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하면 졸업 전에 외국 다녀와. 취업하니 시간이 없어서 못 나가, 대학생 땐 돈이 없어서 못 나갔는데..."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돈을 빌려서라도 해외는 꼭 나갔다 올 거야."
졸업한 선배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 외국에 다녀오고 싶다.'라는 막연한 꿈이 생겼다.
그때 난 대학교 3학년을 앞두고 있었다.
근데 내가 외국에 나갈 돈이 있나?
없다. 돈을 벌어야 한다.
그리고 어느 나라로 갈 건데?
모른다. 목적지를 정해야 한다.
유학 관련 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를 얻었다. 카페 관계자가 주최하는 오프라인 세미나에도 참석했다. 궁금한 점은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내가 갈 나라를 정했다. 필리핀 어학원을 거쳐 호주로 가기로, 비자는 워킹홀리데이로 준비하기로 했다.
이제 돈이 필요하다. 비행기 티켓값과 어학원 비용을 내야 한다. 호주에서 지낼 최소 생활비도 필요하다. 겨울방학에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냈고, 생활비 목적으로 100만 원을 추가 대출받았다. 그렇게 일 년 동안 돈을 모았다.
이제 출국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다. 떨린다. 내가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에 간다니,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그래서 더 설렜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의 암이 전이돼서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국 준비를 하던 나는, 화가 났다. 왜 하필 지금 이러는 건데, 짜증이 났다. 내가 계획한 일들이 틀어질까 봐 불안했다. 불안이 더 커지지 않게, 난 계획대로 출국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건 현실도피야."
동생이 나에게 한 말이다. 엄마가 편찮으신데, 외국에 나갈 거라는 나에게 그건 유학이 아니고 현실도피라고 했다. 난 현실도피가 아니라고 강하게 반박했다. 현실도피든 아니든 그땐 무조건 한국을 벗어나고 싶었다. 이렇게 쓰고 보니 현실도피가 맞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서 민망함이 몰려온다.
아무튼,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난 똑같은 선택을 할 거다. 그땐 나에게 그게 최선이었으니까.
출국을 코앞에 두고 엄마가 입원한 병원에 갔다. 병간호는커녕, 병문안도 안 갔던 나다. 엄마와 같은 병실에 계신 분들이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그날 밤 난 병실에서 잠을 잤다. 엄마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해서였다. 내 죄책감을 덜기 위한 선택이었다.
엄마와 동생과 사진도 찍었다.
그땐 몰랐다. 그게 마지막 가족사진이 될 거란 걸.
그렇게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어낸 나는,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한국을 벗어났다. 지긋지긋한 한국을 벗어났다.
누구나 벗어나고 싶은 현실이 있을 거다. 그럴 땐, 벗어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남들이 뭐라 하든, 나를 위한 선택이면 충분하다.
중요한 건, 그 순간의 나에게 최선이었는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