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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당한 담배

버려진 사랑의 아픔

by 타조

뜨거운 열기를 뿜어내는 태양이 얄궂은 계절이다. 태양으로 말미암아 지구의 생명이 태동할 수 있었기에 나의 생명도 태양에서 비롯되었다고 여기고 있지만 내가 먹고 마시는 모든 것들이 태양의 에너지로부터 생겨나서 나의 생명을 유지한다는 소중함을 잊을 정도로 한여름의 태양이 무척이나 밉다. 이마에 맺힌 구슬땀이 피부를 타고 흘러내려 턱에 고인다. 작은 땀방울이 맺혀 반짝거리는 손등으로 턱을 훑으면 땀방울이 뭉개져 의미 없는 무늬를 이룬다. 이런 날을 반길 수 있는 존재는 강렬한 태양빛으로 광합성하여 에너지를 얻는 식물 정도이지 않을까 싶다. 도저히 한낮에 뜨거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넓은 번화가에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도 길 양 옆에 짧게 드리운 그늘로만 다닌다. 하지만 태양의 열기를 가득 품고 있는 땅에서 올라오는 지열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이 아찔하기까지 하다.


하늘에 조그만 구름이라도 걸려 잠시 우리를 태양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면 그 잠깐의 찰나가 그렇게 기쁠 수 없다. 아마 그 조각구름이 겨울에 등장했다면 햇빛을 가린 원흉으로 지목되어 눈총을 받았으리라 추측한다. 같은 상황도 계절, 시기, 또는 우연하게 겹치는 어떤 사건이나 시간 속에서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온다. 그렇다고 당장 내리쬐는 햇살을 가려준 조각구름에 대한 고마움이 반감되지는 않는다. 숨이 턱 막히는 순간에 절묘한 타이밍으로 숨통을 틔워주었다. 조각구름이 유유히 흘러 태양이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 강렬한 더위에 또 시달리겠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그것이 여름인 것을.


그렇다고 모든 여름철의 외출이 다 괴로운 것만은 아니다. 구름이 사방에 깔린 여름의 새벽은 그럭저럭 선선하다. 일찍 동이 터서 이른 시간에 밝아진 하늘이 내 몸에 잠이 깨는 기운을 아주 천천히 주입한다. 언제부터 나는 의식이 돌아왔음을 느꼈는지 아무리 떠올려보려고 해도 허무한 결론뿐이다. 그냥 자연스럽게 날이 밝았음을 인식하고 천천히 눈을 뜬다. 다행히도 하늘에는 구름이 한가득이다. 생각이 많은 날은 산책을 통해 생각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 길을 나서기 전부터 머릿속을 복잡하게 메웠던 생각들이 떠오른다. 여름철 하늘을 가득 메운 구름은 그렇게 반가운데, 머릿속을 가득 메운 생각들은 반갑지가 않다. 아무리 정리하려고 해도 정리가 되지 않는 생각들이 계속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 때문이다. 가끔은 아무런 정리도 하지 못한 채 산책을 마치는 날도 있다. 한 번의 산책으로 삶의 고민들을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까마득히 잡히지 않는 생각에 매몰되어 다른 생각들까지도 정리가 되지 못하는 단계에 이르면 될 대로 되라는 듯 생각을 멈춰버리는 방법도 사용하는데 결과가 그다지 좋지는 않다. 그래도 구름이 잔뜩 끼어 태양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순간을 여유롭게 나만의 시간으로 채운다. 머릿속은 복잡할지언정 선선한 여름날 아침의 시냇물 소리와 지저귀는 새소리, 짙푸른 녹음이 가득한 산책로를 걷고 조금이나마 생각을 정리해야만 한다.


차갑게 식은 대지와 따뜻한 지표의 공기가 밤새 서로를 애무하며 둘 사이에 낮게 깔린 희미한 안개를 만들었다. 해가 떠오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개는 사라져 버리겠지만 다행히 키 작은 풀잎에 이슬로 맺혀서 대지를 아름답게 반짝인다. 둘의 사랑은 비단 하루뿐이 아니라 지구의 생성과 소멸이 맞닿는 역사와 함께 하며 모든 아침은 언제나 반짝이는 찬란한 사랑의 아름다움으로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우리의 사랑도 이처럼 영원히 이어져 눈부시게 빛났으면 좋겠다.


아름다운 감상에 빠져 정리할 생각을 잠시 잊었을 즈음 산비둘기 울음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온다. 제법 낮은 저음으로 일정한 리듬에 맞춰 운다. 웬만한 새의 소리를 지저귄다는 표현으로 나타낼 수 있겠지만 유독 산비둘기는 지저귐보다는 울음에 가깝다. 보이지는 않지만 아마도 가슴을 한껏 부풀려 소리 내는 것일 테지. 산비둘기 울음소리에 이번에는 슬픈 감상에 젖어든다. 경쾌하고 아름다운 것 같지만 애처로운 슬픔의 눈물방울들이 빠르게 떨어져 건반을 두드리는 피아노 연주곡 'Flower Dance'가 떠오른다. 애석하게도 아름다운 것의 소멸을 앞두고 떠오르는 느낌이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감미롭고도 슬픈 감상으로 걷는 산책로에서 퀴퀴한 담배 냄새가 코를 훑고 지나간다. 담배의 잔향만 남겨진 것이 아니다. 새하얀 막대들이 어지러이 남겨져 누워있다. 쓰임을 다하고 버려진 안타까운 사연을 지닌 꽁초들을 가여워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세상에서 버림을 받은 이조차도 담배꽁초를 보며 측은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정성스럽게 말려져 곱게 갈리고 하얀 옷을 반듯하게 입어 단정하게 담겨있던 담배는 불길에 휩싸여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고 처절한 모습으로 밟히고 젖어 드러누워 있다.


자신을 위해 쓰임을 다한 것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그렇게 뜨겁게 사랑을 나누더니 보란듯 버려졌다. 담배는 죄가 없다.


사진: UnsplashHuseyn Memmed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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