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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스쿨 김영학 Apr 28. 2018

교육의 대안은 학습이다

평생 '교육'일까 아님 평생 '학습'일까

#직장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평생 동안 '교육'일까, '학습'일까. 모두들 답은 알고 있다. '학습'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에게 '학습'할 기회를 좀처럼 주지 않는다. 오로지 '교육'에 의존하고 있다. '교육'을 어쩔 수 없이 일부 담당하는 사람이지만, 그럼에도 제발 '학습'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래야만 내 안에 오래 남는다. 써먹을 수 있다. 심지어는 돈도 벌 수 있다. 




교육에 몰입한 나머지
소홀히 하는 학습

여기 막 태어난 아기가 있다. 이 친구의 표현은 늘 같다. 소리는 같지만, 의미는 그때마다 다르다. "나 쌌어요"를 "응애"라 하고, "나 배고파요"도 "응애~!!"라 하고, "나 아파요"도 "응애!!!!!!!!!!!"라고 한다. 존재와 원하는 바를 '울음소리'로서 표현한다. 물론 온몸을 다해서 말한다는 것이 더욱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늘 보호자가 붙어있어서 집중적으로 관리 감독해야 한다. 울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기보다 모든 생명은 귀중하고, 존귀하며, 무슨 이유든지 간에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성애로도 설명할 수 있고, 이미 우리 사회는 아동학대법 등으로 규정지어, 부모의 역할을 의무화했다. 


이 아이는 시간이 지나며 자신의 의사표현을 할 수 있도록 '말과 글'이라는 것을 배운다. 유치원이라는 곳을 거쳐 곧 학교라는 곳에 보내진다. 그곳에서는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법, 위아래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운다. 


물론 사람답게 사는 법 보다는 국영수를 중심으로 입시 전쟁에 돌입한다. 그러면서 학교가 '학습을 위한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오로지 이길 수 있는가 없는가에 따르는 순위 및 수준 결정전을 위한 링으로 인식된다. 어렵사리 얻은 성적은 꼬리표가 되어, 사회에 나와서도 여전히 유효하며 심지어 계급이 되기도 한다.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데,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이는 흔치 않다. 사람이 되는 것보다는 '입시라는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훈련을 시키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차별 교육에 길들여진다. 그리고 심지어 하나의 사회가 하나의 커리큘럼에 의해 재단된다. 여기서부터 스스로 길 찾는 법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나마 희망을 걸고 초중고등학교를 거쳐 나름 어른 대접을 받을 수 있는 '대학'이라는 곳에 간다. 학교를 나와서 더 큰 학교, 이른바 어른들이 다니는 학교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 버릇 개 못주고, 계속 교육을 받는다. 정확히 말해 교육에 의존한다. 그 교육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고, 후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인다. 마치 태어나자마다 옹알이를 시작하고, 엄마 아빠의 말을 따라 하는 아기처럼 말이다. 




비슷하게 받은 교육으로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영화 "나는 전설이다" 중 황폐화 된 도시를 거니는 주인공

우리는 곧 정답이 없는 야생으로 나아가야 하는 각자가 모두 존귀한 천연기념물과 같은 존재이다. 왜?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종족이 백인, 흑인, 황인종으로 나뉘어 세 종족이 전 지구에 걸쳐서 60억 인구가 있다고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생명의 절대적 가치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같지만, 그들이 가진 능력(적성과 재능 그리고 가능성과 의지의 합)은 제각각이다. 각자가 자신의 인성, 개성, 감성에 의해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지극히 복잡계(Complexity)에 어울릴만한 이성과 감성이 혼합된 지구 상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이다. 



누구나 보통을 꿈꾸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겉만 보면 비슷해 보이기만 하다. 분명 각자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다. 하지만 대다수가 '비슷한 교육'에 의존한 나머지 각자의 야생성은 점차 잃어간다. 끊임없이 '보통 또는 중간 이상'을 쫓는다. 평균의 오류에 빠져 그 평균이 언제나 내 마음속에 있는데도 마치 누군가와 닮아간다고 착각한다. 


그려다 보니 스스로가 무언가를 찾기보다는 누군가로부터 주어지는 것에 익숙해진다. 어렸을 때부터 받아와 익숙해진 수동적 '교육'에 의해 사육당하는 것이다. 마치 교육이 도깨비방망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배우면 성장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적절한 노력은 일단 안 하는 사람이 승리자이다. 정말 필요에 의해 갈구하여 얻어야 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개이득(교육 = 정보 및 지식 획득의 기회)'을 선택한다. 왜? 교육이 가장 낮은 비용으로 가장 오래도록 쓸 수 있는 Skill & Technique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믿었고, 그동안 계속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교양이나 상식 수준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모든 분야를 철두철미하게 알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문성 또는 나만의 전문 영역'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비슷해지기 위해 비슷한 교육을 받고, 이를 나만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내 안의 야생의 생존 본능 감소와 동시에 능동적인 움직임은 철저하게 줄어든다. 


