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걸어가야 할 길
오후 2시. 초점을 잃은 눈이 흐려지고 눈꺼풀은 무겁다. 높게 떠오른 태양은 가장 높은 에너지를 지상에 쏟아내고 세상은 활력의 한가운데를 지난다. 지구의 자전으로 낮과 밤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며 에너지도 높아지고 낮아진다. 그런데 세상이 에너지로 가득한 이 순간에 졸음이 쏟아지다니 의아하다. 단조로운 일상의 반복으로 형성되는 권태감이 졸음의 원인일까? 단순히 잠이 부족해 느끼는 피로일지 지루한 일의 반복으로 지친 열정의 고갈인지 가늠할 수 없다. 하지만 이내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고 허리를 곧게 세운다. 눈을 감고 고개를 높이 쳐들어 뒷목에 긴장감을 채운다. 이어서 크게 숨을 들이켜면서 눈앞이 노랗게 되며 빨려 들어가는 느낌에 모든 감각을 집중한다. 감았던 눈에 힘을 주어 부릅뜨고 숨을 길게 내쉰다. 정신을 잃을 뻔한 고비를 한 번 넘겨보지만 나른함은 지속적으로 밀려오는 파도처럼 수차례 반복된다.
큰 변화가 없는 일상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안정감과 평온함을 가져다준다. 단조롭고 변화가 없는 상황은 우리를 권태에 빠트린다. 같은 일을 반복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권태의 가장 큰 특징은 게으름과 싫증이다.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게으름과 싫증이 스멀스멀 정신을 간지럽히기 시작하면 변화를 시도해 볼 만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거나 운동을 시작하거나 악기를 배워볼 수도 있다. 인생은 작곡과 연주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현재 진행형의 화려한 교향곡이다. 언제든지 변주가 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 곡조가 터무니없이 지루하다 싶으면 변화를 줄 시점이다.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 도무지 어디서 에너지가 흘러나오는지 모르겠지만 끊임없이 재잘거리고 뛰논다.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에게 채운 만보기 수치가 활동적인 어른들의 하루치를 능가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아이들은 조금만 지루해질 것 같으면 쉽게 흥미를 잃는다. 그리고 수시로 놀이에 변화를 주며 그들의 즐거움을 오래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아동청소년 시기는 매우 경쾌하고 변화가 많으며 시끄러운 변주곡이 된다.
하천이 시작되는 강의 상류는 폭이 좁고 물살이 빠르다. 하천은 중류에서 하류로 이어지면서 폭이 넓어지고 유속도 느려진다. 결국에 바다로 흘러드는 강의 모습이 인간의 삶의 모습을 비유하기에 적절한 부분이 있다. 경쾌하고 가볍게 움직이며 자신의 내면을 넓히던 어린 시절을 지나 경험이 쌓이고 내면에 깊이와 너비가 생기면서 묵직하게 흐른다. 비록 모든 사람들이 같은 경험의 양과 질을 가질 수 없지만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공동체 안에서 보편적인 질서와 흐름에 맞물려 흐른다. 마침내 바다로 흘러들어 언어와 문화, 종교를 초월한 인류의 공통된 가치로 수렴된다. 바닷물은 증발하여 어느 산과 들에서부터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를 향한 여정을 다시 시작한다. 이런 물의 여행은 세대를 거쳐 반복되는 인류의 모습과 닮았다. 바다라는 공통된 가치를 본보기 삼아 종국에는 바다로 흘러 모이기 위해 삶의 여정을 잇는다.
물론 건강하게 최종 여행을 마칠 수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어떤 난관을 만나 고이고 썩어버리는 일도 종종 발생한다. 게다가 자신만 썩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악취를 풍기며 다른 하천까지 썩게 한다. 특히 어떤 사람은 자유와 개성이라는 말로 자신의 행동을 그럴듯하게 포장하며 건강한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와 상반되는 오염물질을 반복적으로 우리 사회에 퍼뜨린다. 하천뿐만 아니라 바다까지 썩히는 역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스스로 썩거나 주변을 오염시키는 일을 막기 위해서 건강한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종심소욕 불유구. 공자는 논어에서 인생 단계별 자기완성 과정을 언급했다. 15세에 학문에 뜻을 세우고 공부를 시작하였고, 30세엔 사상과 인생관이 확립되어 독립했고, 40세엔 세상의 유혹에 흔들림 없이 확고하게 판단했으며, 50세에 하늘의 뜻을 알았고, 60세엔 어떤 말을 들어도 동요하지 않았으며, 70세엔 마음 가는 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특히 70세를 언급했을 때의 말, '종심소욕 불유구'는 건강한 인류의 보편 가치를 내재한 현명한 어른의 모습을 기술했다. 우리가 최종적으로 삼아야 할 본보기이며 건강한 사회의 가치를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 위한 어른의 참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 공자의 제자인 증자가 썼다고 알려진 대학 편에 나오는 자기 수양의 과정이다. 하지만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앞부분에 생략된 부분이 있다. 격물치지성의정심이다. 격물(사물을 바르게 인식함), 치지(앎을 끝까지 추구함), 성의(뜻을 진실되게 함), 정심(마음을 바르게 가꿈)으로 자신의 정신을 충분히 다듬은 후에 수신(몸과 마음을 닦음), 제가(집안을 바르게 함), 치국(나라를 다스림), 평천하(천하를 평화롭게 함)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다. 즉, 자신을 둘러싼 세상의 진실을 추구하려는 노력과 마음이 바로서야 자기 자신으로부터 시작하여 큰 나라까지 다스릴 수 있다.
경험으로 얻는 가치의 본질을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배움에 게으른 사람들이 있다. 책을 읽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라는 좁은 배움을 일컫는 것이 아니다. 삶에서 쌓이는 경험만으로도 배움의 기회를 가지며 지혜를 쌓을 수 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조심스럽고도 반복적으로 곱씹고 반성할 수 있다면 상호 간의 믿음이 쌓여 건강한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자녀들에게, 사회 구성원들에게 존중받을 수 있는 어른이 되려면 성숙한 존재로서 살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단순히 새로운 사람이나 취미에만 힘을 쏟을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로 세우는 변화의 시도도 이루어지길 바란다.
사진: Unsplash의Simon Ma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