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수나 하자

by Viki

엄마가 돌아가신 후, 마땅히 지낼 곳이 없었다.
호주에서 보낸 내 짐은 외삼촌 댁에 보관 중이라, 어쩔 수 없이 신세를 져야 했다.
삼우제를 지내고 49재까지만 있기로, 혼자 다짐했다. 그 후엔 다시 대전으로 돌아가서 학교를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부재가 생각보다 크게 와닿지 않았다. 아무래도 떨어져 지낸 기간이 길어서 그런가 보다.
마음껏 슬퍼해야 하는데, 나보다 더 슬퍼하는 동생을 보니 내가 더 크게 울 수 없었다. 나라도 정신을 붙들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삼우제를 지내고 동생은 일상으로 돌아갔다.
나는 외삼촌댁에서 더 머물러야 했다.

대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시간을 보내려니, 마땅히 할 게 없었다. 주변엔 내가 놀만한 곳도, 같이 놀 친구도 없었다. 그저 외삼촌 댁에 얹혀사는 나와 내 짐들뿐이었다.

문득 고등학생 시절 해본 십자수가 생각났다. 쌓여있는 짐들 사이에서 십자수 재료를 찾았다. 색이 바랜 재료들을 보니 지나간 시간이 느껴졌다.
마땅히 만들 도안이 없어서 새로운 도안과 실을 주문했다. 쇼핑 후 택배를 기다리는 시간은 설렜다.

차량용 전화번호 미니 쿠션과 시계 배경 도안이 도착했다. 작은 키 링 재료들도 한가득 함께 왔다. 딱히 할 일이 없으니 미니 쿠션은 이틀에 하나씩 뚝딱 만들어냈다. 오랜만에 하는 십자수라서 더 신나게 했나 보다.
시계 배경을 만들면서는 도안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빨리 완성하고 싶었다. 커다란 나무와 그 아래 서있는 자전거 옆에 나도 함께 있는 상상을 했다.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즐거웠다.

손을 계속 움직이니 슬퍼할 틈이 안 생겼다. 슬퍼하는 내가 낯설어서 손을 더 바쁘게 움직였는지도 모르겠다.

분명 거기서 지내는 동안 다른 일들도 했을 텐데, 십자수를 한 기억만 남았다. 내 뇌가 다른 기억은 다 지우고 십자수만 남긴 느낌이다.
그곳엔 외삼촌, 외숙모, 사촌 동생이 함께 지냈는데, 함께 무얼 한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기억 속에 난 항상 혼자였다.

눈물을 흘리는 대신 십자수 바늘을 움직이며, 나는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뎠나 보다.
무의미해 보였던 십자수 바느질이 내 슬픔을 견디게 했듯, 당신의 작은 하루하루도 분명 의미 있는 날들로 다가올 거라 믿는다.