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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스쿨 김영학 Feb 28. 2018

일의 행복을 기억하나요?

직장 속 행복 그리고 생존의 상관관계


다윈의 진화론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을 '행복' 그리고 '생존'의 상관관계로 설명했다. 인간은 무한정 자신의 욕구를 채워가며 행복을 느꼈고, 그 행복에 중독되어 더 큰 행복을 좇아가며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시대에 따라서 그 행복은 다른 모양새를 띄게 되었고, 자본주의 또는 자유주의 시대의 행복은 공감과 균형 및 조화, 다름(Different)이라는 전에 없던 가치로 시작하기도 했다.




직장에서 행복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인가, "직장에서 행복"이라니 말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이런 반응일 것이다. 일은 그냥 '일'일뿐이라고 말이다. 고작 돈벌이 수단이기에 시키는 일만 잘하면 되고, 그 이상 해보려 하는 것은 소위 '남 좋은 일'하는 것이라고 격하시킨다. 


또한 직장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은 오로지 가장 많은 수입을 올리는 일부 임원과 대표뿐이라는 말이 있다.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그것도 직장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건 중에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직장인의 행복 순위가 연봉 순위가 맥을 같이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어 반박하기 어렵다. 현재는 그런 사람들의 논리가 더 우세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토록 실력 향상보다 연봉을 우위에 두고 더 높은 연봉을 쫓아서 하이에나처럼 직장을 옮기고 있는 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자본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돈이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살아보니 그렇다. 무한정 연봉이 높아지는 구조에 들어가는 것은 극히 일부이다. 그들과의 경쟁을 통해 나름의 괜찮은 삶을 누리는 것이 모두의 목표 또는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결코 내 행복을 찾을 방법이 없다. 


또한 행복이 꼭 돈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면, 엄청난 거부가 된 이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에 비해 수십 배에서 수억 배의 행복을 누리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전혀 그래 보이지 않는다. 측근 중에 가장 부자라고 하는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친구(그 친구는 재산도 능력도 모두 물려받은 아이이다.)를 봐도 그런 것이 전부는 아닌 것 같다. 그 친구가 행복을 느끼는 것은 그저 와이프랑 하고 싶은 소소한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있으면 충분하고 입이 닳도록 말한다. 물론 이것도 케바케이다. 




'직장에서 행복'이 과연 존재할까?!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고 싶다. 대신에 아무나 가질 수 없고, 나름의 조건과 노력이 필요하다. 내 기준에서 행복을 규정 및 구분하고, 이를 직장(생활)에 대입하여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가치, 요소, 상황 등에 집중하여 과정과 결과 사이의 재미를 찾아야 한다. 


삶 속의 행복이란 감정에 대한 정의를 뚜렷하게 내려본다. 이때 만족과 행복의 감정을 혼동한다. 행복이란 결코 '지속 가능한 (긍정적) 감정'이 아니다. 일순간의 호르몬 분비에 의해 느끼는 '순간의 희열(喜悅)'에 가깝다. 반면에, 만족은 현재로부터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스스로가 생각한 수준 이상의 가치 또는 효용을 누렸을 경우에 느끼는 일종의 '소회(所懷)'이다.


직장 속 행복은 자신이 희열을 느꼈던 특정한 순간이 있고, 그 순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만족'스러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직장생활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첫 번째. 다른 이들로부터 얻는 '인정' 또는 ‘존경’ 

- 연봉 상승, 진급, 상사로부터 드물게 듣는 칭찬, 부하직원으로부터 듣게 되는 존경을 담은 한마디 말 등 

인간은 '칭찬'에 굉장히 약한 동물이다. 적어도 유교 문화권인 대한민국에서는 늘 '겸손'하라 배워서 칭찬에 인색하기도 하고, 때 아닌 칭찬에 쑥스러움을 많이 느낀다. 그럼에도 '칭찬'은 언제 들어도 좋다. 위 예시는 직장에서 흔하게 듣는 '칭찬의 순간'들이다. 이 외에도 많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이 많으면 많을수록 직장 속 행복을 느낄 순간이 늘어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행복을 위해 노력하면서 일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물론 각자가 추구하는 가치나 욕망에 따라 조금씩은 차이가 있다. 


두 번째,  스스로가 '성장'했다고 생각할 때  

- 어려운 프로젝트를 완수했을 때, 문제가 발생했을 때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경험 등  

조직은 개인에게 현재 능력 이상의 목표를 하달한다. 일을 통해 일을 배우는 것이 가장 빠른 학습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 우리는 일의 완성도를 높여가는 과정에서 정확하고 빠르게 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게 된다. 이는 곧 노하우로 발현되고, 또 다른 유형에 노하우를 적용하며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면서 성장한다. 그리고 이러한 활동 속에서 스스로가 완벽하게 했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찾아오는데, 이때 성장했다고 뿌듯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주어진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해내거나, 여러 가지 일을 한 번에 완성도 있게 하는 등 전에 없던 경험을 할 경우에 성장을 통한 행복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


세 번째, 금전적인 보상 또는 승진 또는 진급 등의 눈에 보이는 성장

- 받게 되는 연봉의 (급)상승, 포상, 승진 또는 진급 등을 통한 조직 내 위상이 달라지는 것 등

때 아닌 포상을 받거나, 인상된 월급 또는 연봉, 그 이외에 조직에서 '나' 한 사람을 위해 배려해주는 모든 것들이 해당 영역에 속한다. 무엇이든 다른 이보다 더 많이 받고, 더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다른 이들이 인정할 만한 사람으로 성장하는 길이 곧 행복이라 느낀다. 


