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건축학과 갈래!"
고등학교 3학년인 나에겐 오랜 꿈이 있었다. 건축가가 되는 꿈. 내 손으로 집을 짓는 꿈. 내가 설계한 건물과 도시를 보는 꿈.
그 꿈을 이루려면 건축학과에 가야 했다.
그런데 담임 선생님의 반대가 엄청 심했다. 여자애가 무슨 건축과를 가냐며, 그렇게 건축이 하고 싶으면 차라리 인테리어학과에 가라고 하셨다.
'여자는 건축하면 안 되나?'
난 속으로 생각했다.
대학은 내가 다닐 건데 왜 담임 선생님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도 아닌데, 여자라서 안 된다는 말은 불편했다. 난 담임 선생님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건축을 배울 수 있는 대학을 찾았다.
A 대학엔 건축학과(5년제)가 있다. B 대학엔 건축공학부가 있다. 난 이 두 대학만 바라봤다. 원서는 세 군데 넣을 수 있어서 C 대학 컴퓨터공학부까지 선택했다. C 대학엔 건축 관련 학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서를 제출하고 합격자 발표일을 기다리며, 주말엔 횟집 아르바이트를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일하고, 이틀 치 일당을 받아서 내 용돈으로 썼다. 공장에서 일하시는 엄마에게 용돈을 받기가 미안했다.
얼마 후, A 대학 건축학과에 최초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나도 5년제 건축학과에 갈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기쁜 마음으로 엄마에게 연락했다. 꼭 가고 싶었다. 엄마에게 나 여기 보내달라고 졸랐다. 엄마는 등록금이 비싸서 힘들다고 하셨다. 사립 대학교라서 국공립 대학보단 비쌌다. 속상했다. 대학에 합격했는데, 등록금 때문에 입학을 포기해야 한다니 억울했다.
그리고 난 B 대학과 C 대학의 추가 합격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C 대학의 합격 소식이 왔다. 기쁘지 않았다. 컴퓨터공학부는 혹시 몰라 쓴 곳이라 가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B 대학의 추가 합격 여부를 무작정 기다리기엔 불안했다. C 대학은 국립대학이라 그나마 등록금이 저렴했다. 엄마는 C 대학 등록금은 마련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
그렇게 엄마는 다니는 공장에 대출을 알아봤다. 하지만 돌아온 답변은 대출 불가였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난 대학에 꼭 가고 싶다고 엄마를 졸랐다. 엄마는 지방에서 일하는 조건으로 등록금을 선불로 받을 수 있으니 걱정 말라고 하셨다. 대체 무슨 일이길래 그 큰돈을 선불로 주는 건지, 그때 난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그저 대학 입학 등록에만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엄마가 선불로 받은 돈으로 C 대학 등록금을 납부했다. 나도 대학생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비록 건축과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 날, B 대학 추가 합격 연락을 받았다. 건축공학부, 여기에 가야 한다. 건축이다 건축! 난 얼른 엄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C 대학 등록 취소를 하고 B 대학 등록을 해야 했다. 다행히 B 대학 등록금이 C 대학보다 약 80만 원 저렴했다. C 대학 등록금을 환불받으려면 직접 대학교로 와야 한다고 했다. 시외버스를 타고 C 대학으로 갔다. 무사히 환불을 받고 다시 시외버스를 탔다. 이제 이 돈으로 B 대학 등록금을 내면 된다.
남는 돈은 다시 엄마에게 돌려주면 되겠다고 생각한 그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그 남은 돈을 외삼촌한테 주라고 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서 큰일 났다며, 그 돈이면 경매 넘어가는 건 막을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이게 무슨 소리인지, 화가 났다. 엄마가 지방으로 일하러 가며 선불로 받은 내 등록금을, 외삼촌을 주라고? 대체 왜? 외삼촌은 어쩌다 집이 경매에 넘어가도록 방치를 한 거야? 답답했다. 난 이 돈을 엄마한테 줄 거라고 했지만, 엄마는 얼른 외삼촌한테 주라고 하셨다. 버스에서 내린 나는, 어쩔 수 없이 돈을 외삼촌에게 건넸다. 그 후로는 기억에 없다.
등록금이 뭐라고, 엄마는 지방으로 일하러 떠나야 했나,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다. 학자금 대출을 알아봤더라면, 엄마가 지방으로 가는 일은 없었을 거다. 어려운 형편에 대학에 가겠다고 고집부린 나는 또 어떤가. 참 많이 어렸다. 하고 싶은 건 다 해야 직성이 풀리는 고집불통이었다.
스무 살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의 선택이 나를 규정하지 않는다.
어리석게 굴던 그 마음도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과정에 불과하다."
그때의 나는 어리석었다.
지금의 나는 조금 덜 어리석다.
등록금이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