착각이다. 현시대는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는가의 지식과 정보의 경쟁이 아니라, 누가 더 많이 연결, 분류, 복합, 융합 등을 통해 데이터를 모으고 지식 화하며, 교환 가치 있는 지혜의 완성도를 겨루는 환경으로 경쟁 구도가 변화하고 있다. 이른바 지식을 머릿속에 수집하는 사람과 이를 검색하여 새롭게 조합하는 사람 간의 경쟁이다.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마케팅적으로 보면 과거의 Skill에 사로잡힌 이는 '희소'하지 않다. 당연히 가장 먼저 '희소성(개성)'을 잃게 된다. 이른바 거래할 만한 유일한 가치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과 같다. 자신을 누구도 사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본인 스스로 사회(시장)에서 교환 가능한 가치를 만들어가지 않은 채 과거의 교육 방식에 익숙한 자기 자신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 




수동적인 교육을 내려놓고,
능동적인 학습을 움켜쥐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4년 전 독립을 선택하고 나서부터 달라졌다. 생각보다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던 과거를 반성했다. 이제는 늘 정신을 바짝 차리고 생각한다. 과연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내가 되려는 모습이 과연 맞는지,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 오늘 하루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말이다. 


물론 4년 전 독립이라는 선택을 돌이켜보면 극단적이었다. 4년간의 고생만을 생각하면, MCU의 타임 스톤을 가진 닥터 스트레인지를 실제 만나 시간이라도 되돌리고 싶은 시점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만큼 남들이 해야 할 경험치를 2-3배를 짧은 시간에 했다. 


운이 좋았다. 그래서 깨달은 것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고, 바라는 삶을 위해서는 하루하루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야생의 나를 두고 실험할 수 있었다. 그중에 가장 먼저 한 것이 교육받으려 하는 과거의 나부터 지우는 일이다. 


가장 처음 한 것이 '글을 쓰는 것' 내 생각을 논리 정연하게 글로써 표현하는 것이었다. 고민했던 주제를 정하고, 뚜렷한 테마를 잡고, 거기서 어떤 메시지를 남기고 싶은지를 정리했다. 읽는 것보다는 그동안 읽었던 것을 되짚어가면서 내 생각을 더했다. 지금도 그래서 글을 쓴다. 매일 쓴다. 


출처 : Slideshare, Learning Technology

교육과 학습의 차이는 마치 '남이 해주는 예습'과 '스스로 하는 복습'의 차이이다. 당연히 둘 사이의 균형이 필요하다. 그 균형을 잡는 것은 교육을 제공하는 '제공자'는 아니다. 왜? 교육의 목적은 가르치는 행위에 있지 않다. 피교육자가 원하는 '성장'에 있다. 피교육자가 원하는 성장을 제공하지 못하는 교육은 쓸모가 없다. 그래서 못 가르치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못 배우는 것이 더 많다. 


따라서, 적절한 능동적 학습(Learning)이 함께 있어야 한다. 체험이나 경험이 있으면 더욱 좋다. 이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과 네트워크가 있으면 더더욱 좋다. 그래서 교육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아닌 '학습 환경'을 스스로 조성하는 것이다. 


직장에서 생존을 위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의 적절한 교육과 치열한 학습은 필수다. 단, 그걸 '일'로부터 얻는 경험적 인사이트에 의존해서는 절대적으로 한계가 있다. 편협한 시각, 관점이 고착화될 수 있으며, 그걸로 인해 스스로 직장 수명을 단축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르칠 교(敎), 기를 육(育)은 철저하게 '교육자'의 언어이다. 그들의 목적은 피교육자(학생)를 성장시키는 데 있다. 하지만 교육자는 '가르치는 행위(敎)'에 몰입한 나머지 피교육자를 배려하지 못한다. 특히 대단위 교육에서는 더욱 심하다. 그렇다면 각자가 알아서 '받아먹기' 해야 한다. 당연히 '학습'으로 인해 개인차가 벌어질 것이다. 


따라서 누군가로부터 배우기보다는, 스스로 궁금증의 근본을 찾고, 이를 해결하는 진정한 학습자로서의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성인이 되어 자신만의 분야를 갖고 정진한다는 것은 바로 그런 것이다.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아마도 교육을 잘 받기보다는 '학습'에 근거하는 끊임없는 호기심 해결이 아닐까 싶다. 


누군가를 가르치고 영향을 행사하는 일을 하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교육은 프로그램이 아닌 '나라는 사람'을 파는 일이라고 말이다. 따라서 사람(피교육자)에게 그들이 원하는 목적과 목표를 스스로 달성할 수 있는 '방법론'을 깨닫게 하는 것이 미래의 교육인 것 같다. 과거의 교육은 그저 '가르칠 敎'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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