제되어있다. 


일반 직장인들의 단기 성과급을 받는 거랑 다를 바가 없다. 

그들은 매월 월급이라도 꼬박꼬박 받겠지만 

감독은 차기작을 준비하는 기간 동안에 아무런 수입이 없다. 

계약 당시에 받은 금액으로 적게는 3년, 많게는 무기한으로 다음 작품을 위해 애를 쓰지만 

막상 투자를 받고 영화가 만들어지면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주인이 버는 생활을 반복 할 뿐이다. 


문제는 이러한 제작사가 한 감독을 위해서만 시나리오 기획 계발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리스크를 분산하고 여러 감독에게 약속을 한다. 

결국은 다음 작품의 진행은 오롯이 수입 없는 상태를 이겨 낼 감독의 의지에 달려있다. 


결과적으로 4대 보험도, 퇴직금도, 연금도, 최저임금도 보장되지 않는 

가장 최악의 노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영화 산업에서 감독의 역할이 노동자라고 인식한 건 

영화가 창작과 예술의 영역이었다면 

그 권리가 당연히 창작자인 감독에게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비단 감독뿐만이 아니라 시나리오 작가 또한 마찬가지인데, 

자신의 시나리오를 제작사에 팔면 아예 저작권을 제작사에게 넘겨야 한다.

원작이 있는 콘텐츠를 영화로 만들려면 작품화할 수 있는 5년 간의 권리를 사게 되는데, 

그 기간 안에 영화가 만들어지지 못하면 그 권리가 다시 원작자에게 돌아간다. 

하지만 시나리오 작가가 쓴 시나리오나 콘티 작가의 스토리 보드나 

영화를 만들면서 발생하는 모든 창의적인 부분의 권리가 제작사에 귀속된다. 

일반 노동자들이 만들어 내는 모든 것의 결과물이 회사에 귀속되는 거랑 같다. 


하지만 나와 많은 나의 동료들은 이러한 사실에 무지했다. 

입봉을 시켜준 그들에게 고마워했고, 지분 계약 5%에 기뻐했다.  

몇몇은 당장의 생계 때문에 시나리오를 쓰다가도 연출부로 돌아갔다. 

일단 한번 일을 시작하면 창작에 쓸 수 있는 조그마한 에너지를 내기에도 버거운 생활의 연속이었다. 

계약이 끝나면 몇 달은 망가진 몸을 추스르며 병원비로 탕진을 하고, 

몇 달은 시나리오를 쓴다며 버티지만 

글이라는 게 그렇게 쉽게 써지면 고민도 안 할 것이다.  

결국은 생활비가 떨어져 다시 일을 하는 것의 연속이었다. 


사람에게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니 

돈을 벌기 위해 내 모든 시간을 쓰는 삶에서 벗어난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경멸했던 돈의 노예의 진실을 알게 되었다. 

지금의 영화 산업구조에서는 당장의 생계를 위한 돈 벌기의 노예로 살 수밖에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감독이 되는 걸 포기하게 되었다. 


본인이 정말 창작에 꿈과 재능이 있다면

자본에서 자유로워야 하고, 잘 파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창작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저작권에 대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당장은 실패할지 모르겠지만, 내 자본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꾸준히 내 목소리를 내고 

잘 파는 법을 습득하면 언젠가 그 이야기들이 돈이 되는 날이 온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돈들이 나를 자유롭게 창작에 몰두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그러한 돈들이 나를 자본에 예속되지 않고 나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디지털로 세상이 바뀌는 지금 

그 길은 예전보다 오히려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들 아는 유튜브도 있고, 앞으로는 더 많은 플랫폼이 생길 것이다. 


생계 때문에 계속 돈을 벌어야 하는 구조에서 벗어나고 싶다. 

모멸감을 견디면서 생계 때문에 일하는 삶을 그만하고 싶다.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박차고 나와도 생계가 위협받지 않도록 기본 소득을 받고 싶다. 


자본가의 입장에서는 노예들이 생계의 위협에서 벗어나 부당한 대우에 저항할 힘이 생기면 손해다. 

자신을 위해 일해 줄 노예들이 없어지니 기본소득에 대해 거품 물고 반대한다. 

그러니 기본소득을 받으면 사람들이 게을러진다는 말들이 나오는 것이다. 

게으른 게 아니라, 내가 한 일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받고 싶은 거다. 

일을 하기 싫은 게 아니라, 너무 일만 해서 생각 할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게 싫다. 

그들이 필요하면 정당히 대우하고, 지분을 합당하게 나누면 될 일이다. 


여기까지 쓰고 보니 나는 정작 돈을 버는 원리에 대해서 알게 되었지만

자본가가 되기 보단 모두가 나눠 갖는 것에 관심이 간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는 부자가 될 순 없을 것 같다. 

다만, 내 시간을 맘대로 쓰는 시간 부자의 삶을 사는 걸 계속해서 실현해 나가고 싶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은 시간 고민하고 있는 성공한 삶에 대한 모습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기당하지 않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