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을까?

은장도

by Viki

두. 렵. 다.

길을 걷다 마주칠까 봐.

또 나를 때릴까 봐.


다시는 보고 싶지 않다.

근데, 혹시 마주치면 어떡하지?

내가 나를 지킬 수 있을까?


어느 날, 난 호신용품을 검색하고 있었다. 생활비도 빠듯한 대학 생활에 호신용품이라니, 사치였다.

다른 거 없을까?

어린 시절 기념품으로 받은 작은 은장도가 생각났다. 검지만 한 크기의 아주 작은 은장도였다. 이걸로 나를 지킬 수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위급한 순간에 얼른 꺼내서 상대를 찌르고 도망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 후로 항상 은장도를 갖고 다녔다. 가방이 바뀌어도 은장도는 항상 챙겼다. 가방이 없을 땐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은장도를 챙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내 불안은 작아졌다.


혹시 길에서 마주치면, 어떡하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내가 먼저 공격을 하는 상상도 했다. 공격하다 못해 죽이는 상상도 했다. 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그 사람이라면 내 손으로 죽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죽이고 싶지 않으니, 마주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내가 죽이고 싶었던 그 사람은 친부다.

나의 10대를 엉망으로 만든 사람, 내 존재를 부정하고 싶게 만든 사람, 사람이긴 할까?


나와 동생이 태어난 남쪽 지역에서 대전까지 이사를 오게 한 이유, 친부 때문이다. 엄마는 나와 동생을 데리고 대전으로 도망을 왔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친부가 우리를 찾아서 대전으로 왔다. 도망친 효과는 미미했다.


술에 취하지 않은 상태에선 여느 아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일자리로 출퇴근을 하고, 쉬는 날이나 퇴근 후엔 차를 타고 놀러를 가기도 했다.

술에 취한 상태의 친부는 눈에 뵈는 게 없어 보였다. 엄마도, 나도, 동생도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설비 일을 하는 친부의 차엔 여러 공구가 있었고, 종종 나무 자재가 있기도 했다. 폭력에 쓰이는 도구에는 제한이 없었다. 각목이 되기도, 쇠 파이프가 되기도, 당구 큐대로도 맞아 봤다.

가장 아프게 맞은 날은, 물에 젖은 상태였다. 술에 잔뜩 취한 친부는 바가지에 물을 받아왔다. 그 물을 나와 동생에게 마시라고 했다. 자다 깨서 정신이 없던 우리는 안 마신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랬더니 그 물이 뿌려졌다. 이불도 옷도 다 젖었다. 그리고 물에 젖은 채로 맞았다.

운이 좋은 날엔, 맞다가 도망을 나올 수 있었다. 그럼 덜 맞는 날이 된다. 안 맞는 날은 친부가 술에 안 취한 날이다.

맞는 날보다 안 맞는 날이 많았을 수 있다. 근데, 체감상 맞는 날이 더 많게 느껴졌다. 많이 아팠고, 무서웠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일 거다.


요즘 같으면, 친부는 아동학대로 벌을 받았을 거다. 그땐 그런 게 없었다. 동네 사람들의 동정 어린 눈빛만 받을 뿐이었다. 그리고 동네의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했을 거라 추측한다.


20대가 된 나는, 친부에게 직접 벌을 주고 싶었다. 그러나 일부러 마주치고 싶진 않았다. 우연히 마주치면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다. 그게 내가 생각한 벌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은장도를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리고 다행히, 난 살인자가 되진 않았다.


감사한 일이다.

내가 살인자가 되지 않았으니까.


은장도, 나를 살린 물건이다.

은장도, 살인의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은장도, 그때의 나에겐 꼭 필요했다.


살다 보면 그런 물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양날의 검 같은, 나에겐 은장도가 그랬다.


은장도는 나를 살리기도 했고, 나를 시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살인자가 되지 않았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지금의 내가 버티며 살아갈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