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세계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을 보았다. 별은 어두운 밤하늘에 저희들끼리 적당한 간격을 두고 반짝였다. 지상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서도 떨어지지 않은 채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 가물거리듯 깜빡이는 별빛을 바라보며 걸음을 옮겼다. 가로등이 없는 길은 너무 어두워서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길 끝에 서있는 가로등의 불빛 덕분에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길의 윤곽이 희미하게 드러났고 용케 길을 걸을 수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까마득하던 어둠에 조금씩 빛이 스며들기 시작할 것이다. 서서히 빛이 스며들면 밤하늘을 가득 메웠던 별빛이 사라지겠지. 동이 틀 때 하늘에서 빛을 내는 것은 그믐달뿐이겠지. 하물며 그믐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 태양빛이 비치는 면을 우리에게 보여줄 뿐인 것을. 곧이어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면 어둠은 완전히 사라진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질 때면 빛이 사그라들며 사방이 다시 어둠에 둘러싸일 것이다.
태양계의 핵심이면서 유일하게 빛을 내는 태양이 곧 별이다. 밤하늘을 수놓은 별은 모두 까마득히 먼 곳에서 자신만의 태양계를 갖고 있다. 심지어 우리 태양계의 태양은 평균적인 수준의 온도를 가졌다는 사실. 이 사실을 알고 밤하늘을 바라보면 별빛이 희미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출발했지만 지구에서도 그 빛을 볼 수 있는 매우 강렬한 빛이다. 새삼 별빛에 경외감을 느낀다. 너무나 압도적인 존재 앞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경외감을 애써 거부할 필요는 없다.
자연스럽게 생각의 흐름은 드넓은 하늘을 통해 뻗어나가며 우주로 이어진다. 지구의 백 구 배나 되는 크기를 가진 태양도 거대한 존재임에는 틀림없지만 광활한 우주에서는 그조차 하나의 점이다. 다만 빛이 나는 특별한 점이다. 그리고 태양계마다 거느린 행성들까지 우주라는 공간에서는 모두 먼지와 같다. 하물며 우리 인간을 물리적인 크기로 보자면 지구라는 우주의 한 점 안에 사는 매우 작은 존재이다.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은 우리가 현미경으로 살펴봐야 하는 나노단위의 바이러스보다도 작다. 그러나 인간이 우주에서 얼마나 미소한 존재인지와는 별개로 우리가 우주의 구조를 이해하려 한다는 사실이 얼마나 대단한가? 또 정신적으로 무한한 크기의 사고체계를 갖추었다는 사실에 경탄한다.
결국 우리의 정신세계는 우주의 법칙을 발견하여 이해하기에 이르렀고 이를 토대로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문명사회를 이루었다. 이제 우리의 문명이 어디까지 고도화될 것인지 미래가 궁금할 지경이다. 비록 나의 숨이 끊어지더라도 인류라는 존재는 건재할 것이기 때문에 대를 이어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것이다. 그 미래가 매우 궁금하지만 시작과 끝이라는 명확한 순환 속에서 벗어나고 싶지는 않다.
사노 요코라는 일본 작가의 그림책 '백만 번 산 고양이'에는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목숨이 무한한 고양이가 나온다. 이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주인을 만나 보살핌을 받아가며 살아가지만 정작 자신은 단 한 번도 주인을 아끼고 사랑한 적이 없다. 그러다 주인 없는 길고양이의 삶을 살면서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사랑의 생이 백만 번이나 반복된 이전의 생과는 다른 무언가를 깨닫는다. 사랑하는 상대를 잃고 남겨진 고양이의 선택이 무엇일지는 직접 그림책을 보며 감동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지금 우리 각자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우리의 한 번뿐인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지는 스스로에게 달려있다. 비록 물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우주의 아주 미소한 존재일 뿐이지만 각자의 삶의 가치는 절대 미소하지 않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존재로 살아가기 위한 삶이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삶이 아닐까 싶다. 어른이라는 존재는 작지 않은 정신세계를 갖춘 존재가 아닐까? 하늘의 별처럼 누군가에게 경외감을 안겨줄 수 있는 존재이자 존경할 수 있는 대상, 그것이 어른이다. 누군가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는 존재, 그것이 어른이다. 그리고 그런 큰 정신세계는 사랑이라는 대지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야 한다는 점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사진: Unsplash의Tony Litvy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