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암 이래."
짜증이 났다. 난 나를 포함한 주변 사람이 아프면 걱정보다 화가 났다.
'자기 관리를 잘 했어야지.'
'그렇게 아플 때까지 뭐 했어?'
대체 왜 아프고 난리인지, 미리미리 좀 챙겨야 한다는 생각, 아니 강박이 있었다.
(지금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대전에, 엄마는 지방에서 지내던 어느 날, 엄마가 암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병원을 다녀야 해서 지방 생활을 정리하고 대전으로 온다고 하셨다.
난 싫었다. 어떻게 얻은 내 자유인데, 다시 엄마랑 살아야 한다니, 생각만으로도 답답했다.
그런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엄마는 대전에 집을 얻어야 하니 원하는 집의 조건을 말해달라고 하셨다.
난 지금 사는 원룸을 생각하며, 원하는 집의 조건을 말했다.
"최상층과 최하층은 싫어. 화장실엔 창문이 있어야 해. 수압이 좋은지 꼭 체크하고, 천장이랑 구석, 창문 근처에 곰팡이 자국이 있는지도 봐야 해. 그리고 최소 방 2개는 있어야지."
난 건축 관련 학과를 다닌다는 어필을 하며, 집은 꼭 저 조건에 맞게 구하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나 참 싸가지가 없었구나. 그럴 거면 내가 직접 집을 구하러 다녔어야지. 글을 쓰며 반성한다. 미안했어, 엄마.
아무튼, 엄마는 보러 다닌 집 중에 그나마 마음에 드는 집이 있다며 같이 보러 가자고 하셨다. 화장실에 창문은 없지만, 환풍기가 있으니 괜찮을 거라고도 하셨다.
그렇게 보러 간 집은 이전에 살던 분들이 복층으로 쓰시던 곳의 아래층이었다. 층을 이어주던 내부 계단은 문을 잠그고, 벽지를 바를 거라고 하셨다. 주방은 위층에 있어서 우리가 본 아래층엔 주방이 없었다. 원하면 베란다 쪽에 주방가구를 설치해 주신다고 하셨다. 그리고 방은 하나였다. 큰 거실과 작은 베란다가 있고, 작은방엔 화장실이 있었다. 엄마는 거실에서 잘 테니, 나보고 화장실이 있는 방을 쓰라고 하셨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그렇게 그 집에서 엄마와의 동거가 시작됐다.
엄만 온갖 집안일을 도맡아 하시며, 병원 진료를 보러 다니셨다. 난 한 번도 동행하지 않았다. 아픈 엄마를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다. 아픈 엄마를 보기 싫었다. 아픈 엄마가 싫었다. 아픈 게 싫었다.
난 학교생활을 하며, 집에선 게임만 했다. 엄마가 나를 부를 때마다, 난 헤드셋을 끼고 게임을 하고 있었다. 엄마가 부르면 짜증 내며 대답했다. 나 좀 내버려두라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나 진짜 못된 딸이었네. 왜 그랬니, 20대의 나야.
어느 날엔 가발을 사러 지하상가에 가신다며, 나를 데리고 갔다. 가발을 보는데 다 이상했다. 누가 봐도 가발이었다. 난 그냥 모자를 쓰고 다니라고 했지만, 엄만 가발을 샀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이 빠지는 게 싫으셨나 보다. 난 엄마의 머리카락이 빠지든 말든 관심이 없었다. 가발 사러 나올 시간에 다른 걸 했어야 한다며, 그 시간 자체를 아까워하고 있었다.
엄마랑 돌아다니는 게 싫었다. 그냥 나를 내버려두면 좋겠다는 생각만 했다. 다시 혼자 살고 싶었다.
난 왜 아픈 게 싫었을까?
난 왜 자기 관리를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을까?
난 뚱뚱한 사람을 싫어했다.
난 못생긴 사람도 싫어했다.
자기 관리를 안 하는 사람을 싫어했다.
주변 사람이 아프면 짜증이 났다.
그보다,
내가 뚱뚱해지고, 못생겨지고, 아픈 걸 견딜 수 없었다.
나에 대한 기준이 높았던 것 같다.
난 항상 날씬해야 하고, 잘 꾸미고 다녀야 하고, 건강해야 했다.
나에 대한 기준을 남에게도 똑같이 바랐던 거다.
근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란 걸, 나중에야 알았다. 세상에 아프고 싶어서 아픈 사람은 없다는 걸. 마음과는 다르게 살이 찌기도 한다는 걸. 지금 내 모습을 20대의 내가 봤으면, 참 한심한 눈초리로 바라봤을 거다. 그리고 나 자신을 혐오했을 거다.
지금 난, 내 모습에 만족한다. 종종 아프기도 하고, 매일 몸무게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지만,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건, 마음가짐이다.
이제 난 외면보다 내면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만 괜찮으면 된다. 20대의 나는 화장하지 않은 맨 얼굴로는 절대 문밖에 나가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맨 얼굴로도 문밖을 나설 수 있다. 그만큼 내 마음이 커졌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니, 강박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여러분도 혹시 심한 강박을 가지고 있다면, 내려놔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세상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그럴 수도 있는 일들이 많다고. '그러려니~' 하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