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포기각서

by Viki

"이제 엄마랑 살자."
녹음기와 종이를 들고 온 엄마가 한 말이다.

내가 중학교 3학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종이에는 '양육 포기각서'라는 큰 글씨 아래로 간단한 내용과 날짜, 친아빠의 서명이 있었다.
'각서의 효력이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그리 중요하진 않았다.
녹음기에는 친아빠의 목소리가 담겨있었다. 아마도 우리를 더 이상 키울 수 없다는 내용이었을 거다. 아니면 각서를 읽는 목소리였을 수도 있다. 기억에서 지워진 부분이라 추측만 해본다.

엄마는 우리와 함께 살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새아빠와 그 아들도 동의했다고 한다. 그렇게 우리는 엄마가 사는 낯선 집으로 짐을 옮겼다.

전입신고를 하고 등본을 확인했는데, 나랑 동생은 '동거인'이었다. 친자식인데 동거인이라니, 이게 뭐지 싶어서 다시 확인했다.
'세대주 ○○○, 처 ○○○, 자 ○○○, 동거인 ○○○, 동거인 ○○○'
기분이 나빴다. 새아빠 아들은 '자', 엄마의 자식인 나랑 동생은 '동거인'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등본을 제출할 일이 생기면 안 보이게 접어서 내곤 했다. 기분이 나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받아들여야 했다.


이사를 하기 전에도 집과 학교가 멀었는데, 이사를 하고 나서는 더 멀어졌다. 버스 타는 시간과 걷는 시간이 늘어났다. 동생은 집과 가까운 학교로 전학을 갔지만, 난 그러지 않았다. 그 먼 거리를 꾸역꾸역 버스를 타고 다니며 중학교 졸업까지 버텼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까지 버티진 못했다. 새아빠의 차별에 내가 참지 못하고 폭발했기 때문이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니었다. 자기 핏줄만 더 챙기는 모습에 화가 난 나는 엄마한테 나가서 살겠다는 말을 해버렸다. 더 이상 같이 살 수 없다고 한바탕했다.
이번엔 내가 부모를 버릴 수 있나 싶었지만, 엄마는 우리랑 함께 그 집에서 나왔다. 다시 우리를 버릴 수 없었던 걸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랑 같이 탈출해 준 엄마에게 잠깐이나마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부모에게 버림받는 기분은 참 더럽고 치사하다. 살면서 다시는 느끼고 싶지 않은 기분이다. 근데 난 두 번이나 겪었다. 처음엔 엄마에게, 다음엔 친아빠에게. 아무리 겪어도 적응이 안 된다.

엄마가 우리랑 살기로 선택한 그 순간, 내 결핍이 채워지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엄마는 언제든지 나를 떠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내가 엄마를 필요로 할 때 엄마는 내 곁에 없었기에 더 그랬다. 무서운 친아빠로부터 나를 끝까지 지켜주지 않은 엄마가 마냥 좋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안다. 그 시절의 상처와 결핍이 결국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걸. 부모에게는 버려졌었지만, 내가 나를 버린 적은 없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과거보다 훨씬 강하고,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만은 절대 버리지 않길 바란다.
내가 나를 붙잡고 있는 한, 우리는 뭐든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