하지만, 위 세 가지는 결코 혼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적어도 여러 조건들이 받쳐줘야 가능하다. 그 조건들은 시대와 산업, 기업, 문화의 특수성에 따라서 각각 다르게 나타난다. 그리고 점점 물질적인 것들로부터 정신적ㆍ철학적 가치의 중요성이 과거에 비해 커지고 있다. 

  


  

|직장에서 '생존', No~!  행복한 직장 만들기부터


행복해야 생존 가능하다 혹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의 가능성을 가진다

코칭을 받는 분들께 당부하는 말 중에 「조직에 기대지 마라」는 메시지를 꼭 전한다. 조직은 사장이 아닌 이상 결코 개인을 위한 희생은 쉽게 하지 않는다. 만약 그런 뉘앙스를 나타내면 의심하라고 당부한다. 분명 얻고 싶은 것이 있기에 '투자'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가치 아래에서 태어난 조직이 '손해 보는 일'을 하는 것을 본 일이 있는가 말이다. 


결국, 조직에 기대지 않은 상태에서 '개인의 성장'에 초점을 맞춘 행복이 최고의 행복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조직을 무작정 이용하라는 뉘앙스는 절대 아니다. 이용은 하되,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 또는 상생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가치가 담긴 행복의 완성도를 높여가도록 Give & Take를 통해 도움을 주는 받는 것이다. 


그렇게 개인과 조직이 함께 추구하는 행복으로 금세 성장한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고, 어느덧 원하는 회사, 원하는 포지션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현 조직에서 달성한 목표는 조직 내에서 인정받는 것도, 업계에서 통용되는 Reference를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조직과 개인 모두가 원하는 목표의 적용 경험은 직무와 산업의 경험적 일관성을 갖게 한다. 미시적으로는 원하는 목표의 달성 경험을, 거시적으로는 조직과 함께 직접 디자인한 성공 경험을 통해 점차 내 몸값을 높여갈 수 있게 된다. 


물론 약간은 꿈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몇 가지만 주의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 주변의 괜찮은 커리어를 갖고 유지하는 이들을 관찰하면서 발견한 사실인데, 그들은 '① 성과주의적 작업(일)'을 하고, '② 역량 향상을 위한 다양한 경험의 성취를 추종'하며, 이를 위해 '③ 영리하게 관계'를 맺어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한다. 필요에 따라 조직 속에 작은 소그룹을 만들거나, 소속된 조직 밖 업계와의 커뮤니티를 만들어 운영 및 참여함으로써 행복을 위한 지속 가능한 '직장에서의 생존' 관점의 일(직무)의 성장을 추구한다.
 
 
 


① 성과주의'적 작업(일)
성과주의적으로 일을 한다는 것은 조직과 개인의 성과를 연결하여 늘 생각하고, 하는 일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하게 알고 있으며, 실행에서는 최적의 성과를 내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하는 것을 말한다. 나아가 당장의 이익보다 미래 이익을 중요하게 생각, 선구자적 의사결정을 통해 자기희생을 자처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모 기업의 마케팅 전략 수립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의 일이다. 당시 모시고 있던 상사는 소위 말해 빈틈이 없는 사람이었다. 철두철미한 프로젝트 계획 수립과 실행으로 고객사를 효과적으로 설득했으며, 심지어 전심전력을 다하는 진정성 어린 태도로 프로젝트 내내 일관하면서 고객사의 중장기적 이익을 위한 것으로 목적을 변경하면서 노력했다. 그 결과로 다년간의 계약을 이끌어냈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그의 전략ㆍ시스템적 사고와 실행력, 그리고 진정성 넘치는 태도는 여전히 탐나는 역량이다. 

  


② 역량 향상을 위한 '다양한 경험'의 성취를 추종
개인과 조직은 문제 해결 과정을 통해 성장한다. 역량 향상은 문제를 찾고 해결하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얻게 되는 결과로, 어려운 문제를 만나야만 가능한 일이다. 누워서 떡먹기 수준이라면 오히려 하향 평준화될 수 있다. 물론 조직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데 참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자신과 연결된 분야 그리고 스스로 개발해야 할 역량(지식과 기술 포함)이라면, 주저 없이 뛰어들어야 한다. 물론 무엇이 필요한지 아닌지를 구분하는 것은 필수이며, 소위 낄끼빠빠 하는 것이다. 다만, 주저하고 망설이고 놓치는 것보다는 낫다.
 
