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깊은 신뢰에 대한 배신

타인에 대한 존중

by 타조

주말이면 사람들은 무엇을 하는지 무척 궁금하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여유롭고 행복한 주말을 꿈꾸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않을까? 나는 주말이면 어김없이 도서관으로 향한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도서관에 간다. 눈, 비와 같은 궂은 날씨, 태풍이나 장마와 같은 악천후가 의지를 갉아먹을 때에도 되도록 도서관에 가려고 애쓴다. 집과 카페의 책상에 앉아 여유롭게 글쓰기를 할 수는 있지만 도서관에서만 가질 수 있는 마음가짐과 집중력 때문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도서관에 가려고 한다. 이런 강박과 같은 도서관 출입의 일등공신은 단연 글쓰기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나는 글쓰기를 좋아했고 제법 글을 많이 썼다. 일기는 수시로 썼고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과 편지도 제법 주고받았다. 비록 세월이 흐르며 수차례 이사를 다니는 동안 공책과 편지를 정리하여 지금 갖고 있는 글공책은 고작 열 권이 채 되지 않고 편지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다.


띄엄띄엄 이어져 온 글쓰기가 언제부터 습관처럼 굳어졌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최근 몇 년 동안 삶의 고난과 고통을 통해 다양한 생각이 머리를 복잡하게 채웠으며 넘실거리던 강물이 둑을 부수듯 정리되지 않은 여러 생각이 정신의 둑을 부숴버릴 것 같은 위태로운 느낌을 받았다. 정신이 무너져 내려 수습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면 스스로 감당할 수 없을 삶이 두려웠다. 그래서 독서, 운동, 그림, 피아노, 글쓰기 등 다양한 방법으로 불안정한 정신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둑이 무너지기 전에 머릿속에서 의미 없는 생각을 끄집어내거나 휘감긴 생각을 정리하려 노력했다. 모든 방법이 효과가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목표를 구체화하여 삶의 방향성을 잡는 데에 글쓰기가 많은 도움이 되었다.


글쓰기의 시작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혼자만의 생각을 정리하여 문자로 옮기는 과정이었다. 알고 이해한다는 생각을 문자로 옮기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추상적인 관념을 구체화시키는 일이 참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을 뿐 아니라 사실은 내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게다가 작은 연필깎이로 연필을 살살 돌려 깎는 시간도 좋았다. 스탠드의 조명이 백열전구처럼 따뜻한 색상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의자에 앉아 책상에 공책을 펼치는 것까지 글쓰기를 준비하는 시간은 무언가 비어 있는 마음을 포근하게 채워주는 느낌이 들었다.


얇은 공책을 펴고 생각을 끄적거리던 혼자만의 글쓰기는 개방된 인터넷 공간의 글쓰기로 확장되며 많은 것이 바뀌었다. 나 혼자 정리하고 보관하던 생각을 다른 사람과 공유할 수 있고 공감을 통해 생각을 확장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다. 물론 타인의 시선에서 공감할 수 없는 글쓰기는 불가능했기에 철저하게 나의 생각이 보편적인 시선에서 합당한 지 돌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생각이 보편적이지 않다고 해서 마냥 틀린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타인과 첨예한 논쟁을 벌일 수 있을만한 생각을 갖고는 있지만 이런 생각은 마땅히 나눌만한 사람이 등장하면 조심히 꺼내볼 참이다. 또 개방된 공간에서의 글쓰기는 내가 쓴 글을 반복해서 읽고 점검하고 고치도록 만들었다. 이 과정은 매우 귀찮지만 꼭 필요한 일임을 깨달았다.


글쓰기를 위해 오늘도 도서관에 입장한다. 일반 열람석과 달리 노트북 이용석은 따로 지정되어 있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독서와 공부를 방해하는 소음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트북 이용석은 만석이다. 그러나 노트북 이용석에 노트북이나 가방만 올려져 있는 자리도 있다. 기껏해야 열 석 남짓한 노트북 이용석 중 두 자리가 그렇다. 일반 열람석에 앉아 이용을 마친 사람이 떠나기를 간절히 바란다. 동시에 빈자리의 이용자가 언제 돌아올지 주의를 기울인다. 마침 한 이용자가 가방을 꾸리고 있는 것을 보고 앉아 있던 자리에어 벌떡 일어나 정리하는 사람의 뒤로 줄을 선다. 자리다툼 없이 무사히 자리를 이어받는다. 도서관에 도착하고 삼십 분이나 지나 노트북 이용석에 앉게 된 것이다.


마침 옆 자리가 노트북도 없이 충전기만 잔뜩 꽂아둔 채 비운 자리다. 열심히 글을 쓰면서 세 대의 충전기만 잔뜩 꽂아 놓고 자리를 비운 사람이 언제 돌아올지 알 수 있다. 나는 열심히 글을 쓴다. 분명히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다른 어떤 사람이 내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면서 아쉬워할 것이다. 나는 열심히 자판을 두드린다. 반대편에 있는 사람은 자리에 앉아 잠을 잔다. 그의 책상에는 노트북도 없다. 노트북 이용석이지만 스마트폰으로 유튜브 영상만 끊임없이 보다가 이제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코를 골며 잠을 잔다. 나는 또 글을 쓴다. 드디어 충전기만 잔뜩 올려져 놓은 자리에 사람이 돌아왔다. 두 시간 삼십 분이 지나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자리를 안타깝게 원하며 일반 열람석에서 기다리고 있었을까?


우리가 규칙과 질서를 지키는 것은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모두에게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내가 줄을 서면 다른 누군가도 줄을 설 것이라는 믿음, 내가 물건을 가져가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가져가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 그런 믿음을 배신하는 일이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런 일이 배움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안타깝다.

keyword
이전 17화이별당한 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