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만 불러줬으면...

by Viki

"누나, 엄마가 몇 시에 일어나는지 알아?"

"응, 알지. 매일 6시 50분 알람 맞추고 일어나잖아."

"..."

그날 엄마는 알람이 울어도 눈을 뜨지 못하셨다.


동생과 전화로 나눈 대화였다. 동생은 한국에, 나는 호주에 있었다. 엄마의 마지막을 곁에서 지키지 못했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엄마, 내 이름만 불러줘요.'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싸이월드 일기장에 남겼던 글이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1~2주일 전으로 기억한다. 엄마의 상태가 안 좋아졌다는 동생의 전화를 받고, 급히 한국행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내가 한국에 가면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한국으로 가기 하루 전, 동생의 목소리로 엄마의 마지막 소식을 들었다. 가슴이 먹먹했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서 답답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마음을 추스르고 짐을 싸서 한국으로 보냈다. 아르바이트하던 곳에 가서 사장님과 동료들과 인사를 나눴다. 내 표정을 보고 무슨 일 있냐고 물으셔서, 엄마 소식을 전해드렸다. 깜짝 놀라시면서도 함께 슬퍼해 주시고 토닥여주셨다.

그렇게 마음 한편이 텅 빈 채로 한국행 비행기를 탈 준비를 했다.


야심한 밤,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호주에서 아침에 탄 비행기는 밤이 되어서야 한국 땅을 밟았다. 도착하자마자 공중전화를 찾았다. 하필 광복절이라 휴대폰을 다시 개통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신자 부담으로 동생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례식장까지 비용은 걱정하지 말고 콜밴을 타고 오라고 한다. 전화를 끊고 밴에 짐을 싣고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외삼촌과 외숙모가 내 양팔을 잡고 청심환을 먹였다. 그 와중에 친구 얼굴이 보였다.

'어떻게 알고 나보다 먼저 왔지?'

친구에게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염하는 곳으로 끌려갔다.

제법 큰 관에 엄마가 편히 눕질 못하고 계셨다. 병세가 악화되며 온몸이 부으셨다.

'더 큰 관을 준비했어야지...'

아무것도 못 한 내가 싫어졌다.


염이 끝나고 장례식장으로 가니, 친구의 쪽지가 남겨져 있었다. 위로 많이 해주려고 왔는데, 기차 막차 시간이 다가와서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간다는 내용이었다. 엄마의 장례식장에 딸인 나보다 먼저 온 친구, 정말 고마운 친구다.

나중에 통화하며 어떻게 나보다 먼저 왔냐고 물어보니, 내 싸이월드 일기장을 봤다고 한다. 그리고 엄마가 입원 중인 병원 홈페이지에 가니 상주에 내 이름이 있길래 바로 달려왔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친구가 또 있을까. 진짜 진짜 고맙다.


3일장을 마치고 발인하는 날, 난 화가 났다.

장례식 내내 추운 냉동고에 계셨던 엄마를 화장터에서는 불속에 넣는다. 세상에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이미 죽은 사람을 또 죽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너무 화가 나고 속상해서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엄마를 잃고 난 후, 세상에 그보다 힘든 일은 없었다. 어떤 어려움도, 어떤 슬픔도, 엄마를 잃은 공허함 앞에서는 작게 느껴졌다.


지금 내 이름을 불러줄 엄마는 없다. 하지만 스스로 내 이름을 불러주며 살아가려 한다.

아무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면, 내가 내 이름을 불러주는 삶. 나부터 나를 챙기고 응원해 주는 삶을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