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딸인가요? □□파출소인데, 아버지께서 많이 취하셨네요."
늦은 밤이면 종종 오는 전화다. 모르는 번호지만, 받아야 하는 전화였다.
전화를 받고 동생과 함께 파출소로 향했다. 익숙한 듯 우리는 친아빠를 부축해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친아빠의 술주정을 견뎌야 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지옥이 시작됐다.
'너희들이 뭔데 나를 데리러 오냐, 뭐 하러 거기까지 오냐, 전화는 왜 받냐...'
이제는 우리가 좀 커서 예전처럼 많이 때리진 못하셨다. 그러나 주사는 여전했다. 온갖 욕을 해대시며, 신세한탄은 덤이었다.
술 취한 목소리는 나를 공포에 떨게 했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동생을 두고 나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버텼다.
한번은 친아빠가 나한테 공구상자를 들이밀며 물었다.
"여기 적힌 영어 좀 읽어봐."
난 말을 섞기 싫었다. 내 영어실력에 관심을 보이는 것도 불쾌했다.
그래서 고개를 저었더니,
"중학생이 됐는데, 이것도 못 읽냐?"
라며 버럭 화를 내셨다.
얼마 후, 친아빠의 친구분이 오셔서 나한테 영어를 알려주셨다. '묵음'이 있는 단어들을 알려주셨는데,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에겐 그저 친아빠랑 함께 술 마시는 아저씨로만 보였다.
또 어느 날, 파출소에서 전화가 왔다. 이번엔 가지 않았다. 대신 동생과 함께 집 밖으로 피신했다. 친아빠가 잠든 후에 집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날이 더웠는지, 추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술 취한 어른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파출소에서 전화가 오는 날엔 집에 있고 싶지 않았다. 밤은 더 싫었다. 하지만 집에서 밤을 버텨야 했다. 매일이 지옥 같았다.
그런 삶을 살게 내버려둔 엄마가 미웠다. 혼자 살겠다고 우리를 버리고 간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우리보다 다른 아저씨를 선택한 엄마가 싫었다.
엄마의 재혼 소식은 6학년 학예회 날, 학교에서 동네 아이한테 들었다. 매우 충격이었다. 그날의 충격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엄마에게 재혼에 대한 한 마디 말도 듣지 못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엄마의 재혼으로 우리는 친아빠랑 살아야 했다.
난 사춘기가 왔지만, 사춘기를 마음껏 누릴 수 없었다. 그저 매일 밤, 무사히 아침이 오길 기다릴 뿐이었다.
지금도 매일 밤, 무사히 아침이 오길 기다린다.
대신 눈을 감고 아침을 기다린다.
어린 시절 나는 뜬 눈으로 불안해하며 아침을 기다렸지만, 지금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