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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Feb 08. 2021

사기당하지 않는 법

계획이 틀어질 땐 잠깐 멈추자

브런치에 글을 적기 시작하고 한 달 반 정도 시간이 지났다. 

살면서 거의 매일 글을 쓴 적은 처음이었다. 

초반 한 달은 할 말이 넘쳐나서 

전날 저녁에 다음날 일어나서 쓸 것들을 생각하며 

틈틈이 메모도 하고 꿈에서까지 글을 쓴 적도 있었다. 


최근 2주 간 계획했던 일이 원하는 대로 진행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대부분의 일이 그렇듯 돈 문제가 가장 컸고, 

아무런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는 지금 

줄어드는 통장 잔고는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글에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글을 쓰기 어렵게 만들었다. 


처음 소재로 잡았던 

'노비 10년'과 '을의 탈출기'는 

영화계의 부조리와 그 시스템에서 탈출하는 과정을 적을 계획이었다. 

지금껏 모아두었던 불만들은 

쓰는 행위 자체로 인해서 감정적으로 많이 해소가 되기도 했지만, 

절대 악과 절대 선이 없는 상황에서 모두 까기 인형이 된 것 같아 

남겨진 사람들에게 부채의식이 느껴졌다.  

좀 더 발전적인 고민이 필요해 보였다. 


탈출에 해당하는 '탈도시 계획'은 자금조달의 난관으로 

제자리걸음 중이라 지금 쓸 수 있는 게 없었다. 

습관적 백수인 프리랜서의 인간은 은행의 신용을 얻을 수가 없었다. 


브런치 작가를 등록할 때만 해도 

다가오는 봄에는 땅도 사고, 건축가를 만나 설계를 시작하고, 

내년엔 전원생활을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현실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단기간에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 굉장히 혹한다. 

모두들 다 같은 마음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노리고

우리를 유혹하는 것들은 넘쳐난다. 


두 달 전 처음 주식을 투자할 때만 해도 10년 뒤를 내다보고 

장기투자의 관점으로 들어갔지만

내가 투자한 금액보다 더 적은 금액으로 

높은 수익을 단기간에 만들게 해 준다는

주식투자 강의를 거의 결재할 뻔했다. 

지금 당장이라도 수익을 내고 '탈도시 계획'을 실행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일이 진행되면 글을 쓸 소재의 수급도 문제가 없으니 꼭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마음이 급해지니 판단력이 흐려졌다. 


작년 10월 영화를 관두기로 마음을 먹으면서 

유튜브라도 해야 하나?라는 심정으로 

영상제작 관련 강의가 할인한다는 구글 알고리즘에 이끌려 

편집이랑 디자인 강의를 잘 알아보지도 않고 결재를 했다. 

결과적으로 그 강의들은 영화업계에서 10년을 일한 나에겐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입문 수준의 강의들이었고

유튜브만 찾아보면 다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었다. 

그땐 유튜브를 보지도 않았었고, 

너무나 막연하고 조급한 마음에 

불안했던 심리를 빠르게 잠재우기 위해

돈을 쓰는 걸로 해결을 보았다. 

그 강의들은 소개한 것과 달리 나를 유튜버로 만들어 줄 순 없었다. 

내 영화 경력은 영상에 대한 눈만 높아져서 더 큰 진입장벽이 되어 발목을 잡았다. 

그 강의가 사기는 아니었지만 

나의 불안 심리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얼마든지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유튜버가 되려면 그런 강의를 볼 게 아니라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해서 업로드를 해야 한다.

나는 정작 해야 할 것들을 하지 않았다. 


이것만 먹으면 살을 뺄 수 있다는 약

이것만 공부하면 무언가에 정통할 수 있다는 책

이것만 알면 무언가 될 수 있다는 강연들

이것만 가지면 행복해진다는 것들


세상에 그런 건 없다. 

그렇다고 믿어줘야 그걸 파는 사람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상황만 있을 뿐이다. 

사실 이 모든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알지만 늘 조급하고, 빨리 이루고 싶고, 

그렇게 감정적으로 약해진 순간에 유혹에 넘어간다. 


이건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본능이다. 

다만 이러한 원리만 인식을 한다면

빠르게 얻지 못하는 결과물에 좌절하거나, 

그로 인해 포기하는 상황을 겪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을 들어 꾸준히 쌓으면 분명히 결과물이 남는다. 


우린 시행착오를 겪고 싶지 않아서 남들이 쌓아 놓은 길을 간다. 

물론 인생의 롤모델을 쫓거나 시스템에 들어가는 건 편리하다.

한동안 잘 가고 있는 느낌마저 든다. 

하지만 그 끝에 이 옷이 내게 딱 맞는 옷이 아니라면 

결국은 고쳐 입어야 한다. 

그 길 위에서 뒤돌아보면 내가 내디딘 한 걸음 한 걸음이 보이고 

그건 누구도 지울 수 없는

나의 노하우로 남게 된다. 

사람은 존재 자체로 빛나야 한다.  

그러니 의미 없이 하루하루를 버티는 게 아니라 

하나씩 실행을 하면서 

시행착오를 쌓아가야한다.  

그 시간은 결코 누가 뺏어 갈 수도 없는 내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대로도 괜찮다. 


위 말들은 이제 곧 40을 바라보는 나를 향한 위로이다. 


이젠 사회가 무언가 얻기 위해서 희생되는 것들에 관해서 솔직하게 말해 줄 때가 되었다. 

일부 뛰어난 천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범인들의 삶의 흔적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천재의 이야기들만 가득한 영웅 신화 말고 

평범하게 노력해서 자주 실수도 하면서 

단단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말이다. 


내가 영화를 포기한 이유고, 

대놓고 고사를 지내며 영화가 망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유다. 

레거시 미디어 특성상 더 뛰어나거나, 더 자극적이거나, 더 폭력적이지 않으면 주목할 수가 없다. 

다른 말로 높은 제작비를 회수할 수 없다는 말과도 같다. 

파급력이 크다는 건 선동을 포함한다. 

영화는 가지는 권력의 크기 만큼 그 속에 담기는 목소리의 영향력에 관해서 고민하지 않는다. 

더 높은 수익률을 위한 고민을 할 뿐이다. 


적은 제작비로 시도할 수 있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많아지는 게

서로가 서로를 착취하는 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핸드폰 만으로도 영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우린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날 때부터 천재인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 모두 우리가 천재가 아니란 걸 알고 있지 않은가?

무언가를 원하는 욕망까지 거세할 필요는 없지만

그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루한 노력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

넓은 광야에서 한 발을 내디뎌야 한다.

광야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무척 차지만 

모두들 그렇게 살고 있으니, 우리 모두 서로 도와 힘을 내야 한다. 


남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시스템을 구분할 수 있는 시각을 갖춰야 

사기를 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잠깐 멈추고 내공을 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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