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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인 Z Aug 07. 2021

운에 대하여

얼마 전 까진 ENTJ인 성향답게 난 내 의지를 믿었다.  

스스로 모든 걸 이뤄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갖은 노력을 하며 보냈다. 

내가 이뤄내지 못하는 건 내 노력의 부족이라 탓하며 

나를 더욱 몰아세웠다. 

외부적인 요소들과 내면의 한계점을 느껴왔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러다 코로나로 인해서 강제로 생각하는 시간들이 주어졌다. 

결국 영화를 포기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까진 내 의지로 해내었다.


그러나 그동안의 관성은 어디 가지 않았다. 

포기하는 것 마저 내 의지를 믿고 애쓰면서 

생전 겪어 보지 못한 감정 변화들로 인해 우울감마저 느끼며 쉽지 않았다. 

나의 의지력은 점점 의심을 받았고,  

그토록 믿었던 나 자신에 대한 믿음마저 차츰차츰 잃어버리고 나니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얼마 전에 운이 좋아지는 행동에 대해 말하는 글을 보고 깨달음이 왔다. 

원하는 게 있다면 일단 시작을 하고, 

그 근처에서 있으면서 실현 가능성을 높이는 게 운이 좋아지는 비법이라고 말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웬만큼 하고 싶은 건  다 이루면서 살아왔는데, 

영화감독이 되는 건 운의 영역이라 생각하지 못했고, 

결국 이루지 못했다.  


아니다.

운의 한계치가 있을 거라 여기며 

영화감독으로 대박이 나야 하니 

로또나 이벤트 응모 같은 걸 하며 

내 운을 낭비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무슨 개똥철학인가?


너무 간절히 바라고 애쓰면서 스스로 꿈이라고 착각했던 건 아닐까? 

그럼 그동안 들여온 내 시간은 무용지물이 되는 건가? 

안돼!! 한 작품을 하고 망하더라도 감독이 되어야 죽어서 비석에 감독이라고 이름이라도 남기지!!

라는 생각 따위를 하며 내 노력이 너무 아까워 포기하지 못했고 

엄청나게 방황했다.  


살면서 너무 큰 기대와 노력은 실패했을 때 교훈보다는 절망감만 안겨줬다. 

애써서 가지게 된 건 운이라고 할 수 없어서 

가지고 난 뒤에도 감사하다는 마음보다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실망했고, 

이미 가진 것보다 부족함에 몰두하며 고치려고 애를썼다. 

결국 가지고도 즐기지를 못했다. 


다시 운에 대해 돌아오면 <시크릿>의 비법처럼 간절히 바라면 온 우주의 기운이 나에게 몰린다는 거창한 표현을 떠나서 ‘안되면 말고?’라는 마음으로 일단 들이밀어보는 거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내가 인스타그램에 썼던 나댄다는 표현 또한 같은 범주 안에 있었다. 

읽고 나서 좋았던 책을 좀 포스팅하고, 

출판사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고, 

신간 책 서평단을 모집하기에 가볍게 댓글을 남겼는데 

지금껏 5권의 책을 서평을 남기는 걸 전제로 받게 되었다. 

그렇게 읽은 책들 덕분에 점점 시간 부자의 삶을 꿈꾸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되었다. 


<수도자처럼 생각하기>는 내 의지로는 절대로 보지 않을 책이었다. 마음 챙김 같은 건 의지박약의 사람들이나 하는 거라고 생각하며 아무런 도움에도 기대지 않았었다. 지금은 작가의 팟캐스트도 듣는다. 영어 공부도 되고, 나의 궁극적 삶의 목적을 찾기 위해 끝없이 질문을 하게 해 주면서 좋은 영감을 제공해 주고 있다. 


<숲 속의 자본주의자>는 같은 출판사에서 당첨이 된 책이고, 귀촌을 꿈꾸는 내가 도전하고 싶은 삶을 미리 살아본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어떤 글들은 마치 내가 썼나? 싶은 구절도 있었다. 이미 앞서간 사람의 발자취로 인해 내 삶의 방향에 대한 불안감을 많이 덜어주었다. 


<데미안> 은 독후감 공모전에 내기 위해서 다시 읽었는데 어릴 적 내가 보았던 책이 아니었다. 

이 책 또한 결국은 우리 모두가 자신만의 길을 찾으라는 메시지를 주었다. 

‘인간은 제각기 누구나 자연의 소중하고 유일무이한 시도’라는 말이 너무 아름다워서 울었다. 

더 이상 남과의 비교도,

다른 이들의 삶을 평가하는 것도 관두기로 했다. 

그동안 숫자를 채우기에 급급해서 

읽었던 책이나 영화를 다시 보는 건 엄청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는데, 

그러한 마음도 버리기로 했다. 


식물 키우기. 

우울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어느 날. 

식물 판매를 시작한 지인이 화분 하나를 내게 줬다. 

처음엔 극구 사양했다. 

마음  한 구석에 다시 장기 촬영을 가야 하는 일을 시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화분에 메이고 싶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그 화분 덕분에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데 많은 도움을 받았고, 

들어오는 일들을 끝내는 거절 할 수 있었다. 


내 의지력으론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모든 것들이 순전히 운이 좋아서 얻게 된 것들이다.

물론 운이라는 건 내가 집구석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런 시도를 하지 않았다면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라는 마음으로 살짝 가능성을 열었더니 운이 찾아왔다. 


그러니 너무 애쓰지 말자. 

주어지는 것들에 감사하고, 

겸허히 받아들이자. 


우연히 주어지는 것들과 함께 삶을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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