예를 들어, 과거의 특이한 경험 중에 가장 기억에 남고, 지금 여러 일을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장사 경험'이다. 물론 시작은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한 일이지만, 사람을 대하는 법, 구조적으로 일 하는 법, 함께 일하는 사람과 합을 맞추는 것 등 살아가는데 필요하지만 쉽게 배울 수 없는 말초적인 부분을 경험했고 지금도 요긴하게 쓰고 있다. 그 외에도 다양한 산업 또는 직군에서 활약했던 일이나, 컨설팅을 하면서 공부한 비즈니스와 산업적 인사이트는 누구도 흉내내기 어려운 수준에 도달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 



③ 영리하게 '사람 또는 조직'과 관계 맺기
일하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 '사람'이다. 늘 나 같지 않고,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도 똑같이 생각한다. 서로의 생각을 하나로 통일하려 하지만 쉽지 않다. 이는 정치력과는 좀 거리가 있다. 적을 만들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내 편으로 만드는 인간적 매력을 말한다. 주변에서 지켜본 영리하게 관계를 맺는 이들은 본능적으로 상대방이 원하는 바를 빠르게 제시한다.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거나, 불편함을 덜어주면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요구하거나 얻어낸다. 마치 마술사와 관객에서 일어날 법한 순식간의 '합'을 통해 관계를 맺는 것이 일반적이다. 
 
예를 들어, 지금도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분은 단순히 사람이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개인과 조직을 가리지 않고, 특유의 온화함으로 사람을 쉽게 규합하였고, 이때 자신만의 규칙이 있었다. 내가 '배울 수 있는 사람'과 사귀고, 그들끼리의 또 다른 네트워크를 만들어주며, 이를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그 안에서 얻어내었다. 무섭도록 치밀하지만, 대신에 치밀함 속에 따뜻함을 가진 분이었다. 가장 닮고 싶은 분 중에 한 사람이다.  





일의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

위에서 제시한 활동이 꼭 좋은 커리어를 위한 정답은 아니다. 다만, 위에서 예시로 든 이들은 각자가 정의한 행복과 맞닿은 성장과 성공을 위한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 결과로 꾸준히 성장을 동반한 생존을 하게 되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더 나은 성장을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분들 중에도 약간은 모양이 다를 수 있지만, 유사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거나, 혹은 주변에 이런 류의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만약, 행복한 직장을 만들거나, 이를 통해 지속 가능한 생존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자신이 행복(의 순간)을 정의부터 해보길 바란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매해 세우는 사업계획서와 마찬가지로 나름의 행복 계획(서)을 통해 구체화될 때 실현 가능한 모양새를 띤다. 

  

이는 일종의 '자기 객관화'의 과정이다. 삶 그리고 일 속에서 중요하다 생각하는 가치를 정하고, 현재 어느 수준 인지를 가늠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나름의 평균을 정하고, 평균 이상인지, 이하인지 가늠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또한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하며, 스스로가 정한 행복의 가치와 기준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워보는 것이다. 이때 내가 바라는 가치를 혹시나 너무 높게 잡지 않았는지 잘 살펴봐야 한다. 너무 높은 수준을 요하거나, 이상적 수준만을 좇으면 실망만 할 수 있다. 이제 겨우 돈 벌기 시작하는데, '만수르'를 목표로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또한 조직 전체가 행복한 직장이 되기 위해 스스로에게 의미 없는 희생을 요구할 필요까지는 없다. 우선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일하면서 조직이 바라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이때 서로가 원하는 행복의 가치 또는 기준을 공유하며 조직 및 개인의 성장 관점의 생존 방향과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성장이 없는 생존은 개인도 조직도 아무 의미 없다. 


그리고 기왕이면 위와 같은 작업을 즐겁게 할 수 있었도록 해야 한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공감과 균형의 삶의 가치가 일 그리고함께 하는 이들에게도 중요해진 현시대를 반영하는 것이다. 또한 높은 연봉보다 숭고하게 지켜야 할 가치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돈을 벌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기왕이면 50 : 50까지는 어렵겠지만, 최대한 양립할 수 있는 방향을 찾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만 일의 행복한 기억을 많이 만들어 오래도록 그 기억에 중독되어 살아갈 수 있으며, 조직 문화 또한 건전해질 수 있다. 


아마도 이 시대가 바라고 원하는 진짜 #워라벨은 평균대 위의 삶 그리고 일의 저울질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삶 속에 온전히 자신의 일을 관리할 수 있는 구조와 과정을 다른 이들과 함께 균형적으로 함께 짊어지는 것이다. 혼자 살 수 없듯이 일 또한 혼자 할 수 없지 않은가. 일에 대한 이전보다 진정성 있는 접근을 통해 일 자체에 대한 익숙함을 가지는 것부터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일은 결코 그냥 일이 아니다. 때로는 삶을 송두리째 뒤집을 정도로 중요할 때도 가끔 있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함께 하는 이가 진짜 동료이다. 그런 일, 동료들과 유일하게 일의 행복을 만끽할 수 있다. 과연 어떻게 일하면서 살 것인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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