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되는 삶
청명한 하늘에서 가득 쏟아지던 따가운 햇살로부터 해방되었다. 회색빛 구름은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고 온 하늘을 뒤덮었다. 구름의 형태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덩어리가 되어 땅 가까이 내려앉은 모양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초점을 맞출 수 없을 정도로 깊이 탁하다. 갯벌의 진흙이 잔뜩 헤쳐진 바다처럼 한 치 앞도 구분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구름 너머에서 여전히 무한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태양의 빛 때문에 진흙이 어지럽게 섞인 바다와는 다르게 하늘은 칙칙하지만 어둡지는 않다.
빗방울을 가늘게 떨구는 회색빛 구름 아래에서 나는 감상적 글쓰기를 한다. 하지만 이런 현실이 무색하게도 다른 곳에서는 물난리가 한창이다. 애써 가꾼 농작물이 망가지고 가축들이 생명을 잃고 집이 물에 잠기는 등 안타까운 일이 동시에 벌어진다. 믿을 수가 없다. 같은 하늘 아래에서 누군가에게는 일상의 불편함으로 끝나는 일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재산과 생명이 위태로운 일이라는 것을. 세상에 희극과 비극이 공존하고 있음을 되새긴다. 심지어는 같은 공간 속에서도 누군가는 행복한 삶을 살고, 다른 누군가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가치관과 태도가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도 또는 불행하게도 만든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적어도 불가항력적인 외부의 힘이 우리의 잔디밭 같은 인생을 갈아엎는 일이 발생할지라도 파헤쳐진 흙을 메워 땅을 다지고 뽑혀 나간 잔디를 심고 잡초를 제거하며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려 노력해야 한다. 상흔이 유독 빛나는 이유는 아픔을 딛고 자라는 희망이 속에 있기 때문이다. 상황의 비극에 매몰되지 않고 희망을 노래하는 유연한 마음가짐을 반짝이는 상흔 속에서 발견하면 좋겠다.
주변 산봉우리에 낮게 걸려 있던 구름은 빠르게 북쪽 하늘로 이동하면서 점차 옅어지더니 마치 자신은 원래 그곳에 없었던 것처럼 자취를 감추었다. 솜사탕 기계에서 뒤늦게 빠져나온 설탕의 실타래가 솜사탕에 마저 엉겨 붙기 위해 솜사탕을 뒤쫓듯 몇몇 조각구름도 빠른 속도로 먹구름을 찾아 떠난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먼 곳에 높게 걸린 구름이 하늘을 은은하게 덮고 있다. 끝없이 이어질 것 같던 흐린 날씨가 급변하는 모습을 스릴러 영화의 극적인 반전처럼 바라본다. 우리의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풀숲에 숨은 사자가 근거리의 어린 가젤을 사냥할 때처럼 예기치 못한 비극이 인생을 덮칠 때처럼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비극적인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는 법이다. 사자의 사냥 성공률은 최대 3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다 무너질 것 같은 불행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다면 변하는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다. 폭우를 견디다 보면 맑은 하늘을 맞이하는 날이 온다.
집은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편안한 공간이다.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번개가 치고 강풍에 흔들리는 나무의 모습을 창문 너머로 평온하게 바라볼 수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인류는 생존을 위해 안전한 공간을 마련해 무리를 지어 모여 살았다. 현대에 이르러 집은 단지 생존을 위한 공간만은 아니다. 집은 생존을 위한 물리적인 측면 외에도 정서적인 측면을 갖고 있다. 집은 단순한 장소로서의 집을 넘어서 정서적 안식처, 안정감, 그리움, 편안함을 상징한다. 더욱이 아이들에게는 정서적인 가족의 울타리로써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집은 물리적인 특징을 대표하지만 가정은 물리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부분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똑같겠지만 유독 아이들에게는 가정의 존재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마음의 안식처와 같은 공간이 어떤 아이들에게는 비극의 공간이 되기도 한다. 보호받아야 할 소중한 아이들이 아동학대라는 고통을 겪고 있다. 자신이 가장 사랑하고 신뢰하는 대상으로부터 전달되는 고통과 공포를 아이들은 감당할 수 없다. 고통과 공포를 피할 수 없는 상태로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서서히 적응한다. 가스라이팅. 자기 잘못으로 벌어진 일로 나는 학대받아 마땅하다. 감히 탈출을 감행할 수 없는 아이들의 심리와 맞물려서 학대는 점점 수위가 높아진다.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자는 85퍼센트가 아이들의 부모이다. 문제는 더 있다. 학대당한 아이들 10명 중 8명이 원래 가정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분리 보호되더라도 상당수 아동이 몇 개월 내 다시 원래 가정으로 돌아가며 재학대가 이어진다.
성인으로 성장한 두 남녀가 결혼하여 낳은 사랑의 결실을 두고 벌어지는 아동학대는 인류 최악의 범죄가 아닐까 한다. 자신을 신뢰하여 저항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대상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보며 우리는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학대와 훈육의 명확한 기준을 설정할 수 없다는 한계가 있지만 명백히 학대라고 여길 수 있는 일들이 지금도 벌어진다.
그리고 학대받은 아이들은 분명 자신의 주변에 학대의 상처를 퍼뜨린다. 습관적으로 쌓인 말과 행동을 은연중에 드러낸다. 우리는 아이의 성향이라고 착각하여 무심코 지나칠 뿐이다. 그리고 아이가 성장하면서 무의식에 쌓인 학대의 증거들은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 자신조차 깨닫지 못한 순간에 자연스럽게. 결국 학대의 씨앗이 자라 우리와 같은 공간, 같은 시대를 살아가게 된다. 진심을 담은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서로를 존중할 수 있는 태도를 갖춘 어른이 필요한 세상이다.
사진: Unsplash의Jochen van Wy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