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에서 드러나는 본성
백주대낮에 그 광경을 지켜보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남자가 트렁크에서 꺼낸 골프채를 힘차게 휘두르자 둔탁한 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졌다. 남자는 이를 악물고 골프채를 몇 번 더 휘두르더니 손가락질을 하며 입 밖으로 격한 욕설을 쏟아냈다. 차량의 유리는 촘촘하게 엮인 거미줄 모양으로 금이 가면서 부서졌고 차체는 이곳저곳이 움푹 파였다. 남자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차량의 앞유리 너머로 잔뜩 겁에 질린 표정의 한 남자가 입을 벌린 채 앉아 있었다.
하늘 높이 떠오른 해가 지상으로 쏟아내는 햇살이 따갑다. 한낮의 해는 거의 수직으로 떠올라 그늘조차 허용하지 않을 기세다. 우리가 적도 근처에 살고 있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우리나라에서 태양이 가장 높게 떠오르는 남중고도는 37.5도의 위도에서 23.5도의 지구 기울기를 빼고 수직과의 차이를 계산하면 76도 정도라고 할 수 있다. 남부지방은 위도가 더 낮으니 남중고도가 80도에 육박한다. 하늘 정가운데에서 조금 빗겨 매달린 태양은 그늘의 필요성을 부정하며 이 땅에 온 에너지를 쏟아낸다. 그늘이 없는 불볕을 조금만 걸어도 코끝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나마 지구가 태양에서 적당히 떨어져 있어 이 정도지 조금이라도 가까웠다거나 자전주기가 길었다면 지구를 떠나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먼 곳에는 적란운이 높이 솟아 있다. 적란운이 이곳에 도착하면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며 짓궂은 태양의 강한 햇살로부터 잠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햇살이 아름다운 푸른 하늘의 맑은 날이 좋긴 하지만 잠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흐린 날이나 비가 내리는 날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적당한 그늘과 더위를 식힐 수 있는 가벼운 비가 필요할 뿐이지 강한 비바람도 썩 반갑지는 않다. 강렬한 태양의 뜨거운 열기와 다른 종류의 고통이 수반될 것이다. 장마 때문에 생기는 문제도 많으니 뭐든 적당한 것이 좋으리라. 그래서 나는 봄과 가을을 사랑하나 보다.
그날 밤 적란운은 기꺼이 하늘을 뒤덮었다. 비구름으로 뒤덮인 도심의 밤하늘은 어두웠지만 도시의 조명색으로 희미하게 뭉개져 있었다. 어두운 밤하늘에 번쩍이는 번개와 뒤를 잇는 천둥소리, 그리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비. 가까운 곳에서 내리 꽂히는 천둥소리는 가까이 있는 모든 것을 찢어버릴 듯이 날카롭고 강렬하다. 시간이 조금 흘러 번쩍임과 천둥소리의 간격이 조금씩 벌어지더니 어느덧 날카롭던 천둥소리는 사방으로 뭉그러져 귀엽게 우르릉거렸다. 창문과 난간을 때리는 굵은 빗소리가 불규칙적인 화음을 일으키고 간간히 번쩍이는 번개와 귀엽게 우르릉거리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아침부터 비는 사납게 내린다. 바람도 거세게 불어 사람들의 우산이 오목하게 파이거나 뒤집어진다.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도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우산을 부여잡느라 함께 휘청거린다. 평소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사람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거리가 한산하다. 비가 내리는 날에 얌전히 비만 내리는 일은 거의 없다. 항상 바람이 분다. 강한 비가 내릴수록 바람도 거세다. 그래서 비바람이라고 하던가? 길을 걸으며 과거의 학창 시절을 회상한다. 유독 학생들의 두발과 의상을 제한하던 시절이었다. 비가 내리는 날에는 신발에 빗물이 한가득 고여 양말까지 폭싹 젖었다. 젖은 양말을 벗어 창가나 의자, 책상에서 말리다가 선생님의 불호령이 떨어지면 돌돌 말아 가방에 넣었다. 발바닥과 발가락은 물에 퉁퉁 불어 쭈글쭈글했다. 맨발로 신은 실내화 안에는 땀이 나 미끈거렸으며 시큰한 땀냄새가 그대로 고였다. 교복 바지는 무릎까지 젖은 상태로 입은 채 말려야만 했다. 교실을 가득 매운 고약한 냄새를 환기시키느라 하루 종일 창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그리고 젖은 신발을 고스란히 신고 집으로 돌아가면 며칠을 젖은 채 놓아둔 빨래 같은 기분 나쁜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우리는 일상에서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일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적응한다. 내리는 비를 막을 도리가 없고 집 밖의 학교와 직장에는 가야 하니 신발과 옷쯤은 젖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덜 젖거나 빠르게 말릴 수 있는 방법을 각자 적용할 뿐이다. 그런데 일상에서 종종 이성을 잃는 경우가 있다. 유독 도로 위에서 이성을 잃는 일을 많이 목격한다는 느낌은 단지 나의 개인적인 생각일까? 물론 운전 중 발생하는 사고가 생명과 직결되는 아찔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고를 유발하는 상황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흥분하고 이성을 잃는다.
가까운 거리에서 차선을 변경하여 앞으로 끼어드는 차 때문에 잘 달리던 차의 속력을 줄여야만 하는 일로 불쾌하다. 직진과 우회전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차선에 정차한 차 때문에 우회전을 하지 못해 기다리는 일이 짜증 난다. 정속 주행하는 차 뒤에서 상향등을 깜빡이거나 경적을 울리는 일로 기분이 언짢다. 이런 일들은 우리가 생명의 위험을 느낄 정도의 상황은 아니다. 하지만 이성을 잃고 욕설을 주고받으며 주먹다짐을 하고 골프채와 야구방망이를 휘두르는 사건이 매체를 통해 소개된다. 아이들과 가족들이 부모의 이런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한다.
적어도 우리가 어른으로 성숙하기 위해서 필요한 존중과 배려가 도로 위에서도 꼭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자신의 편의를 위해 남을 배려하지 않는 운전 습관 속에서 타인에게 불필요한 분노를 유발하게 하는 모습은 없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으며 또 언제든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조금 더 인내심을 갖고 너그럽게 대처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지혜를 나눌 수 있는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삶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깊이 있게 하고 생활하면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